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과 ‘동주’,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최초입력 2016.03.22 12:59:14
최종수정 2016.03.22 13:01:09
비슷한 시기, 민족의 아픔을 담은 영화 ‘귀향’과 ‘동주’가 개봉했다.

지난 2월 17일, 시인 윤동주와 그의 벗이었던 열사 송몽규를 재조명한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제작 (주)루스이도니소스)’의 개봉에 이어 24일,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가 고통을 받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은 ‘귀향(감독 제작 조정래, 배급 와우픽쳐스) ’이 개봉했다.

‘귀향’과 ‘동주’는 개봉 초기 적은 숫자의 상영관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수 백 개로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개봉으로부터 약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3월 10일 기준, ‘귀향’은 관객 수 285만을 기록하며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으며, ‘동주’ 역시 97만으로 100만의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하는 흥행 ‘기적’을 이뤄냈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우리 민족 모두를 관통하는 ‘아픔’이 잊혀 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두의 염원이 이뤄낸 결과였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 특히 삼일절을 목전에 두고 개봉한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점을 보인다.

1. 마주하기 두려웠던 민족 아픔의 역사

가장 큰 공통점은 ‘민족의 아픈 과거’를 다뤘다는 것이다. 두 영화는 모두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동안 일본군을 무찌르며 카타르시스를 줬던 영화들과는 달리, 일제에 의해 희생됐던 개인들의 아픔을 중심으로 우리가 그동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고통의 역사’를 매우 직접적으로 대면한다.

‘동주’는 꿈조차 허락되지 않던 일제강점기, 시인을 꿈꾸던 윤동주와 조국 독립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송몽규의 아픈 청춘을 담았다. 함께 ‘문학인’을 꿈꿨던 몽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학생들과 단체 행동을 도모했고 동주는 오랜 꿈이었던 ‘시인’이 되어 조국의 아픔을 담아내고자 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궁극적인 소망은 같았던 청년 동주와 몽규는 그들의 꿈을 이뤄보기도 전에 ‘항일 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일제 형무소에 갇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에 의해 광복을 목전에 두고 숨을 거둔다. 채 이뤄보지 못한 청춘들의 비극에 관객들은 연신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귀향’은 조금 더 직설적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아픈 역사를 영화에 담아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제 열네 살 정민과 그 또래의 작고 여린 여자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가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차마 형언할 수 없는 비극에 일부 관객들은 영화상영관으로 들어가는 것 조차 용기가 필요한 영화였다. 영화 속 일본군이 행하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행은 관객들에게 눈물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들끓게 했다.

2. 열악한 제작 환경과 배우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귀향’과 ‘동주’ 두 영화는 모두 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 제작됐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빛내준 배우들이다.

‘귀향’을 제작한 조정래 감독은 복수의 매체를 통해 “2002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거처인 ‘나눔의 집’에서 봉사를 하다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을 본 이후,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정래 감독의 시나리오는 ‘정치적이다’라는 이유로 많은 제작사에게 거절당했고, 이 사실을 안 국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조정래 감독은 총 제작비의 50%정도의 비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향’이 ‘국민들의 손으로 만든 영화’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턱 없이 부족한 제작비를 위해 배우들의 노개런티 출연 결심이 ‘귀향’을 완성시켰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리자는 좋은 취지를 인식한 손숙 배우를 비롯한 재일교포 배우들이 노개런티 출연을 결심했다. 특히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의 비난 여론과 신변 노출을 감수해야만 했다. 인상 깊은 연기로 보여줬던 정민 역의 배우 강하나를 비롯한 재일교포들이 영화 흥행에도 불구, 좀처럼 공식석상에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일본에서의 신변 보호’를 염려한 조정래 감독의 배려 때문이었다.

‘동주’ 역시 5억 원의 매우 적은 제작비로 시작했다. ‘동주’를 제작한 이준익 감독은 ‘동주’ 언론시사회에서 “‘동주’를 흑백영화로 표현한 까닭으로, 윤동주 시인의 그 시대를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였다”고 밝혔다. 흑백의 ‘동주’는 1930-40년대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영화적 배경과 소품에 들어갈 비용을 최소로 줄이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준익 감독은 저예산 영화를 위해 티켓파워가 있는 스타배우가 아닌, 연기력이 입증된 신인 배우를 선택했다. 게다가 이준익 감독과 윤동주 역을 맡은 주연 배우 강하늘, 송몽규 역을 맡은 주연 배우 박정민을 비롯한 여러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을 결심했고 ‘동주’의 영화적 의의가 더욱 커졌다.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의 삶을 최초로 영화에 담아낸다는 취지에 모두가 공감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귀향’과 ‘동주’가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관객들을 울릴 수 있는 진정성을 담아냈던 배경엔 출연한 배우의 진정성이 먼저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적 의의를 이해하고 이에 기꺼이 재능 기부를 선택한 배우들과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영화의 취지를 제대로 담아내고자 했던 감독의 노력이 빛이 발한 것이다.

3. 그리고 우정

두 영화의 감동이 배가되는 마지막 공통점엔 두 사람의 ‘우정’이 큰 몫을 발휘한다. ‘동주’에서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우정이 그렇다. 어릴 적 한 집에서 태어나고 함께 자란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는 친형제 이상의 끈끈한 우애를 보인다. 목숨을 걸고 독립 운동에 가담하면서도 동주에겐 “너는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들 거니까”라고 말하는 몽규에게서 동주를 지키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잘 나타난다.

이에 더해 영화의 후반부, 항일 학생 운동 조직이 발각되고 함께 도망가자던 몽규에게 동주는 ‘먼저 가라’고 말한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동주의 모습과 함께 이어 동주의 목소리로 시 ‘자화상’이 흘러나온다.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시 ‘자화상’이 그동안 윤동주와 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 반성이 아닌, 어릴 적부터 끝내는 죽음까지 함께 했던 동주가 몽규의 관계로 해석해 둘 사이의 존재하는 특별한 의미를 재조명했다.

‘귀향’에서도 소녀 정민과 영희의 특별했던 우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일본으로 끌려가는 기차 안에서 고열로 힘들어하던 영희를 안아주던 정민을 본 관객들은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정민의 따듯한 배려는 마지막까지 빛을 발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영희에게 어머니가 준 마지막 선물인 괴불노리개를 건네며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리던 정민이었다. 죽음에 위기에서 독립군들의 도움으로 정민과 영희는 간신히 죽음을 면했고 이제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행복도 잠시, 아직 죽지 않은 일본군이 총을 겨눴다. 이를 안 정민이 영희를 단숨에 감쌌고 정민은 자신의 희생으로 영희를 지켰다.

앞서 일본군에게 다리에 총을 맞았을 때부터 정민은 어쩌면 자신이 고향에 못 돌아갈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탕’. 그 짧은 총소리에 고향에 못 갈 가능성이 큰 자신보단 영희만은 고향에 도착하길 바라는 정민의 숭고한 희생에 관객들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귀향’과 ‘동주’는 아픈 과거의 역사를 잊고 사는 우리를 다시금 먼 시간에 갇혀 버린 ‘그들’에게 ‘감사함’을 일깨워 준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지금 밟고 있는 국토와 누리고 있는 주권에 대해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해왔으며 안일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들에게 ‘귀향’과 ‘동주’에서 마지막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투쟁했던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들이 남겨준 이 땅에서 우리는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슬퍼하고 열심히 분노하며 살 것. 그리고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함이 아니었을까.

[김효숙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2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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