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네이버, 북미 왓패드·유럽 왈라팝·일본 소뱅 연합군… 이해진의 꿈 “수성에서 반격”으로 성공할까

    2021년 06월 제 129호

  •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쿄. 네이버의 일본법인 ‘네이버재팬’ 사무실에 있던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창밖을 내다봤다. 고층 오피스 건물들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흔들렸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 9.0의 지진이 일본을 강타한 것.

    네이버는 2000년에 일본에서 검색 사업을 전담할 네이버재팬을 설립했지만 2005년 1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2006년 검색 업체 ‘첫눈’을 인수하고 이듬해 다시 네이버재팬을 설립했다. 네이버의 검색 엔진 기술로 일본 시장에 재도전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시장의 진입 장벽은 높았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이 GIO는 이사회에서 ‘마지막 투자’를 호소하며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배수진까지 쳤다. 이런 와중에 대지진이 터지자 이 GIO에겐 암담 그 자체였다.

    성공은 역경 속에서 싹트는 걸까. 일본은 최악의 쓰나미와 지진에 휩쓸린 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등 끔찍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대부분의 인력이 철수했지만 20~30명의 직원들이 도쿄 사무실에 남아 극한의 상황을 견뎌내며 다시 도전했다. 이들이 몇 개월 머리를 맞댄 결과 탄생한 것이 ‘국민 모바일 메신저’로 자리매김한 ‘라인’이다. 라인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공포와 단절로 인한 고립감을 느끼는 일본 국민들을 온라인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라인이 히트를 치면서 네이버는 기사회생했고, 일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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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라인 웹툰 미국 뉴욕 전광판 광고


    2021년 3월 11일. 이해진 GIO는 2시간에 걸쳐 직원들에게 네이버의 글로벌 도전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10년 전을 이렇게 회상했다. “일본에서 몇 년째 고생했는데 다 실패하고, 지진까지 덮쳐서 회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라인이 나왔고, 야후재팬과 통합해 10년 만에 일본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됐다. 글로벌 도전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하지만 올해 큰 기회가 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네이버가 글로벌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네이버가 해외 시장 공략을 목표로 ‘글로벌’을 내세운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고배를 마셨는데 이번엔 다르다. 이해진 GIO는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 변화를 만화 <진격의 거인>에 비유해 “올해 회사에 큰 기회가 왔다. 지금까지 수성(守城)에 집중했다면 올해부터 반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생존을 위해 성을 지키며 축적해 온 네이버의 기술력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단계에 올라섰고, 올해 성 밖으로 나가는 첫 시기가 될 것이라는 게 이 GIO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네이버 해외 사업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로 라인과 웹툰이 꼽힌다. 라인은 일본을 비롯해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2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끌어 모았다. 네이버웹툰 사용자도 전 세계 7200만 명에 달한다. 여기까지는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 1.0이다. 네이버는 올해 글로벌 전략 2.0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의 기술 플랫폼을 무기로 세계 곳곳에서 ‘동맹’을 맺은 1위 기업들과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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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일본 도전… ‘최고 파트너’ 소뱅과 협업 기대

    네이버는 올해 일본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네이버에 일본은 애증의 대상이다. 일본 시장을 뚫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였고, 2018년에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2019년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이 경영통합을 결정하고 지난 3월 신생법인 ‘Z홀딩스그룹’이 탄생하며 네이버의 일본 사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라인과 야후재팬은 일본 모바일 메신저, 검색 포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일본에서 네이버와 카카오톡이 결합한 셈이다.

    지배구조를 보면 이해진 GIO의 역할이 크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A홀딩스가 Z홀딩스의 지분 65%를 갖는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Z홀딩스는 라인과 야후를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 GIO는 A홀딩스의 공동 대표 이사 회장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매체에 따르면 이 GIO는 라인과 야후 대표에 사용자 입장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커머스다. 네이버의 오픈마켓 플랫폼 ‘스마트스토어’에 담긴 기술을 일본에 그대로 적용해 온라인 쇼핑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스마트스토어는 소상공인에게 온라인 가게 개설부터 마케팅·주문 처리·결제·배송 등을 할 수 있도록 디지털 툴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스마트스토어를 연 소상공인은 45만 명에 달한다. 일본은 미국의 아마존과 일본의 라쿠텐이 온라인 쇼핑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캐나다 기업 쇼피파이가 진출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는 쇼피파이와 사업 모델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얼마나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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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가 웹툰 작가의 글로벌 진출을 돕고, 웹툰 작가들과 해외 팬들이 만날 수 있는 글로벌 행사를 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에서 진행했다.


    네이버의 숙원 사업인 일본 검색 시장 점유율도 2025년까지 50% 수준까지 키울 계획이다. 야후재팬을 파트너로 확보한 만큼 목표 달성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이버가 소프트뱅크라는 강력한 우군이 생긴 것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이 GIO는 소프트뱅크에 대해 “최고의 파트너를 얻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일본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B2B는 영업력이 관건이다. 네이버는 그간 일본에서 나홀로 영업을 벌여왔지만, 이젠 소프트뱅크의 영업망과 맨 파워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영업 인력이 5500명에 달하고, 40만 개의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 등 한국 대기업들이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며 “네이버가 일본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한국 최초 기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일본 시장에서 성공이 미국·유럽 등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현지 기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는 중국은 소프트뱅크와 함께 공동 펀드를 조성해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 AI 안면인식 업체 센스타임 등 20여 개 기업에 투자했다. 동남아는 미래에셋과 손잡고 중고거래 플랫폼 캐러셀을 비롯해 커머스 플랫폼 부칼라팍, 차량공유업체 그랩 등에 투자했다.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동남아와 인도에서 투자한 기업은 40개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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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네이버 일본 자회사 라인과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소프트뱅크 소유 Z홀딩스가 Z홀딩스그룹을 출범했다. 가와베 켄타로 Z홀딩스 공동대표(왼쪽)와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공동대표.
    ▶콘텐츠·엔터테인먼트 두 축으로

    북미 공략 총력전


    북미는 네이버에 ‘꿈의 무대’다. 네이버는 웹툰·웹소설 콘텐츠와 K팝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다. 미래의 소비자층인 Z세대를 사로잡을 계획이다.

    우선 네이버의 웹 만화 플랫폼인 네이버웹툰과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미국에 글로벌 콘텐츠 사업 확장을 위한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왓패드 인수를 결정하고, 지난 5월 약 6억달러(약 6714억원)를 들여 왓패드 지분 100% 취득을 마쳤다. 세계 웹툰과 웹소설 시장에서 1위 플랫폼끼리 뭉쳐 ‘초대형 연합군’을 꾸린 것이다.

    지난 2006년 설립된 왓패드는 전 세계 94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이다. 창작자는 약 570만 명, 창작물은 10억 개에 달한다. 네이버웹툰은 100여 개 국가에서 10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이용자 수가 7200만 명을 넘어섰다. 창작자는 70만여 명, 창작물은 130만여 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기업이 웹툰·웹소설 세계의 패권 장악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네이버는 올해 네이버웹툰의 비즈니스 노하우와 수익화 모델을 왓패드에 접목할 예정이다. 슈퍼 지식재산권(IP) 발굴과 웹툰의 웹소설화, 웹소설의 웹툰화를 추진한다. 양사는 총 167개의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영상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는 왓패드와 성과를 바탕으로 네이버웹툰의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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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네이버는 엔터테인먼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작년 SM엔터테인먼트에 이어 연예기획사에 대한 세 번째 투자다. 네이버는 4119억원을 투자해 빅히트의 K팝 플랫폼 위버스를 운영하는 자회사 BeNX의 지분 49%를 사들였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약 1년에 걸쳐 네이버 K팝 커뮤니티 플랫폼인 브이라이브(V LIVE)와 위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합칠 계획이다.

    IT업계에선 상호 보완적인 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K팝을 활용한 팬덤 플랫폼은 아이돌 스타의 존재가 핵심이다. 소속 연예인이 없는 네이버 입장에선 빅히트에 온라인 콘서트·팬미팅 기술 등 플랫폼 운영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신 국내외 다양한 스타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빅히트는 YG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하고 있는 데다 세계 1위 음반사인 유니버셜뮤직그룹과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IT업계 관계자는 “브이라이브와 위버스가 통합하면 확실한 세계 1위 K팝 팬덤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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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서 중고거래 커머스에 도전… 네이버 기술력 통했다

    네이버는 미국에 이어 유럽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서비스를 직접 론칭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1위 사업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네이버는 플랫폼 운영에 필요한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지난 2월 ‘스페인의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에 1550억원을 투자했다. 왈라팝은 사용자 수 1500만 명에 달하는 스페인 중고거래 1위 사업자다. 네이버는 유럽 중고 명품 리셀(되팔기) 플랫폼인 베스티에르에도 투자했다. 왈라팝과 베스티에르에 검색, 광고, 인공지능(AI) 추천 등 스마트스토어 솔루션을 도입할 예정이다.

    IT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검색, 아마존은 커머스, 페이스북은 SNS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특정 서비스에 강점이 있고 이에 걸맞게 특화된 기술력을 자랑한다”며 “네이버는 플랫폼 관련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여서 여러 기술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런 배경에서 왈라팝과 베스티에르 경영진은 자금 동원력이 풍부한 미국 기업 대신 네이버를 사업 파트너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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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는 연구개발(R&D)을 위한 투자에도 힘쓰고 있다. AI 기술 개발을 통해 검색, 콘텐츠 사업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 AI 연구자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글로벌 AI 연구 벨트’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한국·일본·프랑스·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개발자를 계속 늘려가면서 AI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엔 북미지역에서 우수 개발인력을 채용해 R&D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회사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5%로 세계 1위 수준”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을 2025년까지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네이버는 올해 글로벌 사업 관련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광폭 행보’로 1위 사업자와 파트너를 맺었고 올해 이들과의 본격적인 시너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해진 GIO는 “해외에 징검다리 정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튼튼한 교량이 생겼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는 올해 세계 곳곳에서 플랫폼 사업을 가동해 글로벌 매출 17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이버의 글로벌 플랫폼 월간 이용자 수는 8억4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라인을 포함해 네이버 플랫폼 사업의 해외 비중은 작년 기준 39.4%로 2013년(23%)보다 15% 포인트 이상 커졌다. IT업계에선 올해 이 비중이 40%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영신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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