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공에 대하여

최초입력 2021.02.10 14:18:12
최종수정 2021.02.10 15:13:17

안지원 작품 '저너머'(에코락 갤러리에서 직접 촬영)

안지원 작품 '집'(에코락 갤러리에서 직접 촬영)



작은 성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오늘의 만보 걷기나 친구와 미술관 가기 같은. 너무 시답잖아서 누구는 매일 하는건데? 비아냥을 받아도 나는 굳세어라 금순이 같다. 흡족하게 성공을 경험한다. 감동의 단상까지 남겨 가며. 그러니 어쩌다 큰 성공이라도 할라치면 ㅡ아, 큰 성공이란 것도 세간의 잣대에 따른 것은 아니므로 아주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 본위적이다ㅡ 감동과 감흥은 설악산만한 너울성 파도였다가 세한에도 꿋꿋한 측백나무 가지처럼 오래가는거라. 어제 뭐했는지는 까먹어도 두고 두고 우려 먹을 그 성공의 기억은 훼손되지 않는거지.

그럼 슬픔이나 우울은? 그늘이 없는 사람 같아.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때론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어떻게 사람이 삶이라는 숲에 살며 그늘 울울하지 않겠나. 누구나 그 숲에 소나무, 측백나무, 호랑가시나무 제멋대로고 동백, 장미, 매화 시시때때로 폈다 지지 않겠나. 숲 그늘 사이로 작은 오솔길 나타났다 사라지고 기적처럼 옹달샘 솟아오를 때도 있지 않겠나. 나는 그 숲을 가꿔보자고 더 사랑하자고 풀 한포기, 토끼 한 마리 데려다 놓는 걸 생의 기쁨으로 여길 뿐.

작은 그림을 샀다. 안지원 작가의 '집'. 장지에 먹과 백토로 그린 몹시 흐린 풍경화다. 이 그림을 보려면 바짝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크게 떠야 해. 노안인 사람은 짜증낼 수도 있지. 신께 감사한다. 아직 초롱한 눈은 백미터 밖 당신 코털까지 볼 수도. (웃음) 안지원 작가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신진 작가다. 일면식 없는 이 어린 작가의 그림을 선뜻 산 것은 바로 작은 성공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다. 그림을 사는 퍽 설레는 기쁨, 그림을 파는 꽤 신나는 흥분. 무용한 것에 마음과 돈을 쓰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니까.

가격보다 가치다. 물론 비싼 것은 대체로 그 값에 합당하게 가치가 있다. 옥션에서 극명하게 증명해주잖아. 최고의 낙찰가를 갱신한 김환기 작품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 프리뷰 기간에 옥션 전시장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향유의 기쁨은 충분하다. 예술은 인연의 산물이다. 눈에 들어와 마음에 와닿고 돌아섰는데 다시 생각 나. 우리 처음 사랑할 때처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긴다해도 와락 품에 들여야 할 밖에.

사라져가는 풍경을 애써 그렸다. 아득하다. 흐리다. 저기 어디 우리 집도 있었고 당신 집도. 눈을 비비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떠올린다. 정릉의 빼곡한 집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골목, 형미네 가던 가파른 언덕. 문득 아직 다 거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숲, 그 곳 어딘가 고스란하다는 느낌이 확연히. 잔뜩 웃자란 풀숲을 헤치고 발자국을 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저기 마중나오는 친구, 형미야, 잘 살았니. 혼자 울컥하며 그림 속에 꾹 꾹 길을 낸다.

스물 다섯의 안지원 작가는 한국 정서가 물씬하다. 미래의 날들을 앞당겨 사는 요즘, 전통 한국화 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크게 응원하고 싶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차곡 차곡 쌓으면 나중에 지구를 들어올릴 황소 동력이 된다고 전해주고 싶다. 아로새기며 오늘치 성공을 위해 뚜벅 뚜벅 걷는 지금이 좋다.

안지원 작품 '저너머'(에코락 갤러리에서 직접 촬영)



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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