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Surrealism은 현실인 동시에 관념이자 상상이다

최초입력 2017.09.07 20:33:06
최종수정 2017.09.07 20:34:25

Golconda - René Magritte 1953

시인들과 미술가들의 모험적 운동이라는 것은 역사적 현실이고, 이성의 모순들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철학적 개념이며, 도시의 매혹과 붐비는 러쉬아워의 거리는 현동적인 상상력이다. 대규모의 역사적 종합으로 글씨기와 무의식, 반항과 사랑, 일상과 유토피아를 결합한 초현실주의는 너무 세분화되어 우리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대상 혹은 총체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필자는 이에 초현실주의의 예술 운동간의 관계적 역사와 그 내용을 풀어 내려한다.

우선 개념을 살펴보면 초현실주의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영향을 받아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 예술 사조를 말한다. 초현실주의의 창시자는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다.
1924년 10월의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앙드레 브르통은 처음으로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명확히 밝히면서 생존하는 초현실주의자들과 그들의 선배를 정리하며, ‘초현실주의’라는 단어를 정의하려고 하였다. 그는 대중에게 '초현실주의'라는 개념을 유포하고, 그것의 성공을 예언하며, 프랑스어 사전과 철학 사전에 독단적으로 단어를 배치하였다. 그것은 언어에 관한 시인들의 통제 권리와 아카데미학파에 대한 우선권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그당시 브르통의 행동은 굉장히 대담하였다 평가된다. 직전에 있었던 단어의 기원과 적용에 관한 논쟁을 종식시키기도 하였다.

초현실주의는 사고의 실제 작용을 말이나 글, 혹은 그 밖의 모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순수한 정신적 현상을 일컫는다. 이성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통제를 벗어나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의 흐름과도 같다. 이러한 정의는 정신의학과 철학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의 사상을 이루는 핵심 단어들을 알게 되면 그 윤곽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앙드레 브르통은 합리주의와 대립하면서 꿈, 유년기, 상상력, 광기에 호소하였다.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엄밀하게 철학적으로 정의 내리면서, 순수한 정신적 자동 기술은 ‘다른 정신적 기제들’을 손상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명확히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기계적이고 생물학적이며 자연적인 모형과 혼동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일종의 불규칙적인 기제나 생기기 시작하는 자발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연 법칙과 사회적 순응주의와 사고의 습관들을 벗어나는 정신적 우연이나 자화된 지속으로 일치시키기도 할 것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난 배경은 어떻게 될까.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다다이즘(제1차세계대전(1914~1918) 말엽부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 조형예술뿐만 아니라 넓게 문학•음악의 영역까지 포함한다.)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는 예술 운동의 하나였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 공상 등의 비현실적인 세계와 이성에 속박되지 않고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며 인간 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큰 목표로 하였다. 의식적인 정신을 개입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손을 놀려 그림을 그렸던 그들은 자신의 환상 사계를 그림으로 그려 이것의 실제화를 꿈꿨던 것이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이렇게 복합적이며 매우 특수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보게 되는 이미지는 예술 안에서 만큼은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다소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현실의 비교가 아니라 근접 병치에서 탄생할 수 있다. 병치된 두 현실의 관계가 멀고 적절할수록, 이미지는 그 만큼 더 강해질 것이며 감동적인 힘과 시적 현실성을 그 만큼 더 많이 얻을 것이다. 이 이미지를 가장 대변하는 사조가 초현실주의가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여느 개인처럼 초현실주의는 어느 날 태어났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초현실주의에 15년간의 생존 기간을 부여하였다. 즉『초현실주의 선언』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의 넘을 수 없는 장벽까지의 1924년에서 1939년 까지를 말이다. 확실히 이 시기 동안 주요한 작품들이 축적되고, 브뤼셀, 베오그라드, 프라하, 런던, 카나리아 군도, 도쿄까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시와 미술, 개인적 도덕과 집단적 행동을 결합하는 총체적인 역사적 사건인 초현실주의는 그 세기의 미래파, 입체파, 다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실존주의 같은 보다 편협한 경향들을 넘어서서 낭만주의나 계몽주의 철학의 차원과 비교할 만한 차원에 이르렀다.

또한, 역사의 기록을 재빨리 인식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당장에 그들 자신의 역사를 썼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에 그 역사가 근대성과 합쳐졌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 역사가의 선수를 치면서, 현재를 소집하고 사건을 제작하는 것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미디어적이고 저널적인 행위를 앞지르기 시작하였다. 만약 자연에 대한 낭만적 감정이 개인을 우주나 살고 있는 환경과 화해시킨다면, 만약 관념들의 백과사전적 교류가 대화와 지식의 취향을 전파한다면, 초현실주의자들의 일상적 경이는 우리에게 도시의 수수께끼를 풀도록 독촉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도시가 이미 더 이상 분화되지 않고 아직 파괴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시절에 초현실주의자들은 그 공간을 분해하고 재창조 시켰다. 영화와 드라마가 스튜디오의 전형화된 무대에서 벗어난 카메라가 지나가는 남녀들의 특징적인 태도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우리의 일상에 사소한 사고를 포착해서 그들의 상상력을 통해 사건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참고문헌 : 조르주 세바, 『초현실주의』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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