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아 형이 주고 간 메세지`

최초입력 2020.10.05 10:05:32
최종수정 2020.10.05 14:02:22

출처: 중앙일보



가수 나훈아. 본명 최홍기. 47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74살이다. 일반적인 남성이 6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완연하게 보여지게 되는 무기력한 느낌이 그에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 경력은 공식적으로 3번으로 모두 이혼으로 끝을 맺었다. 이중 특히 관심이 가져지는 부분이 두 번째 결혼인 김지미씨와의 결혼과 세 번째 이혼인 정수경씨와의 이혼이다. 김지미씨와의 결혼은 나훈아가 최 전성기였던 76년에 이루어졌고 6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82년에 마감되었다. 가수 김지미는 당시 나혼아와 7살 연상으로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오로지 사랑만을 바라보며 나이 등 주변 문제를 과감하게 무시한 매우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녀와의 이혼 과정에서도 소위' 알몸' 이혼은 더욱 파격이었다.

나훈아와 김지미 부부, 출처: 일간 스포츠



당시 가수 나훈아는 '여자는 돈 있어야 살 수 있다'며 이혼으로 인한 재산 분할 소송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전 배우자인 김지미에게 주고 알몸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 때 김지미가 당신은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 질문에 나훈아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 버틀러의 마지막 대사(당신이 어떻게 살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오) 와는 정 반대로 '스스로 알아서 어떻게든 살 것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결혼과 이혼 모두 멋진 남자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나훈아 정수경 가족, 출처: 일요신문



세 번 째 결혼하여 30년을 함께 산 가수 정수경씨 와는 1남 1녀를 두었으며 5년간의 이혼 소송 끝에 최근 2016년에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고 한다. 아마도 매우 지독하게 다투었을 것으로 보인다. 5년 동안 말이다. 여자 측 주장과 나훈아의 주장이 매우 상반되지만 결국 여자에게 이혼 당했다고 보면 된다. 지금 나훈아는 공식적으로 혼자다.

추석 전 날 공연에서 보여진 나훈아는 사실 기대했던 것 보다는 좀 더 노화가 진행된 모습이었다. 한국 나이 74세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도 우리의 머리 속에 남겨져 있는 그의 파워풀한 남성미가 너무나 깊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노래를 예전처럼 부르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고 아직도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 의미를 두러야 할 것 같은 모습.

개인적으로 훈아 형을 참 좋아했었다. 최근 멋진 남자에 관련 된 글이나 회사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내 머리 속에 나훈아는 늘 저장되어 있는 멋진 남자의 가장 선명한 샘플 중 하나였다.

출처: 서울신문



미남이면서도 여자들에게는 그 다지 호감이 가지 않을 외모를 가졌다. 배우 최민수나 지금 코로나 확진으로 시끄러운 로날드 트럼프처럼 말이다. 나훈아와의 경쟁자로 지목되어 왔던 남진이 어린 시절 사진 기준으로 보면 훨씬 여자들이 좋아할 외모이다. 남진은 대체로 부드럽고 젠틀하고 여유러운 분위기.. 반면에 나훈아는 거칠면서 서민적이고 불확실(신비감이라고 표현할 수도)하다.

출처: 한국일보



추석 전 공연에서 나훈아가 준 느낌은 그저 '안타까움'이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를 감지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우뚝 서있기는 좀 힘들고, 살짝 걸터앉은 라이언 킹의 모습..

지금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언제나 인간은 어린 시절 꿈꾸던 희망과 사랑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이루고 다시 또 왔던 길을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 훈아 형은 자신의 쇼를 통해 모두 보여주고 말았다.

그는 자신만 느껴야 할 그 서글품을 모두와 공유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기분 좋은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안도감일 것이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라 저런 영웅도 쓸쓸하고 외롭구나'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으로 스스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 왕(Hermann Nitsch) ,출처 Pinteret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처럼,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다'처럼 비록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가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선 후 다시 가장 비극적 상황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인생 스토리. 부인의 집요한 이혼 요구에도 마지막 세 번째 결혼을 절대 깨고 싶지 않아 했다는 훈아 형.

아마 자신에게 감지되는 그 인생의 내리막길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일 둣.

영웅의 일생이 늘 그렇듯 언제나 마지막은 서글프고 안타깝다.그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난 뒤 TV를 끄고 잠시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았다. 대보름 달을 찾아서.

방금 막 박정희가 죽고 그의 영면을 기리는 사이렌과 함께 국립 교향악단이 연주했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영웅이 된 그였지만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앞으로 더욱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란 사실을 위로해주듯 말이다.

활을 굽히는 율리시스 (Jaques Bousseau) , 출저: Mayfair Gallery



하지만 섬광이 번쩍이듯 순간 훈아 형이 주는 마지막 메세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호머의 대서사시 오딧세이아의 주인공인 이타카의 왕 율리시스(로마식 발음, 그리스어로는 오디세우스)가 자신과 함께 살면 신이 되게 해주겠다던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며 했던 말. '난 천 년을 사는 신이 되는 것보다 천년 동안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인간이 되리라'

훈아 형은 그렇게 될 것이다. 꼭멋진 남자 나훈아~

[정민우 듀오 회원관리부 총괄 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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