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본부장의 直talk (153) 시즌 5 <본부장이 스타일을 말한다>

최초입력 2019.09.10 11:36:40
최종수정 2019.09.10 11:42:11

위풍당당함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발산되어져 나오는 것이다. 사진 출처: Britannica.com



'나는 스타가 아니라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했던가. 시작부터 그는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랐었나 보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어느 섬에서 태어난 인도계 영국인. 본명 파로크 불사라. 이름 멋있다.

영국 신사와는 거리가 먼 시원시원한 외모와 과감한 제스처. 전혀 영국스럽지도 여성스럽지도 않은, 그런 그가 지은 그룹의 이름은 '퀸'이다.
여왕.

시커먼 남자들로만 모인 그룹 '퀸'이 시대를 넘다들고 동서양을 막론하며 먹혔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보여주는 그 느낌때문이다. 바로 '위풍당당함' 영국의 국가는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이다.

우리에게 학창시절 상장수여식에서 늘 익숙한 앨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잉글랜드의 국가이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시피 영국은 'United Kingdom'이라고 해서 잉글랜드가 주도해서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3개의 왕국을 모아 만들어진 연합 국가이고

그 상징이 지금 국기로 쓰고 있는 유니언 잭이다. 영국은 잉글랜드 맞다. 대영제국도 잉글랜드다. 모두 위풍당당함에 매료되어 모인 국가 연합이 Great Britain이다.

사람이 누군가에 꽂힐 때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지금 내게 없는 것으로 인해 생긴 근원적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과 내가 차마 하지 못한 것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공식은 이성간의 매력 포인트 설정에 더욱 잘 적용된다.

음악적 완성보다는 성공의 완성을 바랬던 영국 음악가, 에드워드 엘가 사진출처: auditorium.kr



프레디 머큐리가 준 바로 그 느낌. '위풍당당함'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주는 단어가 되기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위풍당당함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내가 알기로 에드워드 엘가는 성공하고 싶어서 안달 난 작곡가이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동기 또한 순수한 창작의 기쁨이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성공하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의 꿈은 에드워드 엘가의 집이 누구도 알게 될 정도로 유명해지는 것이였다. 기가 찰 정도로 성공지향형 인간. 작가로는 서머셋 모옴같은 사람(그가 성공하게 된 거짓 신문 광고 얘기는 유명)

아무튼 그런 인간형들은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극도의 세속주의자인 그가 지은 곡'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arches)'

엘가가 위풍당당함이란 말은 얻어 쓴 원작도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텔로'다. 유색인종인 무어인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장군으로 사이프러스 총독까지 지낸 오텔로.

이전에도 말했던 것이지만 나폴레옹,히틀러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등이 당시나 지금도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젊은 시절 눈치밥을 먹어본 것이다. 어려서 느껴본 눈치밥은 어찌 보면 보약일 수도 있다. 대중들이 무엇을 갈급해 하고 또 어떤 것을 가장 한스러워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주위 동료들과 비교하면 좀 눈치 보일 수 있는 외모인 프레디 머큐리.하지만 그가 가장 유명하다. 사진 출처: bbc.co.uk



'위풍당당함'의 반대말이 바로 '눈치밥'이다.

이제 눈치가 생겼는가. 맞다.

탄자니아 출신의 콧수염 난 인도계 영국인이 웃통 벚고 뻐드렁니를 들어내며 아무런 꺼리낌 없이 당당하게 서있다. 그의 주위에는 모두 명문대를 졸업한 가방끈 긴 미끈한 영국 귀족같은 동료들이 연주를 해 준다. 앞에는 대영제국의 웸블리 스타디움을 꽉 채운 영국 청년들. 누구라도 위풍당당해질 순간이다.

인간이 자신이 한없이 멋있어 보일 수 있은 최고의 순간.

얼마 전 BTS가 웸블리에서 공연을 했다고 난리가 났었다. 한국에서 온 방탄 소년들은 정말 힘이 넘쳐 보였다. 지금껏 자기가 살오면서 한번도 발산해 본 적도 없는 초인적인 아우라를 발산하며 말이다.

오늘 누군가에게 자신을 멋진 남자로 보여주고 싶다면 자신만의 눈치밥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위풍당당함'을 보여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거만함과는 틀리다.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의 희생이 기반하면 위풍당당함이고 상대의 희생이 바탕이면 거만함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정민우 듀오 회원관리부 총괄 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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