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해야 건강하다? 건강해야 평등하다

최초입력 2016.08.17 09:09:54
최종수정 2016.08.24 09:22:06

이미지 출처: http://www.mbn.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2885919

2004년 영국의 사회 역학 연구자인 Richard Wilkinson은 그의 저서 ‘평등해야 건강하다(원제: The Impact of Inequality)’를 통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구성원의 건강상태에까지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로 인해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망률, 범죄율이 높고 소수자에 대해 더 폭력적인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도 ‘건강불평등’이란 단어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개념으로 자리 잡아 많은 학자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건강상태의 격차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복지국가 이념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많은 이들의 우려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결국 개인의 사회, 경제적 능력이 그들의 건강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좀 더 흥미로운 발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이 의료 지출 여력이 부족해 더 열악한 의료 관리를 받고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상당히 직관적이고 자명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영양 상태나 의료 관리 상태가 더 열악한 개인이 이로 인해 사회, 경제적 역할 수행 능력이 감소해 이것이 사회, 경제적 격차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흥미롭게도 David Barker와 이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한 많은 의학·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번 칼럼을 통해서 개개인 간의 보건관리의 차이가 건강 상태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능력의 격차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연구들을 소개함으로써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전염병 학자 David Barker는 1986년 훗날 ‘Barker의 가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해지는 태아태생가설과 관련된 논문을 출판한다. 해당 논문의 제목은 ‘Infant Mortality, Childhood Nutrition, and Ischaemic Heart Disease in England and Wales’로서 임신 기간 동안의 영양 상태가 향후 태아가 성장한 이후 겪게 될 관상 동맥 심장 질환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음을 밝힌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연구는 심장질환이 출생 이후 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유전적 요인에 의해 지배적으로 결정된다고 믿었던 당시 의학계의 큰 비판을 받았으나, Barker의 결론은 이후 다른 지역들에서 실시된 유사한 연구들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이후 임신 기간 동안 태아가 적절한 영양공급을 받고 산모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향후 태아의 건강상태와 사회, 경제적 능력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태아태생가설은 학계의 핫한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나 이러한 태아태생가설의 경제학적 측면은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켜 많은 후속 연구들이 진행됐다. 이 중에서 2007년 Douglas Almond가 3인의 공동 연구자와 함께 발표한 ‘Long-Term Effects Of The 1959-1961 China Famine’은 학계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해당 연구에서는 심각한 대기근이 발생했던 1959-1961년, 그 중에서도 가장 대기근이 심했던 1961년을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근 근방에 출생한 태아가 성장했을 때 인근 코호트인 1956-1959년이나 1962-1964년에 출생한 사람들에 비해 각종 건강상태 지표가 더 악화돼 있을 뿐 아니라, 교육수준, 소득, 노동시장 참여율 등 경제적 능력 지표들에서도 더 열등한 수준에 놓여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발생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태아 시절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열악한 건강관리 상태 하에 놓인 구성원들이 향후 신체적 건강 수준 뿐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의 생산성이나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 수준에서까지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것을 보여준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태아태생가설은 태아 시절의 건강관리 상태가 향후 개인의 사회, 경제적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의학·경제학계에서는 이외에도 특정 지역에서의 전염병 관리 상태나 기대수명의 증가가 교육에 대한 투자 증대와 인적자본의 축적,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다수의 연구결과들을 발표하여 왔다. 이는 개인의 질병 및 건강관리가 한 집단의 경제적 성장과 발전의 핵심적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태아태생가설을 비롯한 이러한 연구결과들에서 우리는 단순히 사회, 경제적 격차가 인간의 존엄성 및 생명과 직결되는 건강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에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와 동시에 평등한 보건 및 의료 관리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건강 격차가 해소될 때 비로소 이 사회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 역시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태아태생가설을 통해 우리는 사회, 경제적 취약 계층의 산모들이 적절한 영양 상태와 건강관리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향후 그들의 자녀세대의 사회, 경제적 능력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끊임없이 대물림 되는 부의 악순환의 고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회,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문제와 의료 및 보건관리를 통한 건강격차를 줄이는 것 중 무엇 하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Wilkinson이 밝힌 것처럼 사회, 경제적 격차가 건강의 격차로 이어지기도 하고, Barker의 연구에서 볼 수 있듯 건강의 격차가 사회, 경제적 격차로 이어지기도 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말이 성립하듯, 건강해야 평등하다는 말도 성립할 것이다. 두 요인은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선행하는 관계에 있지 않고 긴밀하게 서로 상호작용하는 순환 고리에 놓여 있기에 어느 하나도 경시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불평등이라는 말이 이슈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건강불평등의 기저에 있는 사회, 경제적 격차만을 주목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우리의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건강과 사회, 경제적 요인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건강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효과적인 보건의료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에도 그만큼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 조금 더 사회,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건강한 사회가 도래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구본승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4학년]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