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딸영어(10) - 영어를 하면 뭐가 좋을까?

최초입력 2018.01.10 11:09:22
최종수정 2018.01.10 19:59:31

출처 : 픽사베이



영국 버밍엄대학 공과대학에서 학부 유학할 때 당시 내 친구는 영국 말고 싱가포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로렌스였다. 아빠는 노르웨이 사람이고, 엄마는 일본 사람이다. 선박 디자인을 하던 아빠가 일본 출장을 자주 갔는데,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로 일하던 엄마를 만나 결혼했고, 그 결실이 로렌스였다. 덕분에 로렌스는 노르웨이어, 일본어, 영어를 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가족이 모이면 영어로 대화한단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공대 특성상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팀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그들과 부대끼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낼 때 성취감은 대단했다. 자라온 환경과 언어가 다르지만, 국제공용어인 영어로 소통하며 공동의 목표를 이룬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로렌스와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밤새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노르웨이는 어떤 나라이고, 로렌스의 눈을 통한 일본은 어떤 나라인지 배울 수도 있었던 건 보너스였다.

작년부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하는 국제학술지 English Today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http://www.cambridge.org/core/journals/english-today). 임기를 마친 편집장이 물러나고, 2018년부터 마카오대학에 있는 새 편집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가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하고, 오는 사람을 환영했다. 편집장 포함 호주, 독일,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말레이시아, 한국, 스웨덴, 남아프리카 등 각지에 있는 28명의 편집위원이 덕담을 주고받았다.

편집위원 일은 연구자로서 학계에 이바지하는 무료 봉사다. 하지만 David Crystal, David Graddol 등 책에서만 보던 학자와 함께 공동의 목표를 이뤄가는 일을 한다는 건 그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다. 축구로 치면, UEFA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셈이다. 사는 곳, 인종, 나이, 성별이 다르지만, 주고받는 이메일을 통해 친근감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영어를 할 수 있으므로, 얼떨결에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이 생기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영어를 안 쓸 거면, 영어를 못하거나 굳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영어를 하면 영어를 하지 못할 때보다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얼마 전에 지난 2016년 3월 서울에서 진행된 이세돌과 알파고(AlphaGo)의 바둑 대결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보다는 그 인공지능을 만드는 알파고 팀(AlphaGo Team)에 주목했다.

스티브 잡스는 재능이 뛰어난 A급 인재는 일반인보다 50~100배 성과를 낸다고 말하곤 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는 20년 전에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일에 A급 인재들을 투입해 A급 팀을 만들었다. 알파고 팀은 자기들이 개발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마치 과거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던 아폴로 프로그램에 비유했다. 그들은 인류가 전혀 가보지 못한 미개척지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A급 인재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달라붙었고,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일을 결국 해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영어로 소통하며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팀원들을 보니, 속에서 뭔가 묵직한 게 치밀어 올랐다. 현재 나도 내 있는 곳에서 뭔가 하고 있지만, 우리 딸도 세계인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나만의 바람일 수도 있지만, 우리 딸이 A급 인재들과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진화해가면 좋겠다.

영어를 하면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전혀 생각지 못한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다.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딸이 인공지능 통역기 따위 없이 스스로 영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오늘 새벽에도 날씨가 추우니 자동으로 꺼지는 내 아이폰을 보며, ‘의심은 확인시켜주면 확신이 된다’는 영화 ‘꾼’의 대사가 생각났다. 중요한 순간에 춥다고 배터리가 자동으로 꺼지는 친절한 인공지능 통역기를 탓해봐야 소용없다. 추운 날씨에도 배터리 걱정 없이 영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정채관 박사(교육학) 매일경제 우버人사이트 칼럼니스트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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