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모병제 논란

최초입력 2016.09.20 09:22:00
최종수정 2016.09.26 10:42:06
30년전 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다. 현역입영 판정 후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군대라고 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친구들이 주는 박탈감을 느꼈다. 나만 사회에서 더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조바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볼 때, 병역면제를 받은 친구의 삶이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친구의 삶보다 더 행복하거나 성공적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단언한다.
어느 전직 대통령마저도 군대에서 젊은이들이 "썩는다"고 했지만,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듯이, 국가 없는 국민의 삶은 처참하다. 국가가 붕괴되어 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고통받는 모습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동체로서 국민은 국가를 지켜야 한다. 나와 내 가족, 나아가서 내 후손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다고 하는 이유다.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견인했던 국가대표 선수가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후배들 병역면제를 시켜주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서가 아니라 선수들 병역면제 시켜주는 것이 기쁘다? 물론 그 선수는 나쁜 의도가 전혀 없었고 후배들의 미래를 정말로 걱정했기에 말실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군대는 가능하면 가지 말아야 하는 기피 대상’이라고 전세계에 외친 것과 같다.

스포츠 스타는 물론 예술계의 우수한 인재에 대한 큰 상이 군대 면제다. 머리가 우수한 이공계 수재들에게도 병역면제가 커다란 유인이다.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는 군대면제라는 상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뛰어난 재능이나 머리가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만 가기 싫은데 가야하는 곳이 군대란 말인가? 그것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의 현주소인가? 게다가 일부 정치인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빈약한 논리까지 내세우며 모병제를 주장한다. 이는 돈 있는 집안의 아이들에게까지 합법적으로 군대 면제를 남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난하고, 취직도 못하는, 스포츠나 예술의 재능도 없는, 그리고 이공계 박사 과정에 들어갈 정도의 머리도 안 되는 젊은이들만 군대에 가라는 것이다. 이 지경까지 간다면 대한민국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현재 직면한 엄중한 국가안보 상황에서, 고위공직자와 상류층 그리고 그 직계가족의 병역면제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기사를 접하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미국 지도층 자녀들이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 그리고 월남전에 자진하여 참전하고, 그 중 많은 이들이 국가를 위해 전사하였다는 것을 보면 부끄럽다. 물론 정당한 사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면 존중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병역면제는 권리가 아니다. 자신이나 자식의 병역면제 때문에 다른 국민과 그 자식이 더 큰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했었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한다. 또한 병역 외의 다른 방법으로 반드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에 상응하는 봉사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군대는 누구에게나 낯선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일종의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더 성장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젊은이가 도전할 만한 숭고한 가치가 있기에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국민의 나약한 심리적 고리를 파고들어서 표를 구걸하고자 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조롱하지 말기 바란다. 그대신 우리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발전과 희망을 이루며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건전한 병영 문화 발전과 시설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김보원 KAIST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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