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꿈과 현실 사이

최초입력 2018.01.02 18:27:39
최종수정 2018.01.02 18:29:37
영국에서 호스피스 간호사로 다년간 근무했던 브로니 웨어(Bronnie Ware)는 자신의 저서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꿈의 반도 이루지 못하였고, 그것이 자신이 내린 혹은 내리지 않은 선택들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채 죽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 후회들 중에는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지 못한 것,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이 행복한 일을 시도하지 못하고 두려워한 것 등이 포함되었다. 이런 것들은 체면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해서 한 결정이겠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신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추억과 인생의 과정이 되었던 것이다.

● 지인의 딸

이번에 딸이 대입수능시험을 치룬 고향의 지인이 전화를 했다.
자신의 딸이 받은 점수로 어느 대학의 무슨 학과에 지원해야 하는지 묻는 전화였다. 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대신 하기 싫은 것은 골라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점수에 맞고 취업이 잘되고 인기가 있는 대학의 학과에 지원하고 싶어 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른 채 남들이 보기에 좋은, 남들이 보기에 좋을 것 같은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딸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해 주면서 학과를 중심으로 진학하기를 권했다고 했다. 지인은 건축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시험점수도 위험했지만 여자는 건축보다 수학이 좋다는 주변의 권고로 수학과에 진학했다. 수학을 전공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여 대학등록금을 보탰고, 결혼 후에도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있었지만, 4년간의 대학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진로가 있었는데 그 진로를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진로 선택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하고 싶은 일보다 점수에 맞추어 진학했다.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합격점에서 약간 위험하다고 했다. 겁을 먹고 좀 낮은 대학의 국어교육과를 지원하려고 고민했지만, 대학의 이름 때문에 국어교육을 포기하고 그 대학의 생명과학을 선택하였다. 장래의 꿈과 상관없이 단순히 점수에 맞추는 이런 선택은 나를 많고 기나긴 갈등 속으로 밀어 넣었고, 4년이란 젊은 시절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사회에 나와서도 진한 아쉬움을 남기게 하였다.

사진:픽사베이



● 변리사인 친구 H의 선택

친구 H는 변리사다. 국가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하였고 특허청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수원의 광교에서 개인 특허 법률사무소를 운영한다. 그는 어려서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일했다.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였다. 대학 등록금이 없고 기초 공부가 부족해서 서대문의 M실업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전문대학으로 바뀐 2년제였다. 학교에 진학했지만 집안이 가난했으므로 등록금을 낼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야만 대학엘 다닐 수 있었는데 학과에서 1등을 해야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고 전액장학금을 3학기 동안 받을 수 있었다.

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전공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덕택에 꿈의 직장으로 통하던 ‘한국전력’ 입사시험은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입사를 하면 더 공부할 수 없는 여건이라는 것을 알고 과감히 입사를 포기하였다. 4년제 대학에 편입하여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편입시험을 준비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고등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서울의 유명한 H대 전기과에 편입을 하였다. 편입을 하였으나 등록금이 부족하였으므로 전액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최선을 다했다. 성적은 좋아졌고 편입생에 대한 편견도 극복했으며 장학금도 받았다. 그러나 등록금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고시를 준비하였다.

기술고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전문학교에서 장학금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한 덕을 많이 봤다. 편입하기 위해서 전문학교에서 전공 공부를 워낙 잘 하였기 때문에, H대에 편입하여 고시준비를 하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다. 4년제에서 배우는 전공도 전문학교에서 배웠던 전공과 같은 내용이어서 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 결과 편입한 첫해인 대학 3학년에 기술고등고시 1,2차를 모두 합격하였다.

고시에 합격을 하여 특허청에 발령을 받아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군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군대에서 직접 근무를 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당시에는 KAIST 재학생들에게는 기초군사 훈련을 하면 군대를 면제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친구 H군은 H대에 다니다가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KAIST 입학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렇게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KAIST 학생이 되었다. 이미 기술고등고시에 합격을 한 상태이므로 KAIST 생활은 파견근무로 처리가 되어 등록금 걱정도 없고, 군대 문제도 해결된 상태에서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석사학위까지 받았고 특허청과 관련된 여러 주요 업무를 수행한 뒤에 퇴직하여 자신의 특허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친구 H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것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으로 삼아 최선의 노력을 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었다.

● 남이 보는 현실인가, 내가 꿈꾸는 미래인가

현재 수능점수를 받아든 학생들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나는 당연하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인의 딸처럼 자신의 점수가 미치지 않지만 남들이 알아주고 취업도 잘 되는 학교와 학과를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나 자신에게 별 관심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인생에 대해서 나만큼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무턱대고 듣기보다 현 점수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내가 겁을 먹고 국어교육대신에 생명과학을 선택하면서 갈등을 겪었듯이, 원래 바라는 길을 바꾸면 갈등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에 의해서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한 과정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한 단계를 과감하게 밟아 가야 한다. 친구 H처럼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학교라 하더라도, 그 선택이 나를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 수 있다. 현실에 맞추어 꿈을 접을 것인지, 아니면 꿈을 위해 현실을 변화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의 선택에서 계단을 오르는데 두려움 때문에 계단을 아래로 내려 딛지는 마라. 계단은 올려 디뎌랴.”

[배상기 서울 청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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