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실거주 요건 피하자” 조합설립 랠리 압구정 재건축, 단기 실거래 수억원 올라 ‘규제의 역설’ 현상

    2021년 04월 제 127호

  • “싸울 때 싸우더라도 배는 띄워놓고 싸우자.”

    한국 최고의 재건축 단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재건축 단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잇달아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며 재건축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17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이 2년 실거주를 해야만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바 있다. 다만 관련 법안이 국회통과하기 전까지 조합설립 신청서를 낸 단지는 2년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지 않도록 했다.

    결론만 놓고 보면 이게 서울 시내 재건축 속도를 오히려 빠르게 한 측면이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파로 나뉘어 싸우던 주민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일단 조합신청서는 내고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2년 실거주 요건을 피해갈 수 있다.

    재건축 아파트는 주차가 힘들고 집이 낡아 집주인이 사는 비율이 신축 아파트 대비 떨어진다. 투자용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사놓고 전세로 돌리면서 재건축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2년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으면 들어갈 생각이 없던 집에 실입주를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고 만다.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는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단결하기 시작했다.

    사실 압구정동 재건축은 주민 간 의견이 모이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잘사는 것으로 둘째라면 서러워하는 사람 다수가 이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고집이 강한 사람들도 많이 산다. 게다가 압구정동 재건축 아파트는 6개 정비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한 구역당 3~4개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구조다. 이해관계가 다른 단지들이 한 데 있기 때문에 의견을 조율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조합설립까지 지금껏 속도가 나지 않은 측면이 있다. 6·17대책은 가지각색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합설립 뒤에 의견이 달라 서로 싸우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조합설립 신청까지는 다투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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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 현대아파트
    ▶다툼 잠시 멈추고 조합신청에 올인

    처음 재건축조합 인가를 받은 것은 압구정4구역(현대8차, 한양 3·4·6차)이었다. 지난 2월 10일 강남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압구정4구역은 지난 2017년 11월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된 바 있다. 이후 좀처럼 조합설립까지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급물살을 타며 약 3년 3개월 만에 조합설립에 골인한 것이다. 압구정4구역은 현재 1368가구 규모다. 세부계획은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재건축 이후 2000여 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이어 압구정동 5구역(한양 1·2차)이 4구역에 이어 재건축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2월 22일 5구역 역시 강남구청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따냈다. 압구정 5구역은 총 15개 동 1232가구 규모다. 지난 2017년 8월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설립했다.

    2구역(현대9·11·12차)과 3구역(현대1~7·10·13·14차, 대림빌라트)은 2월 말 잇달아 조합설립총회를 개최했다. 1구역(미성2차)과 6구역(한양5·7·8차) 움직임도 활발하다. 조만간 압구정 6개 구역 모두 조합설립인가 단계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 된다. 압구정 한강변 일대 24개 단지 알짜 1만355가구 모두가 2년 실거주 요건을 피한 재건축 단지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기대감에 압구정동 아파트 주요 단지들은 잇달아 가격 상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압구정3구역 현대1·2차 아파트 전용면적 196㎡는 3월 15일 63억원에 계약서가 오갔다. 바로 전달인 2월 51억5000만원에 팔린 것 대비 11억5000만원이나 올라간 수치다. 계약이 체결된 후 호가는 65억원까지 점프한 상황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는 서울 재건축의 ‘끝판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며 “그 자체로 브랜드 파워가 막강하기 때문에 시간이 문제일 뿐 재건축이 완성되면 당분간 범접할 수 없는 서울의 최고 부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조합이 설립되면 아파트 품귀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호가는 더 오를 여지가 있다. 서울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 매수하면 입주권이 나오지 않는다.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집주인이 10년 보유 5년 이상 거주를 하고 1주택자인 조합원 매물에 한해서만 새 소유주에게 입주권이 승계된다.

    압구정 재건축 단지에서 이 같은 매물은 많지 않다. 10년 보유를 채운 집주인은 꽤 있지만 5년 실거주를 채운 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게다가 압구정 아파트를 가지고 있을 정도의 재력가인 경우에는 다주택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교집합은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재건축은 속도를 내고 있으니 압구정 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다른 재건축 단지라면 매물이 없으면 이와 유사한 급지의 다른 재건축 단지를 눈여겨볼 수 있지만 ‘원톱’인 압구정을 놓고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마디로 대체 가능한 아파트가 없다. 그러다보니 압구정 아파트 중 입주권이 승계되는 아파트는 ‘희귀재’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한껏 몸값을 올려놔도 살 사람은 산다는 얘기다.

    15억원 이상 아파트를 살 때는 한푼도 대출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십억원의 현금 다발을 든 극소수 계층만 압구정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전세를 낀 매물을 찾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노후도가 심한 압구정 아파트 특성상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 매물을 찾는 수요는 여전한데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라 전 계약 대비 호가를 큰 폭으로 올린 배짱 매물이 나오기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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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똘한 한 채’ 현상 심화

    희소성 주목받아 시세 오를 수 있다지만…


    다만 당장 압구정 아파트 재건축 매물을 오른 가격에 사야 하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첫 번째로 압구정 재건축이 단기간에 속도를 낼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점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2년 실거주 요건을 회피하기 위해 서둘러 조합설립신청서를 냈지만 소유주간 이해관계가 완전히 조정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본격적인 주판알 튕기기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부합한다.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신이 보유한 매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조합장이 어느 단지 출신인가를 놓고도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여러 오해들이 뒤섞이며 소유주 간 갈등이 이어지면 사업에 속도를 내기 힘들다.

    게다가 압구정 재건축은 서울시와 정부가 가장 눈여겨보는 곳이다. 압구정 재건축이 속도를 내서 관리처분인가 근처까지 나아가면 서울 부동산 판은 압구정 재건축발 이슈로 크게 한번 요동칠 것이다. ‘끝판왕’의 등판으로 서울 아파트 서열이 일제히 뒤바뀌며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결정적인 한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을 모르지 않는 정부와 서울시는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려 압구정 재건축 허가를 해줄 공산이 크다. 지금같이 ‘아파트 고점 논란’이 벌어지는 시기에는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추후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기로 빠지고 재건축 아파트 사업성이 나오지 않을 시점에 시장을 부양할 한방의 카드로 압구정을 활용할 공산이 크다. 정부의 숨은 속내까지 감안하면 압구정 재건축이 단기간 사업이 순항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파트 소유주들도 이 같은 제반 사정을 모르지 않다. 이들은 2년 실거주라는 ‘대못’을 회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뭉쳤을 뿐 최적의 재건축 시점을 조율하며 또 한 번 장고에 돌입할 것이다.

    중장기로는 정부가 해마다 올리고 있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올해 역시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9% 넘게 오르면서 서울 일부 아파트를 중심으로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었다. 게다가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의 경우 6월부터 종합부동산세가 기존 0.6∼3.2%에서 1.2∼6.0%로 상향될 예정이어서 세금 부담이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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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등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21억4000만원 선에서 거래되는 아파트는 공시가격이 지난해 12억8000만원에서 올해 15억원으로 17.2% 올랐다. 이에 따라 보유세 부담은 지난해 520만원에서 올해 745만원으로 대폭 오른다. 시세 17억1000만원 수준인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지난해 9억6000만원에서 올해 12억원으로 높아진다. 보유세 부담은 지난해 302만원에서 올해 432만원으로 43.1% 뛴다.

    특히 다주택자의 세 부담 가중은 상당한 수준이다. 강남에 아파트 2채를 가지고 있다면 1억원이 넘는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 등 분석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와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114㎡를 보유한 2주택자는 보유세가 지난해 4997만원에서 올해 1억2089만원으로 상승한다. 두 아파트의 보유세 단순 합산치는 지난해 1987만원에서 올해 3013만원 수준으로 1000만원가량 오른다. 그런데 다주택자 종부세율을 대폭 올리면서 이에 따른 세금이 지난해 5000만원에서 올해 1억2000만원으로 상승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압구정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 관건은 고가 아파트 시장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에 변화가 있겠느냐 여부다. 시장에서는 아파트 매물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진단한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3월 16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전달(2월 16일) 대비 16.8% 증가했다.

    정부가 발표한 2·4공급대책이 시장에 어느 정도 파급효과를 준 데다 설 연휴를 지나며 나온 매물이 소화되지 않은 탓에 시나브로 서울 아파트 누적 매물이 조금씩 쌓이는 구조였다. 이런 가운데 ‘폭등’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세금 인상이 현실화됐기 때문에 집주인 심리가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재산세 보유세 기산일인 6월 1일 이전에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다주택자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6월 1일이 지나면 조정대상지역에서 다주택자 양도세율이 현재보다 10%포인트 올라간다. 때문에 주택을 처분할 계획이 있는 다주택자들은 지금 팔지 않으면 세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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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시가 인상 여파 부동산 경기 주춤하면

    압구정 재건축 단지 역시 지지부진 가능성


    이런 분위기는 국토교통부가 급등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을 발표한 뒤 더 심화되고 있다. 아파트 공시가격이 체감상 30~50% 급등했기 때문에 보유세 부담이 피부로 느껴지는 탓이다. 지금까지는 ‘설마설마’ 하며 ‘버텨보자’로 마음을 굳혀가던 잠재 매도 수요가 단숨에 쏟아져 나올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주택자 지위를 유지하면 보유세를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는 공포심이 들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보유세대로 때려 맞고 6월 매도 이후 대폭 오른 양도세까지 물고 나면 막상 고가에 아파트를 팔아도 손에 쥐는 현금이 확 줄어든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강남 일대에서 전고점 대비 낮은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는 사례도 속속 나오는 중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는 3월 초 23억2000만원에 거래돼 지난달 9일(24억원) 대비 낮은 가격에 팔렸다. 강동구 천호동 래미안강동팰리스 전용 85㎡도 2월 19일 15억4500만원에서 3월 5일 14억원으로 가격이 내려간 사례가 나오고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가 속속 내려가는 분위기가 굳어지면 ‘천하의 압구정’ 시세도 동반 하락할 수 있다는 견해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인근 B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없지만) 서울 아파트 집값이 조정기로 들어서면 압구정 아파트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단기간 시세가 급등한 점도 조정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공시가가 이런 식으로 매년 급등하면 또 한 번 ‘똘똘한 한 채’ 열풍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합산 공시가가 같더라도 다주택이냐 1주택이냐에 따라서 보유세는 천차만별이다. 다주택일 경우 중과 불이익을 받아 세금을 훨씬 많이 내야 한다.

    그렇다면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사람이 이를 모두 정리하고 압구정 한 채로 몰아가는 현상이 나올 수 있다. 이건 압구정이 대체 불가능한 강남 재건축의 ‘끝판왕’이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덜 똘똘한 2채를 정리하고 가장 가치가 높은 한 채로 집중해야 한다면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가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 시세는 희소성 덕분에 더 고공행진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옥석가리기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대지지분과 사업성 등을 꼼꼼하게 살펴서 압구정 여러 단지 중에서 훗날 더 빛날 가능성이 높은 단지를 선택해야 한다”며 “어떤 단지를 고르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사업이 진행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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