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의 즐거움 현대미술의 시작

최초입력 2017.09.08 22:02:15
최종수정 2017.09.08 22:02:39

Fountain – Marcel Duchamp

오늘날 미술·예술은 어떻게 평가 될까,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시각적인 표현에 그치는 차원인가. 1917년에 이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작가를 ‘망막의’ 즐거움을 위해 수공으로 시각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세상을 다시 생각하고 언어를 통해 의미를 재창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상의 것도 정체성과 명성, 섹슈얼리티 및 기타 숨겨진 의미를 전달한다. 이렇게 미술, 예술은 오래전부터 복잡한 목적을 지니며 그 겉모습은 달리하며 발전하고 있었다.

지난 100년간 현대미술을 이루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자. 그 중 하나는 미술과 다른 문화 장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현대라는 시기를 거치면서 미술과 일상 간의 경계는 다양한 형태로 녹아내렸다.
고급 미술과 대중 미술 간의 교류는 서로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발견된 사물과 레디 메이드(Ready-made;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오브제로 보는‘기성품’)의 이용은 전유, 리믹스와 더불어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소비 대중문화의 요소를 전유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마르셀 뒤샹은 남성이라면 매일 마주치는 소변기를 '레디 메이드' 오브제로 제시하며『샘(Fountain)』(1917)이라는 제목을 달아 현대미술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풍경과 인물들을 위주로 묘사하여 작품을 만들던 시대에서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만들고, 예술의 대한 대중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 세계가 하루 생활권에 들어와 우리는 세계와 너무나 쉽게 소통할 수 있다. 지금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한데 같은 문화와 생각, '망막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시대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표현하여도 그것은 거부감이 드는 괴상하고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각기 ‘다름’을 지니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 범위이다. 이에 필자는 공감의 힘을 빌어 사적인 이야기가 가장 공적일 수 있다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그 예로 한때 그 가치가 인정받지 못한 소위 마니아적인 장르라 여겨지던 만화책과 만화 이미지의 차용은 그 자체로 각광받는 하위문화가 되었다. 평면성이 두드러진 아니메(anime)와 망가(Manga)의 극단적으로 귀엽고 폭력적이면서 성적인 이미지는 특히 일본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중 화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와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진 작가로, ‘슈퍼플랫’ 양식의 만화적 스타일을 회화에 적용시켰다.

미술과 시각문화의 구분은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작가들은 비예술적 경험을 미술에 끌어들이고, 반대로 미술을 더 넓은 시각문화에 소개하기도 한다. 전시를 미술계 내부에만 한정하지 않음으로써, 미술작품은 시각문화의 다른 산물들과 한데 어우러진다. 큐레이터 벤자민 웨일에 따르면 현대미술가들은 정보가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공공장소의 무질서 속에 미술 프로젝트를 집어넣는 환경 전략을 탐색해왔다고 이야기한다.

Untitled – Felix Gonzalez-Torres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쿠바 출신의 '개념미술가'로 일상사물과 이미지의 시적 사용으로, 대중과 개인 사이의 접점을 탐구하였다.)같은 작가들은 보통 상품 광고용으로 이용하는 옥외 광고판을 자신의 아이디어를 ‘파는’ 용도로 이용하였다. 버려진 극장의 대형 차양은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메시지를 심어 놓기에 훌륭한 장소다. 이렇듯 스티커나 포스터, 기타 거리 문화의 요소들은 작가들의 손을 거쳐 매력적인 미술 도구로 거듭나게 된다.

TV나 영화, 음악, 비디오 게임 같은 대중문화는 작가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와 동시에 미술은 점차 상업과 오락 산업의 노골적인 이미지와 매혹적인 사물, 생생한 이야기와 경쟁 또한 필연이라 할 수 있다 .

전 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새로운 정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확산은 국가를 막론하고 현대미술 생산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팽창한 새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정보의 구조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구글이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탈중심화된 인터넷은 실제 도서관이나 손으로 쓴 일기, 인쇄된 책, 신문 혹은 백과사전의 세계와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은 우리를 이상적 도서관이나 만물 시장의 개념에 보다 실질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학술 논문이나 뉴스, 요리법, 과거의 지인, 날씨, 의학 TV프로그램, 일반인들이 자신의 ‘사적인’ 거주 공간에 설치한 웹캠 생중계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의 비디오를 감상할 수도 있다. 또한 누구나 정보의 흐름에 한 몫 보탤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식의 생산은 사회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트랜드 자체가 모든 것을 한데 섞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시기이다. 따라서 천문학, 수학, 물리학, 의학, 심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과학의 여러 분야에 이르러 다양한 분야와 컬래버레이션, 융합이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이 시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현대미술은 포용의 장르일 수 밖에 없다. 현대미술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우리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큰 의미를 내어주는 듯 말이다.

[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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