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의 실종

최초입력 2017.09.12 20:26:28
최종수정 2017.09.12 20:27:12
작가 마광수의 갑작스런 부고로 인해 연일 지면에는 그의 문학적 천재성과 시대를 앞섰던 성담론의 예찬이 쏟아지고 있다. 한 시대의 문학적 지평을 연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수사도 뒤따른다. 또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죽음을 시대적 필화사건으로 규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 유고집 출간을 앞두고 매스컴에서 작가 마광수를 이슈화할수록 마음이 불편한 것은 왜일까?

현재는 80년대에 비해 육체적으로 청소년들이 성장하였다고 하나 정신적으로는 더 피폐하고 결핍된 상태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엽기적인 비행사건이 연달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데에는 가정에서의 밥상머리 교육 등이 실종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비행청소년들을 꾸짖거나 신고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도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즐거운 사라’등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80년대가 아닌 2017년 현 시대의 청소년에게 작가 마광수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수능 국어 영역에 자주 출제되는 윤동주 시인을 지금의 국민적 반열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학자로서 교수로서의 업적 또한 지대할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그의 칼럼 등에 따르면 청소년은 청소년보호라는 미명아래 교복이라는 굴레에 갇혀 금쪽같은 세월을 보내는 불쌍한 청소년이다. 조선시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도 15살이었고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도 18세 전후에 지도자로서 어른 대접을 받았는데 19세부터 성인이라는 획일적 잣대에 갇혀있다고 안타까워하였다.

소년법 개정에 대한 청원이 뜨거운 이즈음 작가 마광수의 청소년론이 새삼 아쉽다. 청소년들은 육체적 나이에 따라 저절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현 시대의 청소년을 조선시대 이몽룡과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등과 육체적 나이만으로 비교할 수 없다. 또한, 현 교육체제에서 청소년들이 교복을 벗고 싶다고 벗을 수 있는 현실도 아니고 그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이나 대안도 없지 않은가?

청소년들은 대체로 직업적 성공을 진로로 정하고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수나 작가라는 직분은 사회를 견인하는 지식인으로서 건전한 청소년 선도의 신호등 역할을 하여야 한다. 비록 청소년들이 예전에 비해 육체적으로 성인에 가깝고 사회적으로 성 담론이 공론화되는 환경이라고 하여도 지금은 80년대에 비하여 오히려 우리 사회가 신중하여야 한다. 즉, 작가 마광수에 대한 시대적 재평가는 필요하겠으나 기성세대의 잣대로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여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육체적 성장에 걸맞는 사유를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 시대는 사회변동에 따른 사회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다면적 청소년 교육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희선 김선 입시컨설팅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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