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승리호` 주연 김태리 “한국형 SF 영화, 세계에 통했다니 뿌듯해요”

    2021년 03월 제 126호

  • “<승리호>는 모든 게, 모두에게 처음이었던 시도예요.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지만 조명, 미술, 기술도. 처음 하는 도전이지만 다들 열심히 만들어갔죠. <승리호>도 4명이 다 같이 해나가는 것처럼, 현장도 마찬가지였어요. 뿌듯함이 큰 작품이죠.”

    배우 김태리(30)가 영화 <승리호>를 통해 또 한 번 ‘믿고 보는’ 배우의 이름값을 충실히 해냈다.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쓰레기를 수거하는 승리호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극장 개봉이 두 차례나 미뤄지다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 국가에 공개됐다.

    우여곡절 끝 베일을 벗은 <승리호>는 기존 할리우드식 SF 문법을 파괴한 신선한 시도로 글로벌 시청자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영화는 공개 이틀 만에 해외 28개국에서 1위, 80개국 이상에서 TOP 10 순위에 드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리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졌는데 넷플릭스로 보여드리게 돼 기뻤어요.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관객들에게도 인사드릴 수 있어 좋았고, 반응이 실시간으로 오니 신기했고요.” <승리호>가 해외 관객들을 사로잡은 비결에 대해 김태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제가 <승리호>에 매료된 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며 ‘한국적 정서’를 꼽았다.

    “SF 영화 하면 우리는 서양 영화에 익숙하고, 직관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잖아요. 우주선 하면 하얗고, 은색에 차가운 느낌과, 진지하고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승리호>에는 우리(한국)의 정서가 많이 녹아 있다고 할까? 우주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하게 다 해지고 떨어져 나간 거지 같은 옷을 입고 지구에서 먹을 것 같은 음식에 케첩을 발라 먹고. 그런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 싶어요. SF 장르를 하면서 한국적인 감성을 이만큼 녹여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조성희 감독님이 큰 걸음을 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SF 영화가 많이 나올 텐데, 그 길의 큰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열렬하게 드러낸 김태리. 지나온 매 작품이 그러했듯, <승리호> 또한 김태리에게 설레는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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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를 한국적인 감성으로 이끈 작품

    그는 “‘최초’라는 말이 주는 설렘이 컸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승리호>는 한국 영화 최초의 SF 영화로 우주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우주 해적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 환경·계급·자본주의에 대한 메시지까지 들려준다.

    “미래의 인간들이 우주에 나가면서 우주의 쓰레기가 넘칠 테고, 이를 치우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게 돈이 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점점 더 과격해진다는 설정이 흥미로웠어요. 본 적 없는 이야기라 그런 점에서 끌렸죠. 단순하면서도 따뜻하고, 이야기 속에서 장 선장 혼자의 힘으로 모든 걸 다 하는 게 아니라는 지점도 재미있었어요.”

    김태리가 열연한 극 중 장 선장은 한때 악명 높은 우주 해적단의 선장으로, 신분을 바꾼 뒤엔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를 이끄는 인물이다. 막말은 기본, 안하무인 성격이지만 못 다루는 기계가 없고 극한 상황에서도 승리호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정의를 수호한다.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장 선장 그 자체로 변신한 김태리는 작고 여리여리한 체구가 무색할 정도로 멤버들을 휘어잡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화면을 압도했다. 김태리표 장 선장이 탄생하기까지, 그만의 캐릭터 해석은 어땠을까.

    “장 선장은 대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다른 인물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조금은 다른 신념이 있달까요? 다른 인물은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이 보인다면 장 선장은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람이라 느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캐릭터를 구축해갔죠.”

    자칫 전형적일 수 있는 캐릭터를 전혀 전형적이지 않게 완성해 낸 김태리. <승리호> 속 장 선장에 대해 그는 “선장이라 하면 흔히 과격하고 우락부락할 것 같은 인물을 떠올리지만, 감독님께선 힘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조종석에 앉아 있을 때 더 큰 효과가 날 거라고 믿으셨다며 저를 설득해주셨다”고 조성희 감독이 그린 장 선장이 왜 김태리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장 선장의 올백머리와 선글라스 등 파격적인 비주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파격적이었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웃음). 일단 감독님이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하셨어요. 감독님이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장 선장의 컬러까지 직접 완성해 보여주셨고, 거의 그대로 갔어요. 헤어는 저에게 선택권을 주셨는데, 예전에 찍었던 화보를 찾아보다가 장 선장 옷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선택했죠.”

    실제 자신과 거리가 있는 장 선장이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동경도 드러냈다. 김태리는 “장 선장의 마이웨이를 너무 배우고 싶다. 많은 분들이 나에 대해 ‘흔들림 없고 당당한 사람’이라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실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치 않은지, 대인배의 시선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메이킹 필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화면에 많이 붙어 있어요. 우주선 유리 통창을 보면서 무언가 다가오는 걸 피해야 하는 등의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들은 오로지 상상과, 감독님의 ‘3시 방향’ ‘7시 방향’ 디렉션으로 이미지를 구현해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상상이 안 가요. 어렵게 촬영했어요. 모두가 처음인 촬영이라 정신없이 했는데, 완성본을 보고 나니 ‘더 크게 반응했으면 좋았겠다’는 부분도 보이더라고요.”

    우주선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에선 전동의자의 도움을 받았다. 김태리는 “장 선장과 태호가 앉은 의자는 전동 의자였는데, 우주선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인다. ‘덜컹’ 하는 부분은 배우들이 연기하려면 뻔뻔해야 하고 어려운 부분인데 연기하는 데 (집중을) 깨지 않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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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한적인 공간에서의 촬영이라 동료 배우들과의 합이 중요

    배경은 우주라는 끝없는 공간이지만 실제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승리호라는 다소 제한된 공간이었던 만큼, 스토리상으로뿐 아니라 실제 촬영에서도 동료 배우들과의 합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김태리를 포함해 유해진 진선규 송중기는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보여주며 <승리호>를 승리로 이끌었다. <승리호>에서 열연한 각 배우들은 김태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유)해진 선배님은 영화 <1987>에 이어 두 번째로 같이 작업했어요. <1987>을 했을 때도 느꼈는데 <승리호>를 하며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극 중 유해진이 표현한) 업동이는 로봇이라는 콘셉트였는데, 사람이 아닌 이 캐릭터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는 오롯이 해진 선배님의 몫이었죠. 저는 쓰인 캐릭터대로 움직인 만면, 해진 선배님은 업동이가 어떤 캐릭터가 될지 직접 만들었어요. 선배님이 ‘장르를 벗어나자’고 하셨는데 가장 장르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셨죠. 특히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선배님의 애드리브가 업동이 대사가 된 게 많아요.”

    송중기, 진선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송)중기 오빠, (진)선규 선배와도 호흡이 좋았다. 두 사람 다 처음 만났는데. 선규 오빠는 연극을 오래해서 그런지 몸 쓰는 액션을 정말 잘 한다. 보여줄 동작은 잘 보여주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또 “중기 오빠는 저랑 나이차이가 많지 않은데 정말 어른같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게 어디서 올까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화합하고 조화롭게 어울리고, 사람들을 아우르는 그런 모습이었다”면서 “제가 장 선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중기 오빠야말로 선장에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떠올렸다. <승리호>의 진짜 선장, 조성희 감독에 대해서는 “수줍은 고집쟁이 천재”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태리는 “감독이 오케이를 너무 쉽게 하신다. 물론 감독님 머릿속에 다 있었겠지만, 저는 의심이 가는 거다. 충분해서인지, ‘이 정도면 됐어’인지 고민했다”며 말을 이었다.

    “감독님께 여쭤보면 다 좋다고 하세요. 저는 좀 더 이끌어주셨으면 했는데. 허허벌판에 놓인 느낌이 있었고, 고군분투했죠.(웃음)”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시작으로 <1987> <리틀 포레스트> <미스터 션샤인> 그리고 <승리호>까지. 김태리가 출연한 모든 작품은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작품은 김태리를 통해 빛을 봤고, 김태리는 작품과 함께 날았다. ‘흥행여신’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지만, 차기작을 선택할 때마다 부담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가씨>를 찍고 나서는 정말 부담이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제가 잘 못할 것을 알고 있고, 다음에 만날 작품도 사실 저만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부담이 별로 없었는데, <1987> <리틀 포레스트>를 하면서 내가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졌어요. 그런데 <승리호> 땐 외부적인 (흥행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더라고요. ‘아니 왜 나를 캐스팅하셨지’ 하면서, 부담이 많이 됐는데, 넷플릭스로 갔으니 관객 수는 알 수 없게 됐네요(웃음).”

    김태리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부담들보다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내적으로, 시나리오 안에서 내가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나 고민하자는 생각”이라며 “지금 다가오는 것을 열심히 해내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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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작도 공교롭게 SF 영화”

    차기작 역시 공교롭게도 SF 영화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라는 SF 장르 영화로 또 한 번 스크린 나들이를 앞둔 김태리는 “새로운 장르가 한국 영화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두 개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게 감개무량하고 행복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너무 감사한 지점이에요. 진심으로 이건 그냥,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크고, 기쁠 따름입니다. <외계인> 안에서도 내 얼굴이 스크린에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하고 기대돼요.”

    스스로는 ‘운빨’ 캐스팅이라며 겸손해했지만 많은 이들이 일찌감치 김태리의 향(香)에 매료된 상황. 다양한 장르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러브콜에, 스스로 생각하는 그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예의 수줍은 미소가 돌아온다.

    “네? 제 매력이요? 음… 편안함, 하하. 솔직함… 꾸미지 않는, 그런 마인드? 창피하니까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넷플릭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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