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수많은 음식논쟁은 단순한 취향일까 아니면 의미가 있을까… 홍차? 우유? 아님 커피 먼저? 순서에 따라 달라지는 밀크티와 커피 맛

    2021년 04월 제 127호

  • 세상에는 별 쓸데없는(?) 논쟁도 많다. 탕수육 먹을 때 부먹과 찍먹 중 어느 쪽이 더 맛있냐를 놓고 벌이는 논쟁도 있고, 붕어빵도 머리부터 먹는 것이 좋은지 꼬리부터가 좋은지를 놓고 말싸움을 벌인다. 심지어 말다툼이 감정싸움을 넘어 전쟁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는데,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고 18세기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걸리버가 방문한 소인국에서는 달걀 깨먹는 방법을 둘러싸고 이웃 나라와 대립하고 있었다. 갈등은 달걀의 둥근 쪽 끝을 깨뜨려 먹는 게 원래 법이었지만 왕자가 달걀을 깨다 손을 벤 이후 달걀의 뾰족한 끝을 깨도록 강제하면서 비롯됐다. 반대파들이 이웃나라로 망명해 세력을 키워 반란을 일으키면서 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수많은 두 나라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달걀을 깨는 본질적 이유가 계란을 먹는 데 있음에도 형식에만 집착하면서 쓸데없이 싸운다는 인간세태에 대한 풍자다. 그런데 소인국의 달걀 전쟁,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현실 역사에서도 먹는 방법을 놓고 꽤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얼핏 달걀전쟁처럼 쓸모없는 말장난, 소모적 논쟁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곱씹어 볼 부분이 꽤 있다.

    먼저 밀크티 논쟁이다. 밀크티를 마실 때 홍차에 우유를 타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우유에 홍차를 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논쟁이다. 19세기 영국에서 벌어졌던 논쟁인데 탕수육의 부먹찍먹처럼 단순한 기호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꽤나 진지한 역사적,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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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왜 밀크티를 마실까. 홍차와 우유의 블렌딩은 얼핏 완벽한 조합이고 그래서 요즘은 밀크티의 인기가 높지만 원래 홍차와 우유는 불편한 조합이었다. 문향십리(聞香十里), 즉 좋은 향기는 십리 밖까지 퍼진다는 말처럼 좋은 차는 자체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게 다도를 즐기는 진정한 자세다. 게다가 옛날 좋은 홍차는 은화를 지불하고 구했을 만큼 값이 비쌌다. 이런 비싼 홍차에 누가 무슨 이유로 고유의 차 맛과 향을 반감시키는 값싼 우유를 섞었을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맛의 밀크티가 만들어졌지만 기대 밖의 성과였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밀크티 역사를 놓고 갑론을박 말이 많았다.

    최초의 밀크티 논쟁이다. 흔히 밀크티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첫 기록은 프랑스다. 1680년 파리 사교계에서 활동한 마담 세비네의 편지에 살롱에서 마거리트 부인이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니 특별한 맛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밀크티 관련 기록이 프랑스에서 처음 보인다고 프랑스를 종주국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1670년 영국의 차 무역상이며 커피하우스 주인이었던 토마스 가웨이가 쓴 책에 홍차에 우유를 섞으면 위장 장애를 막을 수 있다는 기록도 있다. 이미 홍차에 우유를 타 마실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기록이다. 홍차를 마시면서 왜 우유를 타야 할 정도로 위의 통증을 걱정했을까. 사실 당시 홍차는 무척 진했던 데다 유럽에서 최초의 홍차는 기호음료가 아니라 약에 가까웠다.

    홍차와 우유 관련해 가웨이보다 더 앞선 유럽의 기록도 있다. 1650년대 북경에 머물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 요한 뉴호프가 남긴 글이다. 만주 귀족은 홍차 찻잎을 물에 잔뜩 넣고 끓인 후 소금 뿌린 따뜻한 우유를 채워 뜨겁게 마신다고 적었다. 얼핏 당시 중국에 막 들어선 청나라 지배층의 다도 모습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유럽에 처음 차를 퍼트린 게 네덜란드였던 만큼 홍차에 우유 타 마시는 방법도 이때 함께 전해졌을 수 있다.

    밀크티의 원조가 어디인지는 호사가의 궁금증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왜 유럽인들이 밀크티를 마시게 됐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커피에 설탕을 타듯 예전 유럽 귀족이 홍차에 설탕을 넣은 이유는 분명하다. 커피와 홍차의 쓴맛을 줄이려는 목적과 함께 일종의 신분과시였다. 17~18세기 설탕은 값비싼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유는 다르다. 유럽에서 우유는 값비싼 기호품이 아닌데 왜 은화를 주고 동양에서 수입한 홍차에 저렴한 우유를 타서 마셨을까.

    일단 배경은 있다. 유럽에는 처음 진한 차 종류가 전해진 데다 끓일 때도 찻잎을 듬뿍 넣어 진하게 우렸다. 때문에 우유를 넣어 홍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마시기 위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누가 처음 유럽에 밀크티를 퍼트렸느냐에 따라 해석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밀크티가 퍼졌다면 1680년 마담 세비네의 편지 내용처럼 홍차의 부드러운 맛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홍차에 우유를 타기 시작했다는 설에 방점이 찍힌다. 반면 영국이 중심이라면 쓴 약에 설탕을 코팅해 당의정을 만든 것처럼 턍약 같은 홍차의 쓴 맛과 위의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밀크티가 생겼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다.

    네덜란드를 통해 밀크티가 퍼졌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당시 중국에서 차와 찻잔까지 수입한 유럽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중국의 차 마시는 모습을 흉내 내려고 애썼다. 그런 만큼 청나라 지배층이 차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것을 모방한 스노비즘(Snobbism), 속물주의가 밀크티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밀크티 논쟁, 밀크티의 원조를 놓고 한때 영국에서 벌어졌던 논쟁이다.

    이어 2차 밀크티 논쟁이 일어난다. 19세기 영국서 홍차가 대중화되고 서민도 홍차를 마시게 되면서 홍차에 우유를 탈 것인지, 우유에 홍차를 따를 것인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결론은 출신 계급에 따라 밀크티 마시는 법이 다르다는 것인데, 평민의 경우 홍차가 대중화됐지만 서민한테는 여전히 비쌌기에 먼저 찻잔에 값싼 우유를 가득 채운 후 비싼 홍차를 따르는 방법을 선호하고 반면 귀족과 부자는 찻잔에 먼저 홍차를 따른 후 부드럽게 마시기 위해 우유를 따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국에서는 홍차와 우유 타는 순서를 보고 출신 가문을 판단하기도 했다고 한다. 밀크티 논쟁이 단순히 말장난이 아닌 사회적 이슈를 담고 있는 배경이다.

    커피도 물과 우유를 섞는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다만 커피와 물, 우유 섞는 순서는 논쟁 대신 상품을 만들었다. 먼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것이 아메리카노다. 반면 물에 에스프레소를 섞은 것은 롱 블랙(Long Black)이라고 한다. 물에 술을 타나 술에 물 타나 그게 그거인 것처럼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으나 그 반대로 섞거나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우유 또한 섞는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 결과 카페라테, 카페오레, 카푸치노, 마키아토 등이 생겨났다.

    먼저 카페라테와 카페오레의 차이다. 일단 둘은 진한 커피에 우유를 섞는 것은 같다. 커피가 부드러워진다. 둘을 굳이 구분한다면 카페라테는 이탈리아, 카페오레는 프랑스식이다. 물론 스팀 우유인지 에스프레소인지의 차이도 있다. 카푸치노의 경우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는 것은 같지만 방법이 또 다르다. 스팀 우유에 또 거품 우유를 얹는다. 맛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참고로 카푸치노는 17세기 유럽 카푸친 수도원의 수도승 옷과 색깔이 비슷해 지어진 이름이다. 마키아토는 또 다르다. 에스프레소 대신 우유 베이스에 커피를 섞는다. 다시 말해 우유가 주축이고 에스프레소가 보조다. 마키아토(Macchiato)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탈리아어로 ‘얼룩이 졌다’라는 뜻으로 하얀 우유에 커피를 부어 흰색에 커피색 얼룩이 졌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캐러멜 마키아토는 여기에 캐러멜 시럽을 뿌렸을 뿐이다.

    보통의 상식과 입맛으로는 커피가 먼저인지 물이나 우유가 먼저인지의 순서 차이라는 게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깨기만큼이나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커피 거품인 크레마(Crema)의 변화 차이 때문이라는데 커피는 이렇게 제조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신기한 음료라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작은 차이를 놓고 전쟁을 벌였지만 커피의 세계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인정하니 큰 변화가 생겼다. 순서를 바꾸니 다양한 커피 종류가 만들어지면서 메뉴의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쓸데없어 보이는 논쟁에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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