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계모 이야기와 ‘팥쥐 엄마 프레임’

최초입력 2017.03.30 20:59:09
최종수정 2017.04.03 14:19:02
중국 제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져 한사람이 죽었다. 발견된 흉기는 하나인데 살해 현장에는 형제 두 사람이 있었다.

형리가 형제 두 사람을 불러 심문하니 형제가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우겼다. 마침내 형리는 죄인을 가릴 수 없어 사건을 왕에게 보고했다.
사건을 접한 왕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 어미를 불러 물어보기로 했다. 어미야말로 자식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침내 왕은 재상에게 어미를 불러 심문하도록 했다. 재상은 그 어미를 불러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두 형제가 모두 죽는 것을 원하지 않소. 그대는 어느 아들을 살리고 싶소?” 그 얘기를 들은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꼭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작은 아들을 죽이십시오.” 재상은 어미의 대답을 이상히 여겨 물었다. “어린 아들이 더 귀여운 법이거늘, 그대는 어찌 생각해보지도 않고 작은아들을 죽이라 하시오?”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작은아들은 저의 소생이고, 큰아들은 전처의 소생이기 때문입니다.”

재상은 더 이상이 여겼다. 전처의 소생을 살리고 제 아들을 죽이겠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저에게 각별히 큰아들을 부탁했고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재상은 궁중으로 들어가 어미의 이야기를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두 아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 전한(前漢)의 유학자(儒學者) 유향(劉向)이 역사적 여성 106 명을 열전(列傳) 형식으로 저술한 ‘열녀전(列女傳)’내용 중 ‘제의계모(齊義繼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①

이혼한 변호사 루크(에드 해리스)는 광고 회사의 사진작가인 젊은 이사벨(줄리아 로버츠)과 동거 중이다. 이들에게 매주 목요일, 루크와 자신의 아이들인 안나(지나 말론)와 벤(리암 에이켄)을 만나기 위해서 전처인 재키(수전 서랜든)를 방문한다.

루크를 사랑하는 이사벨은 각별한 애정으로 아이들을 돌보지만, 재키와 아이들은 이사벨을 못마땅해 한다. 어느 날, 재키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들에게 죽음과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애쓴다. 그러는 중에 이사벨에게도 마음을 열고 대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사벨이 자신의 죽음 후에 아이들의 엄마로 자연스럽게 될 수 있게 노력한다.②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하는 미국의 영화감독 크리스 콜롬버스 (Chris Columbus)의 작품 스텝맘 (Stepmom 1998)은 '콩쥐 팥쥐'에 나오는 미운 계모이야기가 아닌, 엄마노릇에 서툰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마음도 쓰고, 본처와도 잘 지내려고 애쓰는 착한 계모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진-pixabay

① '재혼'이 결혼과 이혼에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시대

“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제 색깔이 잘 나오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그 위에 덧칠을 하게 되면 원하는 색깔이 잘 안 나오죠. 재혼가족을 꾸려 가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이치와 같습니다.”③




재혼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설명하는 말이다. 하지만 재혼가족의 비율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결혼한 커플 중에서 한쪽이나 양쪽 모두가 재혼인 커플은 6만551건으로 전체의 21.5%로 5쌍 중 1쌍은 재혼임을 알 수 있다.④

가정법률상담소 자료에 따르면 재혼커플의 30%가 자녀들이나 유산 등의 문제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재혼커플의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재혼이 급증하면서 이제 재혼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도, 쉬쉬하며 감춰야 할 일도 아니다.

예전엔 배우자와 헤어지고 혼자 자식들을 키우면 '장하다'고 했지만 요즘엔 '안됐다'는 분위기다.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재혼은 결혼과 이혼에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만큼 사회적 상황이 변한 것이다. 이혼이던 사별했던 자식들이 부모가 짝을 찾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과거 같으면 자녀들의 일방적인 거부감이 재혼에 큰 걸림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또 사회적으로도 "왜 혼자 살아"라며 재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⑤ 전반적으로 우리사회가 재혼 가족의 증가로 새로운 가족의 삶과 적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초혼자 들의 약 60%가 이혼으로 끝나고 이혼자의 75%가 3~4년 안에 재혼하기 때문에 조만간 재혼가족이 초혼가족을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재혼가족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반적인 가족유형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결혼의 한 형태로 ‘재혼’이 자리 잡는다고 하지만 재혼가족의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초혼보다 가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그들은 이미 형성된 가족구조 속으로 새로이 편입해 들어가야 하는 과정, 전(前) 결혼의 잔재적 영향으로 인한 구성원 모두의 심리적 혼란 등을 겪는 등 재혼가족은 가족 경계의 혼란, 가족주기와 가족구성원의 생의 주기간의 부조화 등등 해결해야 할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재혼은 초혼보다 가족관계, 친척, 사회적 관계에서 더 복잡한 변수들이 작용할 여지가 많고, 따라서 가족의 형성에 있어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재혼은 초혼과는 달리 재혼에 관련된 규범이 아직 구체적으로 정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제도로 볼 수 있으며 초혼보다 이혼율이 높다는 보고는 불안한 재혼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낳는다. 재혼의 이혼율이 초혼의 이혼율보다 더 높을 가능성은 미국의 경우에 이미 10년 전 현상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현행 가족의 범주에서 보여주는 고정관념 또한 재혼가족을 힘들게 하는 문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초혼․혈연중심의 핵가족과 부계 중심적 한국가족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이들 재혼 가족의 삶은 그 특성상 초혼가족과는 다른 접근이 요청되고 있다.

최근 재혼가족에 대한 상담이나 연구 이해측면은 재혼가족의 문제점에 초점을 둔 문제 지향적 접근에서 재혼가족과 초혼가족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재혼가족의 다양성과 관계의 복잡성에 초점을 두고 건강한 가족발달과 적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재혼가족의 사회적지지 및 지원방안에 대한 정책적 관심 이를테면 가족기록부 개선 등 사회적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 재혼가족을 문제 지향적으로 보는 시각은 재혼가족의 성공적인 적응을 막는다. 특히 “초혼 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재혼 가족은 불완전하고 문제 있는 가족으로 취급한다.

> 혈연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가족 중심주의에서 계자녀나 새부모 관계를 안정화한다는 것은 상호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사회의 법과 제도 역시 재혼가족이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많은 제도적 개선을 필요로 한다.

> 재혼가족의 성원 중 특히 재혼여성은 아동양육과 교육, 가정관리의 주된 담당자로서 그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여성은 남성보다 부모역할에 대한 불만족이 크고 스트레스 수준이 훨씬 높다.

> 재혼가족에 대한 인식과 문제를 반영하는 대부분의 용어들이 ‘계모’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재혼여성의 역할 비중이 그만큼 크고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재혼가족을 하나의 가족구조로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재혼의 양상이 과거와는 다르게 사회의 일부를 차지하고 재혼을 알선해 주는 재혼 비즈니스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 실정으로 보면 이제 재혼이 하나의 가족유형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나아가 재혼가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⑥

② 포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가족개념의 도입

우리 사회가 산업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 형태도 바뀌고 있다. 1인 가구나 2인 가족이 늘어나는 등 핵가족이 더 분열돼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과거엔 생각도 못한 전혀 새로운 가족 형태도 등장했다. 혈연관계가 섞이지 않은 '공동체 가족'이며, 떨어져 살지만 정서적 연대를 유지하는 '원(遠)거리 가족', 출신 국적이 다른 '다문화가족', 심지어 동성애 커플이나 사이버 세계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사이버 가족'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혜경 박사는 "가족이 혈연만으로 맺어지는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혈연'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혈연 공동체'에서 '정서(情緖) 공동체'로 가족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⑦


▷ 달라지는 가족 형태의 변화/‘정(情)’은 ‘피’보다 진하다.

가족이 “정서적이고 물질적인 지지에 기반을 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상호간에 기대를 갖고 그들의 삶의 유형과 관계없이 상호 책임감, 친밀감과 계속적인 보호를 주고받는 구성체”라는 기든스(Giddens)의 정의에 기초하자면 1인가구는 가족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1인가구는 전체 가구 구성의 25%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안적 가족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장래가구추계에 의하면 ‘부부+자녀’로 구성되는 가구가 2015년 전체 가구의 32.4%에서 2030년에 22.5%로 감소하며, 1인가구는 2015년 27.1%에서 2030년 32.7%로 증가한다. 가족의 규모를 나타내는 가구원수의 감소와 1인가구, 한부모 가구, 조손가구, 무자녀 가구, 그리고 비혈연가구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⑧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현대인들의 행복 추구 욕구가 커짐에 따라 가족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싱글 맘과 같은 '한'부모 가족도 우리 사회가 껴안아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가족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게 되고 자아실현 욕구가 강해지면서 조혼(早婚) 기피 현상이 생긴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 없이 자유롭고 풍요한 삶을 누리길 원하는 부부도 등장했다.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무자녀 맞벌이부부)이나 통크족(TONK·Two Only No Kids: 무자녀 노인부부)이 그 예다.⑨

▷ 가정을 통한 사회 건강성의 회복

미국 ABC 방송국에서 2009년부터 방영 중인 시트콤 '모던 패밀리'는 현대 미국 가족의 일상을 코믹하게 그려내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트콤에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한 가족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범한 가정의 형태로, 부부와 이들의 자녀로 구성돼 있다. 다른 가족은 양쪽 모두 재혼인 미국인 남편과 콜롬비아인 부인, 그녀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이뤄진 '다문화 재혼 가정'이다. 또 다른 가족은 미국인 동성애자 부부와 이들이 베트남에서 입양한 딸로 구성된 '다문화 가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범위는 더 이상 '부부와 그들 사이의 자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국제결혼ㆍ입양ㆍ이혼 등 다양한 제도로 인해 가족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됐다. 비록 모습은 제 각기 다르지만 이들 역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다.⑩

가족 형태가 다양해져도 가족은 여전히 사회를 이루는 기초 집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 수가 줄고 가족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존립에 치명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 결속력을 다질 수 있도록 정부나 기업이 ‘가족 친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아우를 수 있는 가사 지원이나 노인 부양을 위한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탄력적인 근무 시간제를 도입하거나 다양한 복지 지원을 통해 직장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⑪ 이와 함께 가족의 개념을 오직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만으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가족개념의 도입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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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회적 편견과 통념도 재혼 가정 자녀들을 힘들게 하는 주요인이다. 이를테면 재혼 가정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버리지 않고 있는 신화들은 고전격의 동화를 통해 여전히 오늘도 전수되고 있다.

글을 깨치면서부터 접하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등의 동화는 “재혼 가정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새엄마와 짜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동화 속 새언니들은 혈연관계로 이어지지 않은 자매는 절대 진짜 자매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한 동화나 드라마 등의 대중매체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계모와 계자매에 관한 편견과 통념은 아직까지도 동화라는 탈을 쓰고 아이들에게 가족에 대한 구시대적 가치관을 강요한다. 그리고 대중매체 또한 재혼가족에 대한 또 다른 형태로 왜곡된 신화를 재생산하는 주범으로 자리매김해 온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KBS2 가 ‘아이가 다섯’(연출 김정규, 극본 정현정 정하나, 2016)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재혼가족의 상황을 사실적 개관적으로 다루려고 한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몇몇 프로그램, 즉 재혼 가정 자녀 사이의 사랑을 다룬 비극적 드라마 혹은 재혼가족에 대한 부정적 왜곡된 묘사는 아직도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과거 인기리에 방송 되었던 ‘엄마는 뿔났다’나 ‘미우나 고우나’도 줄거리 한 측을 재혼가족이 담당하고 있다. 특히 ‘미우나 고우나’에서는 40대중반에 들어선 재혼부인의 출산을 요구하는 시어머니와 데리고 온 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중 분위기는 재혼가족에게 엄청난 부담을 준 것은 틀림없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은 재혼 가정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총체적 세트다.⑫

한정서를 괴롭히는 새엄마와 새여동생 한유리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신화를 재현하고, 한정서를 사랑하는 한태화는 재혼 가정 남매 사이의 성적 긴장감을 보여준다.

▷ 이젠 '착한 계모 이야기' 할 때

“새엄마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처럼 나쁜 예로만 받아들여요. 내가 낳은 아이와 낳지 않은 아이를 똑같이 대해도 주변에서는 잘하는 것보다 혼내고 야단치는 것만 보니 마음이 아파요.” ‘새엄마’들이 모이는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이런저런 고민들이 올라왔다. 또 다른 엄마도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도 새엄마인데요. (언론에 ‘나쁜 새엄마’ 얘기들이 보도될 때는) 혼낼 일이 생겨서 아이를 혼내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새엄마라서 그랬다고 할까 봐서요.”

어렵게 다시 가정을 꾸린 재혼 가정의 ‘새엄마’들이 잊을 만하면 대서특필로 보도되는 아동학대 사건 때문에 남들은 모르는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새엄마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라도 일어나면 언론 보도의 제목은 온통 ‘계모’ 일색으로 도배된다. 이를테면 ‘비정한 계모…8살 의붓아들 6개월 학대 끝 발로 차 숨지게 해’라는 제목은, 계모에게 복부를 차여 숨진 경기 안산의 8살 남자아이에 대한 연합뉴스가 ‘2017/03/15’ 송고한 기사 제목이다.

이러한 기사 내용의 부작용은 사실보도여부를 떠나 의붓엄마(계모)가 학대의 주인공이라 계모에 대한 주변의 편견과 삐딱한 시선을⑬ 한층 더 강화 시켜 나가는 후유증을 낳게 만든다.

연구에 따르면 ‘계모’는 처음부터 계부보다 아이들에 의해 거부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이유는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새엄마에게 가정 내 질서와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해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녀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계모’는 결혼(재혼) 생활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⑭ 그래서 2004년 31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건강가정시민연대는 ‘계모’를 사라져야 할 용어로 제안했다.⑮

조금 더 ‘계모’와 관련된 지난사건들을 되돌려 보자. 재혼한 남편의 10살배기 딸에게 소금과 대변 등을 먹여 학대하다 끝내 숨지게 한 50대 여인. 울산시 울주군에서는 동거남의 8살짜리 딸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려 사망하게 한 엄마도 있었다. 울주 사건에는 아동학대 아닌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하필이면 둘 다 계모다. 인터넷에는 ‘계모학대’ ‘울주계모’ 등의 검색어가 상위에 올랐다. 친자식이 아니니 저런 짓을 했을 거라는 ‘팥쥐엄마 프레임’이다.

한겨레 독자기자석에 올라온 글을 보자. ⑯

울산 실종 어린이 살해 보도의 제목을 보면 온통 ‘계모’ 일색이다. 마치 ‘계모’라는 조건이 아이를 살해하는 이유와 동기를 말해주는 듯 ‘인면수심 계모’ ‘잔인한 계모’라고 달고 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악행이 빚은 참극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제목의 기사는 늘 되풀이하던 대로 ‘계모=악녀’의 공식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한 개인의 행위를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과 연결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기사의 경우는 “역시 계모라서 그랬군”이란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이 재혼해서 잘 살아보려는, 아이들을 잘 키워보려고 하는 수많은 선량한 ‘계모’들의 가슴을 또 얼마나 짓이겨 놓았을까?


사실 악독한 계모 이미지는 전래동화나 민담에서 흔히 발견된다. ‘콩쥐팥쥐’ ‘장화홍련’ ‘백설공주’ ‘신데렐라’가 다 그렇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대로 동화 속 계모의 악행은 100% 진짜가 아니다. 옛부터 전해진 ‘잔혹하고 야한 성인용 이야기’들을 채록해 아동용 동화로 전승하는 과정에서 각색이 일어났다. 원래는 친엄마의 소행을 어린이 독자의 심적 충격을 고려해 ‘계모’로 바꾸는 식이다.

실제 그림형제 ‘핸젤과 그레텔’의 원 버전에서 남매를 숲에 갖다 버리는 사람은 계모 아닌 친부모였다. 이 버전을 국내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친엄마가 애를 버린다는 게 말이 안 되니 다시 계모로 하자”며 꽤나 설왕설래했다는 것이다.

울주 사건 대책모임을 만들고 있는 한 관계자는 SNS에 “비슷한 시기 친부가 골프채로 아이를 폭행·사망케 한 사건은 묻혔다. 오직 계모 사건에만 관심이 몰린다”고 썼다.⑰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밝힌 ‘2015 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과의 관계’의 통계를 보면 친부/모에 의한 학대건수는 8843건, 계부/모에 의한 학대건수는 473건에 불과(?)함을 알 수가 있다.⑱

2013년 11월 친부모에게 피멍이 들도록 얻어맞은 7살 P군은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에 경찰관에게 발견됐다. 아래로 네 살, 한 살 동생들에게도 비슷한 멍자국이 발견됐다. 경찰서로 불려온 엄마는 "집에 오면 또 맞을 줄 알라"며 다그쳤다. 경찰에게는 폭행이 아니라 훈육 차원이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강서경찰서는 폭행을 한 부부를 불구속 입건하고 P군과 동생을 아동보호시설에 보냈다. 친엄마의 직업은 학원 선생님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⑲


서울 마포구 한 사회복지사는 “이런 결과는 전체 가정에서 계모·계부 가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은 것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핵심은 계모냐 친모냐가 아니다. 당연히 친부모나 의붓부모 모두 착한 부모, 나쁜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계모만 자꾸 이슈가 되다 보니 아동학대가 왜 일어나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⑳

그래서 재혼가정의 새엄마들은 따라서 ‘신데렐라’ 각본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새엄마가 아닌, 새로운 새엄마 모델의 등장을 목말라 할지도 모른다.

재혼 후 6년째가 되지만 시어머니가 남편의 딸아이를 '나쁜 계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전히 키우고 있는 상황에 놓인 주부 서모(39세)씨는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㉑

지금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데 어릴 때는 친엄마인지 새 엄만지 긴가민가하면서 주말이면 우리 집에 와서 자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새 엄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뒤에는 아예 우리 집에 안 오려고 해요. '무서운 새엄마'집이다 이거죠. 계모에 대한 편견을 가진 시 어머니의 영향에다<신데렐라> 같은 동화속의 고정된 계모 이미지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 같아 안타깝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서 재혼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동화가 소개 된걸 보았어요. 새엄마 혹은 새아빠를 맞이한 아이가 새 가정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들이어서 참 반가웠어요. 아직 그런 내용의 책이 많은 건 아니지만 아이가 그런 책들을 통해서라도 나쁜 편견을 조금씩 고쳐 나갔으면 좋겠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착한 계모'들 얘기도 수없이 많다. 한 40대 여성 새엄마가 의붓아들에게 신장을 기증한 '감동'의 이야기도 있다. 흔히 말하는 '계모'가 의붓아들에게 자신의 신장 한 쪽을 선뜻 내준 것이다.㉒

"가슴으로 낳아 기른 아들이 아프다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아들이 완쾌된다는데 신장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못주겠어요?"

충남 공주에 사는 이경숙(43.여)씨는 지난 10일 대전 을지대 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아들 전철희(17)군에게 신장을 나눠줬다. 6년 전 철희군의 아버지(43)와 재혼하면서 인위적으로 맺어진 모자(母子) 관계가 신장을 함께 나누며 진짜 혈육이 된 것이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철희군은 중학생 때부터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이틀이 멀다 하고 학교 수업을 빠지다보니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데다 아픈 몸으로 수업진도는커녕 학교생활마저 힘든 날이 반복됐다. 그러던 중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신장이식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의료진의 설명에 선뜻 이씨가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나섰다.

철희군의 아버지는 오랜 당뇨 투병생활로 신장이식이 불가능했고, 여동생은 너무 어려 이 씨가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던 것. 이 씨는 "아파서 학교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는 철희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며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내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사회는 종래의 가부장적 호주 제도를 폐지하고 가족등록부를 개선함으로써 계부와 계자녀가 서로 다른 성(姓)을 갖게 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재혼가족 결합에 어려움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이혼과 재혼에 대한 추세에 대응하는 제도 개선 및 사회적 이해도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새롭게 구성된 재혼가족의 구성원이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이 안정되고 이러한 가정을 통해서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고 재혼을 하려는 당사자도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는 매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 출처 및 인용 참고문헌>

① 이용범,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초당(2002), p.118-120

② 최상희, 영화줄거리 요약, movie.daum.net

③ 김윤현 기자, "결혼이 세 번 고민이라면 재혼은 서른 번 고민해야"[커버 · 재혼가정 행복만들기]/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 인터뷰, 주간한국, 2007.05.11

④ 2016년 혼인·이혼 통계자료, 통계청(http://kostat.go.kr)

⑤ 박동준 박미선 기자, 재혼-숨길 게 뭐 있어 …'위풍당당한 재혼' 시대 , 일간스포츠, 2005. 5. 12.

⑥ 이영석& 정일선, 재혼가족의 실태와 가족기능 강화방안, 경북여성정책개발원(2004-1연구보고서), p.3~6

⑦ 김경화 기자 외, [심층 리포트] [가족의 재구성] [1] 가족의 재구성… 핏줄에서 정(情)으로 <특별취재팀>, chosun.com, 2009.07.25

⑧ 이숙진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다양한 가족과 사회정책, 참여연대(http://www.peoplepower21.org), 2017.01.01

⑨ 장욱 기자, 올해 호주제 폐지를 통해 본 ‘대한민국 가족 자화상’, 중앙일보, 2008년 1월 8일

⑩ 조아라 기자, [이달의 권장 도서] 헷갈리고 복잡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 소년한국, 2014/12/07

⑪ 장욱 기자 , 위의 글

⑫ 안인용 기자, 너무나 복잡한 가족의 탄생!, 한겨레21, 2006.10.24

⑬ 진명선 서영지 기자, 계모 아동학대 사건 날 때마다 새엄마는 숨죽여 운다, 한겨레신문, 2014년 04월 14일

⑭ Joshua Coleman Ph.D. Stepmothers in Distress (https://www.psychologytoday.com), posted Mar 18, 2009, 내용 참조정리

⑮ 성강현 기자, ‘역시 계모 안돼’ 부정적 시각 도배 우려, 헤이맨뉴스, 2008.08.14

⑯ 박지영, [독자기자석] ‘계모=악녀’ 재생산 보도에 계모들 피멍, 한겨레, 2008-02-15

⑰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분수대] 핸젤과 그레텔에서 애들을 내다버린 이는 계모 아닌 친부모였다, 중앙일보, 2013.11.23

⑱ ‘2015 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과의 관계’의 통계자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http://korea1391.go.kr)

⑲ 작성자 강병진, 아동학대의 주범은 친부모 : 전체 사건 중 80%의 가해자가 친부모, 계모는 2%,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4년 04월 13일, 필자 기사내용 일부정리

⑳ 진명선 서영지 기자, 위의 글

㉑ 장혜경& 박경아, 당당하게 재혼합시다, 조선일보사(2002), p. 157-158

㉒ 김준호 기자, "가슴으로 낳은 아들에게 신장 하나쯤이야", 연합뉴스, 2008.03.26



[강희남 한국전환기가정센터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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