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암기

최초입력 2017.03.16 23:36:25
최종수정 2017.03.16 23:41:13
수학을 잘 하려면 이해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암기가 중요할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대우’라는 말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답을 얻기 위해서 새로운 개념을 배워야 하는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A이면, B이다.’의 대우는 ‘B가 아니면, A가 아니다.’입니다.
예를 들어, ‘정삼각형이면 이등변삼각형이다.’의 대우는 ‘이등변삼각형이 아니면 정삼각형이 아니다.’입니다. 서로 대우인 두 문장은 참과 거짓을 함께 합니다. 즉,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도 참이고 하나가 거짓이면 다른 하나도 거짓입니다.

저는 이십 년 넘게 수학을 가르치고도 수학 잘 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을 딱 한 가지밖에 모릅니다. 그것은 ‘수학 잘 하는 학생은 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잘 기억하는 학생이 수학을 잘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삼각형은 이등변삼각형이다.’는 말은 참이지만 ‘이등변삼각형은 정삼각형이다.’는 말은 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수학 잘 하는 학생은 잘 기억한다.’의 대우인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은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참입니다. 암기를 잘 한다고 해서 수학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암기를 잘 하지 않고서는 수학을 잘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림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제 암기와 이해의 논쟁은 끝났습니다. 암기가 우선입니다. 따라서 암기를 잘 하는 방법과 암기를 잘 했는데도 수학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이유만 분석하면 됩니다. 먼저 암기를 잘 하는 유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요?

① 한번만 쓱 봐도 거의 다 기억하는 유형(암기력 천재형)

- 개념이나 공식뿐만 아니라 예제와 연습문제까지도 모두 기억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구슬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중학수학과는 달리 고등수학은 제대로 한 번 보는데도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② 같은 교재를 여러 번 반복해서 공부하는 유형(지독한 노력형)

- 여러 교재를 한번씩 대충 보는 것보다 같은 교재를 종이가 닳도록 여러 번 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수십 번 본다고 시간도 수십 배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한두 번 볼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세 번 이상 볼 때부터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 대부분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많이 보면 저절로 외워집니다. 저절로 외워진 것들은 저절로 떠오릅니다.

③ 암기 잘 하는 기술을 가진 유형(꾀돌이형)

- 이들은 쓸 데 없는 것을 외우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시험에 잘 나올만한 개념과 문제를 영리하게 선별하여 외우기 때문입니다.

- 공부 자체보다 어떻게 공부해야 효율적인지 고민하는 유형입니다.

이렇게 암기를 잘 해도 수학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세 가지 이유와 해법입니다.

① 개념 적용을 못함

개념과 예제를 붙여서 외울 것을 권합니다. 개념을 보면 예제가 떠오르고 예제를 보면 개념이 떠오르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단어의 뜻만 외우는 것보다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함께 외우는 것이 효과적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② 개념과 개념을 잘 연결하지 못함

실전문제를 많이 풀어봐야 합니다. 특히, 학교 내신과 수능의 기출문제를 반드시 직접 풀어봐야 합니다. 이런 유형의 학생은 개념과 유형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문제를 풀지는 못해도 남이 설명하는 것을 잘 이해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너무 잘 이해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까지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남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이해중독자가 될 뿐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혼자서 해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런 성공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진짜 실력이 됩니다.

③ 계산 실수가 많음

계산 실수와 문제 착각으로 많게는 3~40점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력이 비슷한데도 누구는 90점대를 맞고 누구는 50점대를 맞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물론 계산을 실수 없이 하고 문제를 꼼꼼히 읽는 것 또한 실력이라고 주장하면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만 가르치는 사람의 눈에는 두 사람의 차이가 미미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방법을 권합니다. 하나는 문제에 □, △, ○ 등의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과 주어진 것을 구분하여 표시하고 답을 쓰는 과정에서 반드시 표시한 것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두 번째는 지수법칙, 곱셈공식, 제곱근, 인수분해 등 중학수학에 나오는 기초 연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세요. 여러분이 중학생이면 초등수학에 나오는 연산을 연습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암기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사실 일부러 이해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하는 쪽일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것이 문제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과 공식, 문제풀이방법을 외우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 이해가 손 내밀어 줍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이규영 루틴수학훈련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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