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끝판왕 영화 <그녀> 같은 디지털휴먼 몰려온다… 홍보 대사, 영업 사원, 컨설턴트, 경찰 등 종횡무진 글로벌 기업 잇따라 도입… 삼성·LG·SK도 가세

    2021년 04월 제 127호

  • #1. 스위스 식품기업 네슬레는 최근 요리교실 선생님 ‘루스(Ruth)’를 채용했다. 루스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인터넷 접속 가능한 디바이스를 열기만 하면 시간·장소에 상관없이 등장하는 디지털휴먼이다. 네슬레의 대표 상품인 ‘초코칩 쿠키’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달지 않으면서 바삭바삭한 글루텐 프리(Gluten-free) 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루스가 “좋은 선택”이라고 맞장구친다. 진짜 사람처럼 쿠키 관련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하면서 맞춤형 레시피를 설명해준다.

    #2. SK텔레콤은 지난달 e스포츠 1위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대표하는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디지털휴먼을 공개했다. SK텔레콤의 혼합현실(MR) 스튜디오에서 이 선수를 촬영했다.

    진짜 이상혁 선수는 본업인 e스포츠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고, 디지털 이상혁 선수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광고 촬영 등 대외활동을 소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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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주인공이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 <그녀(HER)>에서 AI 운영체제(OS)인 사만다는 컴퓨터 모니터에 무한대 심벌 표기로 등장한다. 사만다는 사람의 형체가 없다. 남자 주인공은 이런 사만다와 음성에만 의존해 소통한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기분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만다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지난 2014년 개봉한 이 영화가 올해 다시 만들어진다면 사만다는 루스와 같은 디지털휴먼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AI와 클라우드 컴퓨팅, 5G(세대) 통신, 컴퓨터 그래픽 등 첨단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융합하면서 진짜 사람 같은 외모를 갖추고 양방향 대화가 가능한 디지털휴먼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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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봇·보이스봇보다 더 똑똑한 디지털휴먼

    디지털휴먼은 AI 챗봇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 등을 합쳐 만든 가상 인간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만 존재한다. 1990년대 후반 나타난 사이버 가수 ‘아담’은 반짝 관심을 받고 사라졌다. 기술의 한계 때문에 외모, 표정, 말투, 대화 수준 등이 어설펐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등장하는 디지털휴먼은 다르다. 딥러닝 등 ‘사람의 뇌’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된 AI가 시각·청각·촉각 등의 빅데이터를 처리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공감 능력과 감수성까지 탑재하기 시작했다.

    외모도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힘입어 사람을 똑 닮았다. IT(정보기술)업계 관계자는 “AI 기반의 디지털휴먼은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사람과 대화할수록 데이터가 쌓여 똑똑해진다”며 “인간처럼 진화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디지털휴먼은 장점이 명확하다. 24시간·365일 쉼 없이 일하지만 절대 지치지 않으며, 늙거나 죽지 않는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무한대로 배치할 수 있다. AI기술이 적용된 만큼 스스로 학습할 뿐 아니라 데이터를 입력하면 새로운 기능을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성 있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런 디지털휴먼은 문자 위주의 챗봇이나 음성 기능을 갖춘 보이스봇보다 사람과의 대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챗봇과 보이스봇이 언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면 디지털휴먼은 언어뿐만 아니라 표정, 몸짓, 자세 등 비언어 정보를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휴먼은 대화 내용이나 맥락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고, 미소를 짓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뉴질랜드 디지털휴먼 개발업체인 소울머신(Soul Machines) 측은 “사람과 디지털휴먼 간 대화에서 발생하는 정보량이 챗봇·보이스봇보다 훨씬 많다”며 “디지털휴먼에 친밀감을 느끼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T업계에선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편지→전화→이메일→채팅→디지털휴먼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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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은행이 도입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 인공인간 네온. 사진 네온 홈페이지
    ▶사람 같은 디지털휴먼 산업계 종횡무진

    디지털휴먼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BMW, 보다폰, UBS, P&G, ANZ, 싱텔 등 글로벌 기업들이 디지털휴먼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기업홍보대사·인플루언서부터 영업사원, 이코노미스트, 상담사, 교사, 어린이·노인 돌보미 등에 이르기까지 역할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싱가포르 최대 통신사 싱텔은 작년 10월 5G(세대) 이동통신 무인매장에 ‘스텔라(Stella)’라는 이름을 가진 디지털 영업직원을 채용했다. 아시아인 외모에 단발머리를 한 스텔라는 싱텔 유니폼을 입고 키오스크에 등장한다. 스텔라는 싱텔의 핸드폰 요금제와 가입자 정보, 스마트폰 종류와 사양, 프로모션 등을 꿰뚫고 있어 고객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또 고객의 휴대폰 이용 패턴을 분석해 요금제를 추천해준다.

    미국 P&G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인 SKⅡ웹사이트를 열면 디지털 뷰티 컨설턴트 유미(Yumi)가 나타난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이름을 묻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참 예쁘다” “요즘 온라인 쇼핑이 대세 아니냐” 등 칭찬과 질문을 던진다. 이어 건조, 모공, 주름 등 피부 트러블 종류에 따라 상담을 하면서 “속상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피부 문제를 겪고 있다” 등 공감을 나타낸다. 유미는 피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써볼 만한 SKⅡ 상품을 화면에 띄워준다. 유미와 대화해보면 백화점에서 컨설턴트와 상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미국에 본사를 둔 디지털휴먼 개발업체 UNEEQ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소비자가 디지털휴먼과 소통하며 구매활동을 하게 될 것”라며 “디지털휴먼은 새로운 고객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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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보건기구 디지털 휴먼 직원 Florence. 소울머신


    디지털휴먼은 공공분야에도 진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건 분야 상담사로 디지털휴먼 직원 ‘플로렌스(Florence)’를 투입했다. 플로렌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최신 정보를 계속 학습하며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구글 클라우드 대화형 AI 플랫폼 ‘다이얼로그플로(Dialogflow)’ 등 자연언어처리(NLP)모델 덕분에 총 12개 외국어를 구사한다.

    뉴질랜드 경찰청은 신고센터에 디지털 경찰 ‘벨라(Bella)’를 시범 도입했다. 사적인 주제나 주변 눈치 때문에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실제 경찰과 마주하는 것보다 벨라와 대화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제보자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디지털휴먼에 주목하고 있다. LG전자의 디지털휴먼 ‘김래아’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 등장해 유창한 영어로 콘퍼런스 도입부를 장식했다. 자신을 23세 음악가로 소개한 김래아는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LG전자는 김래아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마케팅의 중심축으로 키울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디지털휴먼인 인공인간(Ariti ficial Human) ‘네온(NEON)’을 ‘CES 2020’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후 고도화를 거친 네온이 올해부터 산업계 곳곳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CJ그룹 IT 계열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와 함께 인공인간 분야 사업에서 협력을 진행 중이다. CJ 콘텐츠를 활용한 디지털 인플루언서, 디지털 쇼호스트 등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도 네온을 도입해 금융상담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SM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디지털 걸그룹 에스파(aespa)를 비롯해 여러 명의 디지털 아이돌과 연습생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 한 IT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2년 차인 올해 디지털휴먼 개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분야가 엔터테인먼트와 커머스, 교육”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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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슬레가 채용한 디지털 요리교실 선생님 루스. 사진 웹사이트 캡처
    ▶디지털휴먼, 컴퓨터그래픽과 AI 엔진 등 첨단 기술 집합체

    디지털휴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우선 사람 같은 외모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동원된다. 최신 카메라와 광학장치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실제 사람의 얼굴을 360도 각도에서 스캔한다. 머신러닝 등 AI 기반의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스캔한 이미지 데이터를 활용해 3D(차원)의 디지털휴먼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과 피부와 입술의 질감, 웃거나 찡그릴 때 생기는 미세한 주름, 눈동자 속 홍채 돌기까지 ‘극강의 디테일’을 구현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디지털휴먼 기술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이 원조”라며 “영화계에서 20년 이상 활용되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촬영 당시 40대인 브래드 피트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얼굴로 변신한 비결도 디지털휴먼 기술이다. 캐릭터 창조에 일가견이 있는 게임업계도 디지털휴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구글, 아마존, IBM, 삼성전자 등 빅테크 기업들이 개발한 AI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등이 접목돼 사람처럼 이성·감성적 소통이 가능해진다. 5G로 초고속·초저지연 기술까지 더해지면 홀로그램 등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형태로도 구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람과 일상에서 완벽하게 교감하는 디지털휴먼이 나오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IT업계 관계자는 “AI 대화엔진 등 다양한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서로 융합될지가 관건”이라며 “가까운 미래에 영화 <그녀>에 등장한 AI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디지털휴먼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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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진행된 ‘CES 2021’에서 LG전자의 가상인간 ‘래아’가 연사로 등장해 직접 LG전자의 혁신 기술을 소개했다.
    ▶카메라·마이크로 개인정보 수집… AI 윤리 중요성 커진다

    디지털휴먼도 AI 윤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지털휴먼은 차별·혐오 발언과 개인정보 유출 등의 논란을 일으켜 서비스가 중단된 챗봇 ‘이루다’에 비해 더 복잡하다. 채팅창에서 문자로 감성 대화를 나누는 이루다와 달리 디지털휴먼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음성과 표정과 같은 ‘살아 있는’ 개인정보뿐 아니라 위치와 특정 공간의 인테리어 등도 포함된다. 게다가 디지털휴먼은 사용자의 경제활동 등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AI 윤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울머신은 세계최대 기술전문가 모임인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AI 윤리 정책을 마련해 공개하고 있다. 디지털휴먼이 인간의 복지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특정 집단에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며 인권도 강조한다. 디지털 영업사원의 경우 ‘이용자가 특정 주제에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 해당 주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진짜 사람인 척 속이지 않는다’ 등이다.

    또 AI의 모든 결정은 설명이 가능해야 하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이유와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적어 놨다. AI 윤리를 임직원이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모든 직원이 AI 윤리토론회에 참여하고, 매 분기 이사회 멤버가 참여하는 AI윤리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식이다. 소울머신처럼 미국·유럽·일본 등에선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까지도 AI 윤리지침을 홈페이지에 게시해 놓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에선 AI 윤리지침을 만들어 공개한 기업은 삼성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이에 정부도 올해 AI 윤리정책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윤리기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체별 윤리 체크리스트를 마련할 계획이다. AI데이터의 편향성을 줄일 수 있도록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도 투자한다. 아울러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도록 자율규제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하기로 했다.

    디지털휴먼 시장은 빠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기업의 50%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보다 디지털휴먼과 같은 가상비서(Virtual agents)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켓앤마켓은 전 세계 대화형 AI 시장이 매년 평균 21.9%씩 성장해 2025년 139억달러(약 15조53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했다.

    [임영신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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