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미래, ‘글로벌 필수재’에 있다

최초입력 2017.09.07 20:24:07
최종수정 2017.09.07 20:36:11
필자가 해외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 하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서구기업의 주재원들이 한국인 주재원보다 훨씬 부유하게 산다는 점이다. 서구기업 주재원이 사는 집은 크고 자녀를 위한 파티도 화려하며 휴가도 한 달씩 유명 휴양지에서 보낸다. 이들 서구기업의 비즈니스는 ‘글로벌 필수재’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필수재’란 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사람이 사는데 필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이다. ‘글로벌 필수재’ 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있는 필수재이다.
예를 들면 곡물, 에너지, 치료약, 제조품 원료, 금융 등이다. 필수재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서구기업은 글로벌 필수재인 곡물, 광물, 석유, 제약, 신용카드 등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핵심기업으로 포진해있다. 국제 곡물시장을 장악한 ‘ABCD’, 즉 Archer Daniels Midland (미국), Bunge (네덜란드.미국), Cargill (미국), Louis Dreyfus (프랑스)는 유명하다. 광물은 생산 활동의 동력이 되거나 모든 제조품의 원재료로 쓰인다. BHP Billiton (호주), Rio Tinto (호주), Glencore (스위스) 등이 있다. 현대경제에서 석유는 산업의 필수재이다. 중국의 석유기업들이 크게 성장했지만 아직도 엑슨모빌, 걸프, 텍사코, 로열 더치 셸, BP 등 미국 영국의 석유회사는 탐사채굴, 정유, 판매에서 기술력과 영향력이 막강하다. 질병치료에 필수적인 약은 주로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회사들이 개발공급한다. 무역에서 대금결제는 필수적인데 기축통화를 갖고 있는 미국은 국제금융거래를 장악하고 있다. 개인의 해외여행에서 지출수단은 비자 또는 마스터 신용카드이다.
곡물, 광물, 석유 등의 1차 산품 (commodity)에 서구선진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를 증명하듯 대부분의 거래시장은 서구 선진국에 있는데 여기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시카고상품거래소, 뉴욕상업상품거래소, 런던금속거래소 등에서 1차 산품이 거래된다. 국제 금융시장은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도쿄 등에 있다. 가격은 거래소에서 결정되어 국제 상품 가격지수로 발표된다. 예를 들면 로이터지수는 쌀, 콩, 옥수수 등의 원료상품의 국제가격으로 발표되고, 원유가격은 서부텍사스 WTI유, 브렌트유, 두바이유로 표기된다. 거래소가 있는 도시에서는 관련 가공산업, 중개, 물류유통, 해운, 금융, 컨설팅 등의 전후방산업이 같이 발달한다. 거래시장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석유의 경우는 2000년대에 들어서 세계 각국에서 국제석유거래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글로벌 필수재에는 엄청난 돈이 몰린다. 브라질의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 (Petrobras)의 뇌물사건을 통해서도 석유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10년간의 뇌물과 연관된 금융거래의 규모가 2.5조불이다. 2015년 브라질의 GDP는 1.8조불을 넘는 수준이다.

① 1953년에 설립된 석유, 가스, 바이오연료 등의 생산과 유통을 하는 국영기업이다. 2016년 순매출 2,826억 헤알 (883억불), 종업원 68,800명, 브라질 시가총액 4위이다. 외국인 지분율은 18%이다. 자회사로 Petrobras Distribuidora (석유.부산물 생산유통), Petrobras Biocombustível (바이오연료 개발), Transpetro (해운), Gaspetro (천연가스 개발), Liquigas (LPG 판매유통) 등을 두고 있다. 2010년 대형 심해유전 발견 이후, 이 회사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았다. 2014년 브라질 연방법원은 암달러상으로 구성된 범죄조직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배후에 브라질 최대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비리를 발견했다. 특별검사팀은 작전명 ‘고속세척기 (Lava-Jato)’의 수사를 통해서 지난 10년 동안 브라질 대형 건설사들이 각종 공사 수주를 위해 페트로브라스의 고위 간부 및 정계인사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증거를 포착됐다. 건설사들은 공사금액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총액의 1~5%는 뇌물로 썼다. 뇌물은 암달러상 등에 의해 현금, 해외송금, 페이퍼 컴퍼니와의 허위 계약을 통해 정계 및 재계 인사에 전달됐다. 연방법원은 3년간 수사하여 200건의 구속 명령을 내렸다. 현직 테메르 대통령, 전직 지우마 대통령, 전직 룰라 대통령도 혐의를 받고 있고, 브라질 1위 건설사인 Odebrecht사의 회장, 전직하원의장 Eduardo Cunha, 전 리오 주지사 Sergio Cabral 등 20여명이 구속되었다.

서구기업은 필수재 비지니스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브라질 경제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미국 음모론이 있다. 브라질이 경제위기에 처하면 미국 금융기관들은 브라질에 신규 자본을 제공하지 않고 기존 대출도 연장해주지 않는다. 브라질에 외환공급이 줄어서 브라질 화폐가치가 급락한다. 브라질 정부와 기업들은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팔기 시작한다. 이때 미국이 강한 달러로 브라질 인프라 기업들을 매입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확산되던 당시 Cardoso 대통령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페트로브라스의 외국인 지분율을 기존 0%에서 49%까지 허용하는 법안을 발효시켰다. 현재 페트로브라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18%다.

제조품에 들어가는 중간재도 필수재이다. 제품의 제조과정은 원자재를 중간재로 만든 후 이를 조립가공을 통해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중간재는 다양한 완제품에 공통적으로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도체, 화학제품,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소재, 부품 등이다.

일본은 1차 산품의 필수재 비즈니스를 갖지 못했지만 부품소재 등 중간재의 필수재를 장악했다. 액정편광판 보호필름, 반도체 포토레지스터, 전지소재 등 일본산이 없으면 전 세계 전자산업이 멈춘다. 주요산업의 조립가공 분야에서는 한국과 중국 등에 밀리고 있지만 소재부품에서는 압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필수재는 단가는 낮아도 판매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1센트만 올려도 생산기업에게는 천문학적인 수입을 가져온다. 필수재는 시장개방 이전에도 오래전부터 글로벌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사상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것도 전자제품의 필수재인 반도체를 글로벌 시장에 팔기 때문이다.

필수재가 아닌 대체재 비지니스는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의 등장으로 더욱 그렇다. 한국은 완제 제조품에 특화되어 있다. 우리는 제조품의 고유기능은 큰 변화가 없지만 세부 기능을 계속 개발하여 경쟁력을 유지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내비게이션은 핵심기능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경쟁제품보다 더욱 현장감 있게 구현하기 위해 계속 진화된다. 이것은 브라질의 핵심산업인 요식업 산업의 치열한 경쟁과 비슷한데 브라질의 고급식당은 다른 식당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음식을 예술적 경지까지 올리고, 인테리어는 화려함의 극치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우리가 얼마나 더 ‘글로벌 필수재’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선진국들이 1차산품의 필수재로 부를 창출했던 환경이 변하고 있다. 석유경제는 신재생에너지로 인해 전환되고, 오늘의 신기술은 내일은 보편화되고, 미디어의 발달로 서구의 정보 독점은 약화되고 있다. 의.식.주 관련, 신약, 대체 에너지, 정보통신, 소재.부품, 방산, 항공.우주, 수자원관리 등에서 우리의 새로운 필수재를 기대한다. 이것은 우리가 개미처럼 휴가도 없이 야근하는 고리를 끊는 방법이다.

[이영선 코트라 상파울루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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