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인상 보다 위기관리가 시급한 KBS

최초입력 2021.02.15 09:22:37
최종수정 2021.02.16 08:36:26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KBS가 도마 위에 다시 올랐다. KBS 구성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다른 매체를 ‘지라시’, ‘나팔수’로 비하한 것이다. 2월 9일 ‘블라인드’에는 KBS 입사를 묻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모 매체 구성원이 “1억 연봉 받게?”라며 농담조로 댓글을 달자 KBS 구성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해당 매체를 ‘지라시’라고 지칭하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다른 매체 구성원이 ‘말이 심하다’고 지적하자 KBS 구성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돈 빨(벌)려고 아둥바둥 하는 찌(지)라시가 나팔수 타령하네’라며 공격한 것이다.


지난달에도 같은 사이트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KBS 구성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블라인드’에 ‘1억 연봉 조롱글’을 올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다시피 1월 31일 ‘블라인드’에서는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비평 글에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답답하네. 너네가 아무리 뭐라 해도 우리 회사 정년은 보장되고요. 수신료는 전기요금 포함돼서 꼬박꼬박 내야 하고요”라며 “평균 연봉 1억이고 성과급 같은 거 없어서 직원 절반은 매년 1억 이상 받고 있어요. 제발 밖에서 우리 직원들 욕하지 마시고 능력 되시고 기회 되시면 우리 사우님 되세요”라고 조롱한 바가 있다.

이 글의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KBS측은 다음날인 2월 1일자로 대국민 사과문을 부랴부랴 발표했다. “KBS 구성원의 상식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이를 읽는 분들에게 불쾌감을 드린 점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단히 유감스럽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KBS는 이번 논란을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의 구성원인 직원들 개개인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겠다”며 “KBS는 앞으로 임금체계 개선과 직무 재설계 등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경영을 효율화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린다”고 전했다.

KBS를 둘러싸고 이 같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KBS의 오랜 숙원인 수신료 인상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지난 2월 9일 YTN 라디오와의 대담에서 "KBS의 대대적인 경영 혁신이나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 국민들이 공적 부담으로 지불하는 수신료가 어떻게 쓰였는지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들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런 제도적 장치와 국민 공감대가 형성될 때가 수신료 인상 문제를 결정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TV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도 호의적이지 않다. 2월 10일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은 7.1%에 그친 반면 수신료 폐지 의견이 44.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현행 수준 유지는 32.0%, 수신료 인하는 15.6%였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오히려 수신료를 인하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답한 셈이다. KBS의 공영방송 역할 수행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긍정이라는 의견은 27%에 그친 반면, 부정 의견이 69%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를 반영이나 하듯이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데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까지 더 내야 하느냐"는 국민 여론이 있고, 일각에서는 "내가 원해서 넷플릭스에 매달 1만원 내는 것 보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2500원(수신료)을 의무적으로 내는 게 더 아깝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KBS의 공영성을 제고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수신료 인상 문제는 오랫 동안 수도 없이 논의되어왔지만 아직도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KBS는 1월 말 월 2500원인 수신료를 3840원으로 올리는 조정안을 이사회에 상정했고, 이달 중 여론조사와 공청회를 진행하고 이사회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공영방송의 공적역할 강화를 위해 공정하고 투명한 수신료를 산정하는 수신료위원회 설치 근거법(방송법 개정안)을 오는 6월쯤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만큼 KBS 입장에서는 절박한 현안이 수신료 인상이다.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KBS 구성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언이 국민들을 열받게하고 KBS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민 절대 다수는 수신료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지만, 방송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을 위해 41년째 동결 상태인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수신료 문제의 꼭지가 따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의 비협조 등 KBS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실언 파문에서 보듯이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도 현안 해결이 될까말까한 상황에서 상식 이하의 발언을 서슴치 않는 KBS 구성원이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KBS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자기혁신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상은 절절함도 없고 구성원들은 무사안일에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음을 이번 ‘블라인드’ 댓글 파문에서 엿볼 수 있다. KBS에 입사할 때는 우수했을지 몰라도 구성원들의 위기의식은 일반 국민들의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 역시 이번 논란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KBS 사측의 입장과 구성원의 현실 인식이 따로 노는 ‘콩가루 집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방송정책이 아닌 위기관리 관점에서 KBS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수신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무엇보다 KBS 구성원들이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 공영방송 KBS의 주인은 ‘국민’이지 ‘구성원’이 아니다. KBS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 구성원들이 호의호식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송이 아니라는 말이다. KBS는 구호로써만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를 강조할 일이 아니다. 구성원들 내부에 이러한 인식이 부족해 국민을 불쾌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면 더 이상 KBS에 근무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물러나거나 도태되도록 제도화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둘째, KBS의 ‘존재감’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상파 몇 개만 존재하는 시절이 아니다. 수십, 수백 개 방송채널이 매일 매일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KBS가 없다고 해서 이를 아쉬워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할 정도의 방송 환경이 된 것이다. 의무적으로 수신료 2500원을 내느니 내 스스로 넷플릭스에 다달이 1만원을 지불하겠다는 소비자의 의견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많을 것을 시사해준다. KBS라는 공영방송의 존재 의의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한다면 코로나 19로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고 하더라도 수신료 인상에 국민들이 기꺼이 동의해 줄 것이다. 영국의 BBC 처럼 KBS역시 어느 미디어도 넘볼 수 없는 KBS만의 공정한 방송과 우수한 콘텐츠로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을 재확립해야한다. 이는 외부 세력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KBS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만 이룩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다수의 KBS 구성원들은 이러한 인식을 갖고 일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싶지만 지금 몇 마리의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켜 KBS 전체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셋째, 수신료 인상은 방송통신위원장도 언급했다시피 국민적 콘센서스가 전제되어야한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한 명분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조직을 슬림화하고 경영을 효율화 하겠다는 약속을 해왔지만 이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번 ‘블라인드’ 논란에서 보았듯이 KBS 구성원 스스로가 정년이 보장 되고 직원 절반이 1억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KBS의 발전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신료를 인상한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지 의문스럽다. 물론 법적으로는 KBS 이사회의 의결과 방송통신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국회를 통과하면 얼마든지 수신료 인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 다수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여당이 국회 의석수가 많다고 수신료 인상을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KBS 수신료 인상의 순서는 KBS 스스로 처절하리 만큼 대대적으로 조직 혁신을 하고 공영성 제고 노력을 실천으로 먼저 보여주고 이에 대해 국민들이 ‘그만하면 됐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KBS는 아직 절절함이 부족하다.

넷째, 노이즈(noise) 관리도 KBS가 각별하게 관심을 기울일 과제다. KBS 구성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논란을 일으키고 사측이 사과하고 사태가 잠잠해 지기도 전에 또 다른 구성원이 구설수를 일으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 KBS 조직 내에 위기관리 의식이 턱없이 미흡하고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KBS가 수신료 인상이라는 당면 현안을 순조롭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국민 설득에 앞서 조직 내부부터 재정비하고 내부 소통을 활발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고 있는 현재의 KBS로는 당면 현안 해결은 고사하고 위기만 가중시킬 뿐이다.

유재웅. 을지대학교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신문방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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