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빅테크 기업 텐센트 제국의 명암… 공격적 투자로 온라인 게임 플랫폼 장악, 자국 내 빅테크 규제와 미국 견제 이중고

    2021년 05월 제 128호

  • 중국 빅테크 기업인 텐센트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중국 대륙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게임 시장의 큰손 역할을 하며 ‘텐센트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SNS 플랫폼 ‘위챗’은 중국 이용자만 10억 명이 넘지만 당초 기대했던 것처럼 해외 시장에 뻗어나가지 못했다. 글로벌 진출의 선봉대에 선 것은 온라인 게임이다. 2016년 게임 사업 매출로 세계 1위에 등극하며 ‘세계 최대 게임업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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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센트
    ▶전 세계 게임사에 전방위 투자… ‘텐센트 경제권’ 구축

    텐센트는 글로벌 게임산업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31개의 게임사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300% 급증한 수치라고 게임업계는 보고 있다. 플래티넘 게임즈·마벨러스(일본), 펀컴(노르웨이), 로블록스(미국), 부두(프랑스), 10챔버스 콜렉티브(스웨덴), 록우드 퍼블리싱(영국) 등 그야말로 전 세계 게임사에 두루 투자했다. 올해에도 지난 3월 기준 20여 개의 게임사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중소 게임사 위주로 투자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대형 게임사를 인수하는 등 통 큰 투자가 잇따랐다.

    텐센트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 유명한 미국의 게임개발사 ‘라이엇게임즈’를 완전 인수했고, 핀란드의 모바일 게임 개발사 ‘슈퍼셀’도 손에 넣었다. 미국 게임 개발사 ‘에픽게임즈’에도 투자했고, 일본 닌텐도와는 제휴를 맺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텐센트가 해외 게임사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제휴를 맺는 방식으로 게임 콘텐츠를 쓸어 담고 있다”며 “막강한 자금력까지 갖추면서 게임업계의 넷플릭스를 방불케 한다”고 분석했다.

    텐센트는 한국 게임 시장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텐센트는 국내 대형 게임사 ‘3N’ 중 넷마블의 3대 주주다. 텐센트의 자회사인 한리버 인베스트먼트가 17.52%의 지분을 갖고 있다. 글로벌 인기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의 2대 주주에 올라있다. 텐센트는 배틀그라운드로 바뀌기 전 회사인 블루홀에 투자했다. 카카오게임즈에도 투자했다. 올 들어선 액트파이브, 로얄크로우, 라인게임즈, 앤유 등 국내 중소·인디 게임사에 지분 투자하며 주주로 등극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텐센트가 신작 출시를 준비 중인 신생 게임사까지 손을 뻗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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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센트 해외 진출 ‘매직’… 온라인 게임 사업 급성장

    공격적인 투자를 무기로 한 텐센트의 해외 진출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이 이를 말해준다. 작년 4분기 텐센트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71% 늘어난 1598억위안(약 27조3500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순이익이 1000억위안(약 17조1000억원)을 넘어서는 것은 1998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이다. 작년 4분기 온라인 게임 매출은 391억위안(약 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다. 이 가운데 온라인 게임 해외 매출이 98억위안(약 1조670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43%나 늘었다. 작년 한 해 매출은 4820억위안(약 82조5000억원)으로 2016년(1519억위안)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텐센트의 모바일 게임 ‘왕자영요’와 ‘화평정영’이 호실적의 일등공신이란 평가가 많다.

    왕자영요는 서비스 시작 이후 5년 정도 지났는데도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1억 명에 달한다. 왕자영요에는 텐센트가 2015년 인수한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노하우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평정영은 텐센트가 2018년 투자한 옛 블루홀의 자회사 펍지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를 토대로 개발됐다는 게 중론이다. 텐센트가 게임 개발사에 대한 투자를 통해 히트 게임 개발 시스템을 학습해 ‘청출어람’의 경지에 올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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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센트가 그동안 투자해온 기업들의 지분가치를 합산하면 2500억달러(약 260조원)에 달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텐센트가 스타트업 등에 투입한 투자액은 작년 120억달러를 넘어섰다. 투자 규모로 수년간 1위를 지켜온 알리바바도 제쳤다. 텐센트가 2000년대부터 작년까지 투자한 기업은 880개사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미국의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 모바일 AR(증강현실) 플랫폼 ‘스냅챗’, 인도네시아 차량공유 스타트업 ‘고젝’ 등 비(非)게임사도 많다. 하지만 이 중 게임사는 142개사(16%)로 비중이 높다.

    텐센트에 온라인 게임은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텐센트의 사업 구성을 보면 온라인 게임 비중이 33%로 압도적이다. 핀테크·기업서비스가 26%, 위챗 등 SNS가 23%, 인터넷 광고 17% 등 순이다.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게임 비중이 전체 사업의 40%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며 “텐센트에 게임사업은 캐시카우(현금창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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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대 모바일·게임 기업 텐센트가 핀란드의 게임사 슈퍼셀을 86억달러(약 9조9300억원)에 인수했다. 사진은 마틴 라우 텐센트 회장(왼쪽)과 일카 파나넨 슈퍼셀 대표.


    ▶텐센트에 올라탈까 말까… 한국 게임사의 고민

    ‘텐센트 제국’에 대한 국내 게임사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14억 명의 인구를 거느린 세계 최대 온라인 게임 시장인 중국 진출이 사실상 막혔기 때문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로 불거진 이른바 한한령(한류 금지령) 여파로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한국 게임에 대해 판호 발급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작년 말 거의 4년 만에 국내 중견 게임사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가 판호를 받았지만 중국 시장의 빗장이 풀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과 함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게임업계에선 중국 내 최대 게임 유통망을 가진 텐센트와 판매계약을 맺거나 지분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국 진출을 위한 최선책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중소 게임업체의 경우 텐센트 투자가 게임 개발 자금 확보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텐센트가 투자 기업에 대해 대체로 경영 개입을 하지 않아서 기업들 간 관계가 ‘연방제’와 비슷하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텐센트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판호를 미리 받아둔 넥슨의 대표작 ‘던전앤파이터(던파)’ 모바일 게임도 작년 8월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출시가 미뤄진 상태다. 중국에서 던파는 텐센트가 유통을 맡고 있다.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펄어비스의 ‘검은사막’도 텐센트가 판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한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텐센트와 손잡는 것은 중국 진출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차이나 리스크’에 노출되는 등 텐센트에 휘둘릴 가능성도 있다”며 “한국 게임사들의 풀지 못한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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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센트가 내민 ‘청구서’… 텐센트 클라우드 사업 ‘잰걸음’

    텐센트가 최근 공을 들이는 사업이 클라우드다. 텐센트는 지난 2018년 9월 클라우드를 자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중국 내 클라우드 1위 사업자인 알리바바를 추격하기 위해 작년 한 해 3000명 이상의 인력을 채용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비롯해 IT인프라사업에 향후 5년간 5000억위안(약 85조6000억원)을 쏟아붓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로이터는 “알리바바가 향후 3년 클라우드 등 IT 인프라에 2000억위안(약 34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지 몇 주 만에 텐센트가 경쟁하듯이 투자계획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게임은 클라우드와 연관이 있다. 게임사는 게임을 개발하고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핵심 인프라로 클라우드를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예컨대 텐센트의 모바일 게임 왕자영요는 이용자가 플레이를 끝내면 인공지능(AI)이 하이라이트 장면들만 모아서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보여준다. 이런 서비스에도 클라우드 기술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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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을 종합하면 텐센트는 작년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현재 한국 상위 20개 게임사 중 절반가량이 텐센트와 클라우드 사업 제휴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 넷마블, 그라비티 등 텐센트 클라우드의 고객사 대다수가 게임사다. IT(정보기술)업계에선 국내 게임사들이 중국 진출 가능성 등을 감안해 텐센트 클라우드를 도입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텐센트가 한국 게임사에 내민 ‘청구서’란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텐센트는 최근 한국에서 클라우드 사업 확장 계획을 세웠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미국 클라우드 기업이 한국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만큼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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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도 안 돼 시총 반토막… “인터넷 천국이 끝났다”

    미·중 패권 경쟁이 갈수록 거세지자 텐센트 제국이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이 화웨이와 틱톡 등 중국 빅테크 기업 제재에 열을 올리면서 텐센트도 블랙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못지않게 중국에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텐센트 때리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이 제재에 나설 경우 위챗뿐 아니라 글로벌 게임·클라우드 시장을 공략하던 텐센트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텐센트와 손잡고 사업을 하거나 클라우드를 도입한 한국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텐센트는 중국 안방에서도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가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자국의 빅테크 플랫폼을 견제하기 위해 반독점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어서다. 중국 당국은 알리바바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역대 최대인 182억2800만위안(약 3조11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중국이 2015년 반독점법 위반으로 미국 퀄컴에 부과한 최고액인 60억8800만위안(약 1조400억원)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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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슨 대표 게임 ‘던전앤파이터’


    텐센트도 알리바바와 비슷한 독점 조사를 받고 있다. 중국 당국이 텐센트를 겨냥한 만큼 알리바바와 비슷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홍콩 주요 매체들은 “중국 당국이 자국의 빅테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며 “인터넷 천국이 끝났다”고 보도했다. 텐센트의 작년 시가총액은 5097억달러(약 569조3000억원)로 전 세계 기업 중 8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 초 한때 9000억달러(약 1005조원)를 기록하며 중국 기업 중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지난 4월 중순 기준 시가총액은 수천억달러가 증발해 7800억달러 수준(약 781조원)까지 떨어졌다.

    [임영신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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