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퀴 달린 ‘럭셔리’ 스마트폰 모빌리티 플랫폼 세계대전 “테슬라 독주 막아라”

    2021년 05월 제 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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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에서 폴리토피아(Polytopia) 게임을 즐겨보세요!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온라인 버전도 곧 출시됩니다.(Try playing in your Tesla! Great game. Multiplayer online version coming soon.)”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12월 29일 트위터를 통해 뜬금없이 하나의 게임을 소개했다. ‘폴리토피아’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오직 테슬라 안에서만 즐길 수 있고 앞쪽의 대형 터치스크린을 통해 조작한다. 테슬라 전용게임을 출시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 뒤 머스크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트위터 답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할 때 엔터테인먼트는 상당히 중요해질 것입니다.(Entertainment will be critical when cars drive themselves.)”

    폴리토피아는 머스크 스스로도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라고 알려져 게임 유저로서 등장하는 장면이 온라인상 화제가 되기도 한다. 설치부터 업데이트는 모두 와이파이로 진행되고 다른 테슬라 운전자와 대결까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마트폰 게임과 유사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구글 안드로이드나 아이폰 운영 체제가 아니라 ‘테슬라 소프트웨어’라는 자체 통합 운영체제(OS)에서 구동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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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주행 중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게임, 영화감상 등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테슬라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중심에 서다

    “네 차는 몇 마력이야?” “제로백은 몇 초야?”

    과거 자동차의 차별화 포인트는 디자인이나 마력, 토크 등 기계적 성능이었다(현재 많은 자동차 광고나 홍보기사들의 방식도 그렇긴 하다). 차세대 자동차의 개발과 차별화 포인트는 자율주행을 비롯해 다양한 운전자 지원, 인포테인먼트 및 지능형 연결 등 소프트웨어와 고급 전자 장치로 구현되는 각종 기능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의 경우 자율주행 중에 영화와 방송(Tesla Theater)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동시에 다른 차량의 유저와 게임도 즐길 수 있다. BMW는 CES 2021에서 차세대 전기차 ‘iX’에 탑재되는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iDrive’를 공개한 바 있다. 이 시스템은 드라이브 시스템과 변속기 등 주행 관련 모든 기능을 음성 명령과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대화는 물론 운전자의 운전 습관까지 학습해 그에 맞는 차량 기능을 활성화시켜 준다.

    차세대 자동차를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고가라인이 100만원대인 스마트폰에 비해 최소 1000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차세대 자동차는 가히 럭셔리 스마트폰에 비견될 만하다.

    자동차 업계가 OS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소프트웨어 혁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과거 노키아의 사례처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키아는 휴대폰이 컴퓨터로 변화하는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5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노키아가 피처폰이라는 과거에 머무는 사이, 독자 OS(운영체제) ‘iOS’를 개발한 애플은 미래를 선점했다. 자동차 시장 역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급속도로 변해가는 흐름 속에 완성차 업체들은 노키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유진 하나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커넥티드·자율주행 기술 발달에 따른 데이터의 급속한 확대 및 활용은 미래 모빌리티산업을 변화시키는 중요 드라이버가 될 것”이라며 “자동차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플랫폼 디바이스로 부상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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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독존’ 테슬라에 글로벌 빅테크 맹추격

    사실 과거에도 자동차 전용 앱스토어와 같은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는 플랫폼은 존재했다. 현대차(블루링크), GM(온스타), 토요타(엔튠) 등이 차량정보, 내비게이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프트웨어를 가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만 이러한 플랫폼은 차량의 부가기능이나 차량용 엔터테인먼트에 머물고 차량을 직접 제어하는 등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자동차의 성능과 기능을 직접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소프트웨어가 복잡하고 개별 기능들도 분산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약 60여 개의 각기 동작하는 전자제어장치(ECU)로 이뤄져 제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각각의 전자제어장치를 공급하는 업체도 달라서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기 위해 이를 수정·보완하고 조정하느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구글, 아마존, 바이두 등과 같은 빅테크 업체들이 자동차 1차 협력업체 영역을 점차 침투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기업과 SW 기업 간 경쟁 및 협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으로의 진화는 스마트폰의 변화 과정과 유사하다. 스마트폰이 하드웨어인 기기와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각각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처럼 완성차 업체와 이에 OS 등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업체가 분리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스타트업 피스커가 전기차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전자제품 OEM인 폭스콘을 통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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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이 인수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ZOOX가 선보인 로보택시


    테슬라는 수십 개에 달하는 이러한 자동차 전자장치를 중앙집중 방식으로 통합했다. 차량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차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제어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전자제어장치(ECU)를 3개로 줄여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 제어하는 자사의 독자적인 OS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부터는 자체 개발한 칩(Chip)을 적용한 테슬라 플랫폼 3.0을 시장에 출시했다. FSD(Full Self Driving)를 통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서비스 업데이트 형태로 제공하며, 프리미엄 커넥티비티(Connectivity) 등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등 소프트웨어를 통한 수익모델을 창출했다. 테슬라는 주행거리, 제동 성능, 유저 인터페이스 및 인포테인먼트 등 주요 기능들의 정기적 업데이트 및 업그레이드를 통해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차량의 개념을 주류화시킨 것이다. 실제로 테슬라는 와이파이에 연결되는 순간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가 자동 업그레이드된다. 배터리 결함으로 화재 등 사고가 나면 충전 한도를 제한하는 업데이트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테슬라의 질주로 미래차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그간 자율주행 등과 관련하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빅테크와 자동차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009년 구글이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여러 빅테크들이 미래차 관련 기술개발을 진행해왔으나, 규제 장벽, 예상보다 더딘 발전 속도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웨이모 대표인 존 크래프칙은 자율주행 기술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안전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도전적이고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우버는 자사 자율주행 부문(ATG) 스타트업을 지난해 말에 매각하기도 했다. 자율주행에 나선 기업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며 철수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테슬라는 자체 전기차 생산 및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해 글로벌 미래차 시장에서 급속하게 점유율을 늘려나가고 있다. 자율주행의 발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수많은 실제주행 학습이 필요한데, 내부 테스트 차량이나 시뮬레이션에 의존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테슬라는 자사 고객들의 대규모 운행 데이터를 통해 솔루션을 검증 및 개선하며 개발 우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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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명령은 물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BMW 인포테인먼트시스템 idrive


    빅테크 및 완성차 업체들은 테슬라의 독주 속에 미래 모빌리티 산업 내 영향력 확보 및 사업 가속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애플이 자동차 OEM들과 자율주행차 관련 협력의사를 타진하며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웨이모는 스텔란티스, 볼보, 다임러 트럭 등 자동차 OEM과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아마존의 경우 지난해 6월 인수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ZOOX를 통해 자사의 첫 자율주행 택시를 지난해 말에 공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GM의 자율주행 계열사인 크루즈에 투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빅테크 3사(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자동차 OEM과 전기차·자율주행차 관련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화웨이, 폭스콘 등도 관련 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해 나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자동차 운영체제 시장은 2019년 45억달러(약 4조9000억원)에서 2026년 120억달러(약 13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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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가 카페·호텔·영화관

    서비스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진화


    최근 테슬라는 전기자동차 플랫폼에 머물지 않고 태양광 발전(솔라시티)→배터리 생산(기가팩토리)→배터리 저장(ESS9, 파워월, 파워팩) 등 대체에너지의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며 자동차 영역을 넘어 에너지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기를 생산 및 대여하는 솔라시티를 2016년 인수하고 사명을 테슬라 모터스에서 테슬라로 변경, 자동차를 넘어 에너지 플랫폼으로 산업의 경계를 넘는 융합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MaaS(Mobility as a Service)라 불리는 서비스형 모빌리티의 발전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 승차공유나 차량호출에 한정된 영역을 넘어 여러 이동 수단의 제공과 연결 외에도 이동하는 동안 다양한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모빌리티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어 생필품 등의 배달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의 확장성을 유도해낸 것이다.

    우버는 대표적으로 생필품 구매를 대행해주는 ‘우버코너스토어’, 음식을 배달해 주는 ‘우버이츠’, 택배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러시’ 등 모빌리티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놨다. 코로나19로 인해 차량호출 사업분야의 매출이 줄어들었지만 우버이츠 등 배달사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2분기에는 우버의 배달사업 분야가 차량호출 사업의 매출을 뛰어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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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차공유를 넘어선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에 대한 기대는 벤처캐피털(VC)의 투자에서도 나타난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상반기 3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이끌어낸 모빌리티 기업들을 살펴보면 모두 승차공유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폭넓게 제공하는 기업들이다. 고젝(Gojek), 디디추싱(Didi Chuxing), 그랩(Grab)은 모빌리티를 넘어서 생활전반의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앱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들은 결제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음식배달, 물류배달, 공과급 납부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들을 끊임없이 창출해내고 있다.

    위승훈 삼정KPMG 자동차 산업 리더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자동차 기업을 넘어서 종합 모빌리티 기업을 표방하는 이유는 자동차의 생산과 판매에서 모빌리티 서비스로 비즈니스 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모빌리티 서비스가 자율주행과 연결되는 순간, 창의적인 거래구조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것”이라 내다봤다. 단순히 사람과 사물의 이동을 넘어, 차량공간을 카페, 음식점, 영화관, 사무실 등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기반 모빌리티) 시대가 열릴 것이란 설명이다.

    위 리더는 또한 “친환경,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로 대변되는 미래 자동차 3대 혁명으로 자동차 산업이 종합 모빌리티 산업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핵심 기술에 맞춰 발 빠르게 밸류체인을 리디자인하고 제품, 인프라, 고객경험, 가격체계,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공급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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