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다

최초입력 2017.12.27 10:53:48
최종수정 2017.12.27 20:46:38

사진:픽사베이



IMF로 인하여 친정아버지의 하시던 사업도 큰 타격을 받고 우리가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 친정식구들은 밤에 도둑이사를 해야 했는데 작은 리어카에 기본적인 살림살이들만 실어서 옮겨갔다. 이사라 해 봤자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왕이면 모르는 곳으로 멀리 이사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 멀리라도 갈 돈도 우리에겐 없었다. 방 한 칸에 점포가 하나 있는 곳을 이웃 분이 싼 값으로 살게 해 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붕어빵 장사를 하게 된다.
결혼을 한 후였지만 여러 형편상 친정 식구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붕어빵 장사를 해 보겠다고 덤빌 수 있었던 것도 갑자기 이런 형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살면서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던 첫 날은 가스 불 조절을 잘못 하여 불을 켜자마자 내 머리와 눈썹이 거슬러 버리는 사고가 생겼다. 더구나 아들까지 업고 있었는데 그나마 아들도 나도 어떤 화상도 입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어설프게 장사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남들처럼 거창하게 계획적으로 창업을 준비했던 것이 아니다. 정말 뭐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있는 형편으로 시작했던 나의 첫 장사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골목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붕어빵들이었지만 내가 만드는 붕어빵은 왠지 특별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땅콩을 갈아서 넣어보기도 하고 각종 견과류들을 원가 생각도 하지 않고 넣어 시도해 보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내게 붕어빵을 사러 와 주는 손님들이 고마운 생각에 사실은 돈을 받고 판 것보다 덤으로 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해 본다, 아깝다는 생각보다 뭔가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부유해 지던 겨울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29살이었다.

붕어빵 장사를 잠시 시작으로, 뒤이어 시누이와 함께 온천장 번화가에서 녹즙 장사를 하게 되었다. 싱싱한 야채들을 아침마다 깨끗하게 씻어서 준비해놓고, 오시는 분들께 즉석으로 녹즙을 만들어 줬다. 손님들이 몰려 올 때는 들어와서 제대로 앉아 있을 곳도 없던 작고 허름한 가게였다. 그래도 손님들은 줄서서 기다렸다가 몸에 좋다는 녹즙 한 잔을 마시고 갔다. 돈 통으로 쓰던 소쿠리에는 거스름 돈으로 8000원을 항상 준비해두었고 손님들은 2000원하는 음료를 드시고 직접 돈을 넣고 거스름돈을 바꿔 가도록 했다.

오시는 손님들도 시간대 별로 달랐다. 아침에는 등산을 다녀오시는 분들이나 일찍 출근하시는 분들이 즙을 마시러 들어오셨다. 낮에는 천천히 온천을 다녀오시는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이 오셨고, 저녁 5시쯤에는 나이트클럽이나 주점에 있는 분들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들렀다가 갔다. 메뉴는 간단했지만 손님들 취향에 따라 드시는 녹즙의 종류는 달랐다. 케일만 드시는 분, 케일에 사과를 넣어 달라는 분, 샐러리만 원하시는 분, 입에 쓴 것만 달라는 분, 마즙에 우유를 넣어달라는 분, 요쿠르트를 넣어달라는 분... 요구하시는 대로 녹즙을 갈아드렸다.

난 의외로 손님들 기억을 잘했다. 그래서 한 번 다녀가시면 어떤 녹즙을 원하시는지 잘 기억해서 다음에 오실 때는 원하시는 대로 잘 맞춰드렸더니 손님들은 자기를 기억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아하셨다. 한 평 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곳에 오셔서 잠시 머무는 동안에 그분들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해주고 가셨다. 아이들만 몇 년 가르치고, 아이들 이야기만 듣다가 세상의 어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내게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물론 두렵고 무서운 것도 많았다. 처음엔 오시는 손님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남자 손님들이 농담이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한 적도 많았다.

그 곳에 오시는 손님들은 쉬었다가 가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모두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길 원했다. 즙을 마시겠다고 들어 왔지만 결국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즙을 마시러 오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은퇴를 하신 어르신들도 많았는데 그분들은 갓 서른이 된 나를 딸처럼 대해주시기도 했다. 그곳은 나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각자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평도 안 되는 그 곳에 들어와서 각자의 세상 이야기들을 해주고 갔다.

나는 그곳에서 녹즙을 만들면서 여러 곳에서 일을 하시는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업하시는 회장님도 만나고, 회장님의 운전기사도 만나고, 여성CEO도 만났다. 막 사회에 나온 새내기 청년들도 보았고, 다른 곳에서 출장오신 분들도 다녀가곤 했다. 아마 학원에서 아이들만 보고 있었다면 몰랐을 세상이다.

장사를 한다는 것은 나의 무엇인가를 파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인생길에 잠시 이야기 동무가 되어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는 그저 선생님과 부모님의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잘하는 착한 아이였지만 내겐 그 타이틀을 버리고 좀 더 용감해질 필요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 한 일이었다.

[이지연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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