생애 후반의 함정, 4대 불안

최초입력 2020.10.13 14:59:50
최종수정 2020.10.14 16:48:17
“후련하다”, “걱정이다”

퇴직 직후,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라는 사회적 굴레에서 앞만 보고 뛴 세월이 적어도 30년이 넘는다. 짧지 않은 세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만 했을 테니 후련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후자가 더 현실적인 대답이다. 100세 시대를 말하는 지금, 퇴직 후 길게는 40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소요되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 비용은 입으로 들어가는 돈(생활비), 병원에 가져다 줄 돈(의료비), 그리고 국가에 들어갈 돈(세금 및 공공요금)이다. 물론 이 돈이 퇴직 후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퇴직 후 소득이 줄거나 끊어지는 시점에도 이 돈은 쉬지 않고 지출된다. 그렇다 보니 4가지 불안을 끼고 사는 노인들이 넘쳐난다.

자료: 픽사 베이



노년기 삶을 위협하는 4대 불안 증 첫 번째는 소득 불안이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노령연금수급자 평균 연금월액은 52만 3천 원이다(국민연금공단). 이 정도라도 평생토록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65세 이상 전체 노인 759만 2797명 중에서(100%) 국민 연금은 물론이고, 기초 연금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자그마치 41.7%에 이른다(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2018.10)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이 일 손을 놓고 편히 살 수 있을까? OECD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퇴직 후 12.9년(72.9세)을 더 일하는 나라로 발표한 것이 이를 증명하는 셈이다. 또 하나의 불안은 건강 이상이다. 2017년 기준 전체 노인의 51% 이상이, 세 가지 이상의 만성 질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유병장수시대에 돌입한 것이나 진배없다. 과거와 달리 유병자와 관련한 보험들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는 것이 그 증거다. 유병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하물며 노인들의 건강 상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노년 생활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생활 불안이다. 노년 생활을 옥죄는 요인 중에서 간과하기 쉬운 게 있다면 물가상승률을 꼽을 수 있다. 가뜩이나 소득이 빈약한데 물가만 올라가는 상황에서 양질의 식생활을 기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박스라도 줍지 않으면 더 힘겨운 처지로 내몰릴 것이 뻔하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노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엔 “희망”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관”이란 단어가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추석 이튿날, 동네에서 박스를 주워 생활하는 할머니 한 분이, 잔뜩 화 난 얼굴로 화풀이라도 하듯 투덜대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젊은것이 왜 박스를 주워, 다른 걸 해야지, ** 같은 *이”

할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우리 동네는 단독주택가로 할머니 외에 5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아주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박스를 줍는다. 상대적으로 젊고 힘이 세서 그런지 박스 수집 양도 많은 편이다. 아주머니가 동네를 훑고 지나가고 나면, 할머니 몫으로 남겨진 박스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심심치 않게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년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주거생활이다. 주거 불안의 이면엔 가족 간의 관계 이상도 한몫을 한다. 노부부만 또는 홀몸 노인으로 산다고 해서 주거 불안의 굴레를 씌울 생각은 없다. 문제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돌 봄이 철저하게 외면된 주거 생활이다. 관계 이상을 초래하는 원인으로는 사업실패, 황혼 이혼, 술 중독, 보증, 가정 폭력 등 수많은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원인이 어떠하든 이런 문제가 심화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십상이다. 고립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예가 적지 않다. 이처럼 노년기 4대 불안은 돈(소득 불안, 생활 불안)과 질병(건강 불안), 그리고 관계 이상(주거 불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생은 수많은 “성취”와 “실패”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잘 못된 선택으로 잘 못된 노년을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름 모를 무인도에서 그들의 삶을 살지만, 묻사람들의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는 잊힌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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