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권의 뒤땅 담화] “깃대 빼느냐, 마느냐” 헷갈리네

    년 월 제 0호

  • 남양주 비전힐스CC 마지막 홀은 나에게 골프 흑역사를 안겨준 공간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있었던 일이다. 1인당 5만원씩 내고 승자가 독식하는 일명 조폭 스킨스 게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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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반자들이 모두 퍼팅을 끝내고 1.2m 마지막 버디 퍼팅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 호주머니엔 2만원, 다른 동반자 두 명이 각각 7만원과 5만원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 홀 버디를 잡으면 동반자 돈을 모두 뺏고 남은 상금 6만원도 내 차지가 돼 상금 전체를 독식한다. 퍼트에 실패해 파를 잡아도 상금 6만원을 쥐면 총상금 8만원으로 상금 순위 1위 자격으로 동반자의 돈을 모두 쓸어온다.

    결국 마지막 내 퍼팅이 오늘 골프의 관전 포인트가 돼버렸다. 강한 압박감이 밀려오며 퍼팅 순간 ‘깃대를 뺄까 말까’ 찰나의 고민이 스쳐갔다.

    빨리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약간 세게 스트로크 했지만 공은 똑바로 홀을 향해 굴러갔다. 공은 핀 옆 부분을 맞고 툭 튕겨 나와 홀에서 30㎝ 거리에 멈췄다.

    순간 허탈감과 함께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래도 파를 해서 마지막 상금을 거머쥐면 총 상금 1위로 동반자들의 돈을 모두 가져와 상금 종합우승을 차지한다.

    빨라진 맥박을 가다듬기 쉽지 않았지만 짧은 거리였다. 지체 없이 퍼팅을 했는데 그마저 오른쪽으로 새고 말았다. 옆 경사를 의식해서인지 헤드가 약간 열려 3퍼트를 범한 것.

    동반자들끼리 근래 목격한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면서 위로를 건네면서도 얼굴엔 웃음기가 피었다. 핀이 약간 옆으로 기울어진 것을 감안해 뽑았어야 했다는 후회로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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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을 뽑느냐, 마느냐’는 프로선수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난제다. 당장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프로선수의 경험과 각종 실험결과를 찾아봤다.

    비거리를 내기 위해 몸무게를 20㎏이나 늘려 400야드를 날리는 등 골프실험으로 유명한 디섐보의 예가 있었다. 2019년 그는 ‘퍼팅을 위해 핀을 뽑아도 된다’는 골프 룰 변경에 맞춰 혼자 숱하게 실험했다. 그에 따르면 먼 거리에선 핀을 꽂고 퍼팅하는 쪽이 유리하다. 홀에 공을 집어넣기보단 방향과 힘을 잘 조절해 핀에 붙이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시선 측면에서 핀이 있는 게 유리한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선 그는 그때그때 핀을 뽑거나 그냥 두고 퍼팅하기도 한다. 퍼팅 그린에 경사가 있을 땐 다르다.

    핀까지 가깝더라도 오르막이면 핀을 뽑고 내리막이면 두는 쪽을 택한다. 오르막의 경우 약간 세게 홀 뒷벽을 맞히는 작전이고 내리막에선 혹시 공이 핀에 걸려 홀 안으로 들어가거나 튕기더라도 홀 바로 근처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디섐보는 전반적으로 ‘깃대 퍼팅’으로 약간 기운 분위기다. “두바이 대회(2019년)에서 1.2m 퍼팅을 성공했는데 깃대를 그대로 뒀으면 장담하기 어려웠다. 거기엔 기하학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디오픈 우승자인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의 친형인 에도아르도 몰리나리는 강한 퍼팅에선 무조건 깃대를 꽂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약한 퍼팅에선 핀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가 운영하는 골프아카데미에서 선수 3명을 동원해 홀 가운데, 홀 중앙 약간 옆, 가장자리 세 방향으로 강·중·약의 힘으로 실험했다. 공이 핀에 맞아 공중으로 튈 정도의 세기에선 핀을 꽂고, 홀 뒷벽을 때리는 정도의 중간 힘에선 빼는 게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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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골프잡지인 골프다이제스트는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주립대 골프팀의 실험결과 깃대퍼팅이 유리하지 않다고 소개한 바 있다.

    퍼펙트라는 연습도구로 각각 0.8m와 1.4m 거리에서 핀 중앙과 홀 가장자리를 겨냥해서 각각 30회씩 실험했다. 0.8m에선 핀을 빼거나 그대로 두거나 모두 성공했다.

    1.4m에선 달랐다. 핀 중앙이 아니라 가장자리를 겨냥했을 때 핀을 뽑으면 성공률이 90%인 반면 그대로 두면 절반인 45%에 불과했다. 핀 중앙을 맞히면 성공률은 높지만 아무리 퍼팅 고수라도 이 확률은 28% 정도에 그치기에 깃대를 꽂고 퍼팅하면 오히려 불리하다는 의미다.

    프로골프 중계를 보면 선수 스타일에 따라, 그리고 같은 선수라도 퍼팅과 관련해 일관된 핀 전략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때그때 그린 상태와 심리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다.

    굴리는 퍼팅을 구사하는 필자는 먼 거리와 가까운 내리막 퍼팅을 제외하곤 핀을 뽑는 편이다. 언젠가 핀을 맞고 홀 밖으로 공이 튕겨나간 경험을 접한 뒤 트라우마가 생긴 듯하다. ▶골프공에 선 긋는 게 유리한가

    골프공에 선을 그어 퍼팅하는 게 과연 유리한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많은 주말골퍼가 퍼팅을 위해 공에 선을 긋는다.

    하나에서 세 개까지 다양하고 십자 선을 긋는 사람도 있다. 골프공 자체에 라인에 맞추기 위해 화살표가 인쇄돼 있기도 하다.

    공에서 홀까지 가상의 라인에 맞춰 굴리려면 공에 선이 있어야 효과를 본다는 믿음 때문이다. 퍼터의 스윗 스폿으로 공을 맞추도록 에이밍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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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믿음에 토대를 두고 캘러웨이는 필 미컬슨과 공동으로 세 개의 선을 넣은 골프공도 개발했다. 퍼팅 후 공 위의 선이 똑바로 롤링하면서 굴러가면 퍼터로 공을 제대로 가격했다는 뜻이다.

    반론도 있다. 골프닷컴에 소개된 세계 100대 교습가인 케빈 위크스에 따르면 20년간 연구결과 선으로 효과를 본 사람은 15%에 미달했다.

    눈의 시차와 입체감 때문에 공에 선을 그어도 똑바로 일직선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볼 뒤에 앉아 라인을 맞출 때와 퍼팅을 위해 공 옆에 서서 시선을 아래로 고정해 라인을 확인할 때 오차가 발생한다.

    이정은6가 공 옆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돌려 핀을 바라보며 라인을 확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0명의 골퍼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실험결과에서 선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결과도 나왔다. 마이골프스파이라는 골프사이트에 따르면 1.5m, 3m, 6m 거리에서 선을 그은 공을 퍼팅한 결과 300개 홀에 기준 퍼팅 수는 473개였다.

    반면 선이 없는 공의 퍼팅 수는 463개로 적은 차이지만 오히려 나은 결과를 얻었다.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공에 선을 그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직접 반복해서 테스트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정답은 없다.

    필자는 가까운 거리에선 라인을 골프공의 선에 맞추고 먼 거리 퍼팅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힘의 강약에 더 주목한다. 가까운 거리에선 퍼팅 백 스윙과 팔로 스윙 궤적, 골프공 선, 핀까지 라인을 의식적으로 일치시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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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이 홀에 들어갔을까

    홀 컵 지름은 108㎜(4.25인치)로 골프공의 2.5배 정도다. 공이 기울어진 핀과 홀 가장자리에 걸쳐져 있을 때는 어떻게 될까. 골프규칙에 따르면 공의 아래쪽 일부라도 그린 수평면 연장의 홀 안에 들어가 있으면 홀인으로 인정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핀을 빼면 공이 설령 홀에 들어가더라도 홀 가장자리에서 벌타 없이 리플레이스해야 한다. 즉 한 타를 치게 된다.

    또 홀 가장자리에 멈췄다가 플레이어가 가까이 갔을 때 10초 안에 홀 속으로 공이 떨어지면 홀인으로 인정한다. 10초 이후에 떨어지면 1타가 추가된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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