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도 사회과학으로 바라보자

최초입력 2016.09.21 09:11:47
최종수정 2016.09.26 10:42:17

<사진 출처: MBN>

2015년 메르스 위기가 전국을 강타한 이후, 인문과학 및 사회과학과 연계되는 의학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왔다. 그간 대중에게 의학의 중심은 자연과학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질병의 원인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치료법을 개발하고 임상에 적용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마치 의학이 자연과학의 하위 범주 내에 속한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의학 연구와 임상은 자연과학적 접근법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전 국민으로 공포로 몰아넣은 외래 질병 확산의 핵심적 원인은 병원환자들과 방문객들을 관리하는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였다. 이로 인해 메르스 사태가 끝나고 나서도 병원과 병원을 둘러 싼 사회 제반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관성 하에서 의학을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각광받고 있다.


사실 의학에서 의료현장과 사회 제반 요소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실증적·정성적 분석을 진행해온 것은 이미 과거부터 진행되어오던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건제도의 성과를 비용-편익 모형의 관점에서 실증적으로 평가하거나, 정치·외교학적 관점에서 제도의 도입을 둘러 싼 정치적 이익집단들 간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분석하는 것과 같이 보건의료 분야에는 이미 다양한 사회과학적 접근법들이 도입되어 왔다. 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일어난 인식의 전환은 의학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 역시 높였다. 이는 과거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이러한 연구들이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정책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처럼 의료 분야에 대한 대중들의 사회과학적 접근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상황을 감안해 의학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사회과학적 방법론, 그 중에서도 경제학적 방법론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과학에서 실증분석을 실시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완벽한 ‘통제된 실험’을 실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이론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종속변수와 설명변수(독립변수)에 해당하는 장치들을 통제하고 실험을 실시해 가설을 체계적으로 검증해나간다. 무수히 많은 반복실험들에서도 입증된 결과는 하나의 이론이 되고, 향후 추가적인 연구의 발판이 된다. 하지만 인구 통계학적 데이터를 다루는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실험을 실행하기가 어렵다. 당장 ‘실업이 근로자의 소비수준을 감소시키는가?’와 같은 직관적으로 자명해 보이는 가설조차 실제로 이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특정 근로자를 본인이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모른 상태로 직장에서 해고시킨 다음 그의 소비 패턴을 관찰한다면 이는 엄청난 윤리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윤리적 문제에 더해 통계학에서 중요한 과제인 ‘다 표본(large sample)’의 확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실험의 참가자를 충분한 규모로 확보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계량적 사회과학 분야들, 특히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이의 차이(Differences In Differences, DID)’를 분석함으로써 ‘자연실험’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간단한 예시를 통해 DID 기법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A반과 B반이 있는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실시했더니 A반 학생들의 성적이 너무 낮았다고 하자. 학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A반 학생들에게만 특별 보충학습을 실시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기말고사를 응시한 후, A반 학생들의 기말고사 평균 점수가 중간고사 때보다 상승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보충학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기말고사의 시험 난이도 자체가 중간고사보다 낮아서 보충학습이 효과가 없었음에도 평균 점수가 상승한 결과가 나타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A반 학생들의 기말고사와 중간고사의 평균 점수 차이(Differences)만을 놓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 때 DID 기법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시험의 난이도를 통제하기 위해 B반 학생들의 성적 변화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만약 시험 난이도가 내려간 것이 아니라면, B반 학생들의 성적은 다른 외부 요인이 개입되지 않는 이상 A반만큼 상승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A반 학생들의 기말고사와 중간고사의 평균 점수 차이)-(B반 학생들의 기말고사와 중간고사의 평균 점수 차이)’, 즉 차이의 차이(Differences In Differences)를 이용해 이 수치가 양의 값이 나온다면 우리의 가설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의 값이 도출되었다는 것은 A반 학생들이 기말고사 때 중간고사 때보다 성적이 향상된 폭이 B반 학생들에 비해 더 컸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일한 외생적 변화요인이었던 보충학습이 그러한 차이의 원인이었음을 지지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가 가능하면서도 매우 타당한 논리적 근거를 갖춘 DID 기법은 계량경제학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회과학적 실증 연구들에 활용되어 왔다. 국내에서는 정유사들의 담합으로 인한 국방부의 손해액을 이중차분법으로 분석한 사례를 토대로 저술된 류근관·오선아(2010)의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 산정에 있어서 경제 분석 상의 주요 쟁점’이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오늘 칼럼에서는 이러한 이중차분법이 의학 분야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구체적인 연구 사례를 통해 소개함으로써 사회과학적 접근법이 의학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한국은 1989년 전 국민을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시키는 정책이 실시되면서 사회보험 형태의 건강보험이 출현했고, 이후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대상자와 수혜 범위 및 수혜금액을 점차 증가시키기 위해 다양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들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보장성 강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정책 효과가 실제로 크지 않아 여전히 국민들이 국민건강보험만으로 불확실한 질병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는 상황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강하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정책이 효과가 있었다면 정책 효과로 인해 확대 정책의 수혜자들의 민간의료보험 이용이 감소해야 하는 것을 관찰해야 하지만, 단순히 정책 실시 전, 후의 민간의료보험 이용금액을 비교하는 것에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 정책의 변경 전, 후의 시차로 인해 이전과 이후에 통제되지 않은 다른 외부 요인의 변화로 인해 민간의료보험료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제로 민간의료보험 이용금액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을지라도 전염병과 같이 국민건강 상황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정적 요인이 출현했다면 민간의료 비용금액 자체만으로는 정책 변화 이후에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DID 기법을 이용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효과를 실증분석한 의학 논문이 발간되었다. 김관옥·신영전(2016)은 보건정책과 정책연구에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가계민간의료보험료에 미친 영향’을 제목으로 하여 DID 기법을 도입해 보건의료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논문을 기고했다. 2000년대 들어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의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2009년~2010년의 시기로, 해당기간동안 ‘암, 심장·뇌혈관질환, 중증화상’에 대한 법정급여 본인 부담 율을 5%로 낮추는 보장성 강화정책이 실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정부가 야심차게 계획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제로 국민들의 민간의료보험 이용금액을 감소시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DID 기법을 활용했다. 보장성 강화 정책의 핵심이 된 3 가지 질병에 대해, 3 가지 질병에 해당하는 민간보험 가입자와 그렇지 않은 보험 가입자의 민간의료보험 이용금액의 변화를 분석하되, 3 가지 질병이 있는 가입자들이 비교 집단에 비해 민간의료보험 이용금액이 더 크게 감소했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이중차분법의 분석 결과, 보장성 강화 정책 수혜 집단의 민간의료보험료 지출 감소가 비교 집단에 비해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는 역설적 결과가 도출되었다. 해당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원인이 3차 병원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한 한국에서 보장성 강화 혜택의 대상자들이 더 비싼 진료비를 감수하고 3차 병원을 더 자주 방문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과 민간의료보험료의 수준에 비해 본인부담금이 민간의료보험 이용행태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점 등을 그 원인으로 뽑았다. 이러한 실증 연구 결과는 결국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제로는 민간의료보험 지출 부담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제대로 불러오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토대로 우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민간의료보험 부담을 경감하고자 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제로는 그러한 기대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를 발견했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토대로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부담 없이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연구결과는 향후 정부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이전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이러한 연구결과를 보다 더 엄밀하게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장성 강화 정책이 그 자체로 필연적으로 국민 의료 부담을 완화시켜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둘째,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경제학을 사례로 하여 사회과학적 방법론이 자연과학의 범주라고 생각되던 의학 분야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음을 우리 스스로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의학연구의 대상은 사람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학문의 유의미한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의료현장 뿐 아니라 제반 요인들을 둘러 싼 다양한 인구 통계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는 이러한 필요성을 대중들에게도 널리 인식시키게 된 계기였다고 판단되며, 필자는 구체적인 연구사례를 통해 이를 알리고자 했다.

메르스 사태에서 봤듯이 보건 의료 시스템, 보건의료 제도를 비롯해 각종 의료 제반 요인들과 의료 현장이 긴밀하게 연계되는 운영체제가 부재한다면 국민건강을 담보할 수 없다. 메르스 사태는 하나의 현상이고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지만, 의학에 대한 인문과학·사회과학적 접근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이러한 연구들 만큼은 이를 계기로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이 글을 마친다.

[구본승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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