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라고 불리는 민법상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최초입력 2018.04.16 11:21:18
최종수정 2018.04.16 18:32:40

사진출처: 픽사베이



최근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이 개봉했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5~6년 전의 크리스마스이브 날이 떠올랐다. 한참 재밌게 크리스마스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밤 10시쯤 의뢰인의 다급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변호사님 방금 남편 불륜증거 잡았어요. 간통고소와 위자료 손해배상 진행해주세요.”

변호사로서 증거를 잡았다는 전화에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날 부부인연이 끝임을 눈으로 확인한 그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안타까웠다. 그날 난 내가 참 좋아했던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면을 알게 되었는데, 이 날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보내는 의미 있는 날로 알려진 만큼 불륜의 증거를 잡기 쉬운 날이기도 하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그 일이 있기 몇 개월 전쯤 나를 찾아왔던 두 친구. 흔히 말하는 ‘여사친’, ‘남사친’(연인관계가 아닌 그냥 이성친구)이었고 중학교 때부터 동창이라고 하였다. 보통 이혼상담은 혼자오거나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성인 동창끼리 왔다고 하여 약간은 편견의 시선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피해자였던 것. 중, 고등학교를 거쳐 20대에도 쭉 친했지만 둘 다 결혼을 하고 나니 따로 만나면 배우자한테 괜히 미안하기도 해서 부부동반으로 만났다고 했다.

매년 부부동반 여행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고 점점 여행궁합이 잘 맞아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그 두 친구의 배우자들끼리 외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 통화 후 스마트폰이 잘 꺼지지 않거나 실수로 터치가 되어 배우자의 외도증거를 잡아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경우도 그러했다.

남편이 마트에 간다고 하여 필요한 물건을 말해주려고 통화를 하고 끊으려고 했는데 전화가 끊기지 않았고 수화기 넘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자신의 ‘남사친’의 배우자인 여성의 목소리였고 배우자와 서로 애칭을 쓰는 대화내용이었다. 그리하여 동창생들끼리 크리스마스이브에 배우자들의 뒤를 밟아 숙박업소에서 증거사진을 남겼고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라 숙박업소에 직접 가서 증거를 잡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연인이나 부부에게 뜻깊은 날 울려오는 그 전화들에 마음이 아팠다. 위의 일화는 배우자가 자신의 친구의 배우자와 외도를 한 특이한 케이스였기에 소개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일주일에 최소 5건 이상 배우자의 외도문제를 상담한다. 왜 이렇게 ‘바람’을 피우는 것인지. 이것이 인간의 한계, 결혼제도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곤 한다.

‘바람’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외도행위는 2015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형사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즉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륜은 여전히 민법상 불법행위이기에 외도행위를 한 사람은 법적 혼인파탄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그 상대방도 공동불법행위자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간통죄 폐지를 외도행위의 법적허용이라고 잘못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곤 한다. 기존에 간통죄가 있었을 때에는 가해자를 형사적으로도 처벌할 수 있었기에 처벌의 균형을 위해 위자료가 크지 않은 금액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디긴 해도 위자료액수는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은 배우자와 불륜의 상대방이 연대하여 위자료 3천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간통죄 폐지 후 3년이 흘렀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하여 혼인이 파탄 난 경우 ‘징벌적’의미를 더해 위자료 액수를 좀 더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외도의 경위나 그 정도에 따라서 달라져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금액 자체가 한 사람의 정신적 손해를 보상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어디선가 그런 글귀를 본적이 있다. 누구를 평생 사랑하고 지켜내려는 그 의지가 바로 사랑이라고. 이혼전문변호사로 살아가면서 그 말이 가슴 깊게 와 닿는다. 사랑의 설렘은 실존하지만 영원한 감정은 없을 것이다. 사랑을 지켜내려는 의지로 서로 노력하고 가정을 지켜내는 것 그것자체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유나 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