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의 실패담(1) : 에이브라함 링컨

최초입력 2017.09.20 20:47:35
최종수정 2017.09.20 20:59:04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 미국 노예해방을 이루어 현재까지도 존경을 받는 대통령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러나 링컨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그의 인생도 실패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집안이 부유하지 못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고 일찍부터 노동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9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 가세가 기울어 다른 집 머슴살이도 해야 했습니다. 배를 타는 뱃사공으로 전전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15살 때는 집을 잃고 거리로 쫓겨났습니다. 19살이 되던 해에 그동안 의지하고 지냈던 사랑하는 친누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22살에 들어간 직장에서 돈 한 푼 모으지 못하고 해고를 당했습니다. 23살에 지인과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26살에 주 의회 의원에 당선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지만 28살이 되던 해 4년 동안 좋아하며 쫓아다니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30살에 우여곡절 끝에 한 여자와 약혼하지만 약혼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30살까지 인생만 봐도 좋은 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보면 실패만 보입니다.

33살에 열등감 많은 여자를 다시 만나 결혼했지만 매일 싸우고, 이후 30대에 계속 도전했던 하원의원에도 낙선하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되는 실패에도 절망하지 않고 변호사로 계속 활동했습니다. 40대 초에 두 어린 아들을 연달아 잃는 비극을 또 겪게 됩니다. 45살 때 부통령으로 출마했지만 또 낙선하고, 상원 의원에도 도전하지만 역시 떨어집니다.

51살 때까지 계속 도전하지만 실패하는 인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원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더글라스와의 토론에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7번의 공개토론에서 논리적으로 진행하여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1860년 그의 나이 53세 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 받고, 선거에서 이기면서 결국 16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53세 때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링컨은 누가 봐도 참되지 않고 실패만 맛보는 인생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링컨을 연구한 후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공식적으로 27번의 실패했다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언론에서는 링컨을 “실패를 밥 먹듯이 하면서 도전하는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선거에서는 공식적으로 6번을 떨어졌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그러나 그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자기 꿈을 위해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마지막에 결국 대통령에 올라 미국에서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비록 반대파의 의해 총탄으로 아쉽게 돌아가셨지만 '미친 실패력'을 가진 소유자라고 감히 칭하고 싶습니다.

“저는 실패할 때마다 실패에 담긴 뜻을 배웠고 그것을 디딤돌로 활용했습니다.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한 것이 제가 성공을 이룬 비결입니다.” 이 말로 링컨이 왜 성공했는지 대신합니다.

[황상열 인생모멘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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