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루즈벨트 길 따라 걷는 바이든…최강국 재건 나섰다

    2021년 07월 제 130호

  • 정치 지도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는 인물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롤모델은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 미국 32대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후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루즈벨트의 초상화부터 내걸었다.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연설에선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 1932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1960년 존 F 케네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의 당선을 미국 역사의 변곡점으로 꼽았다. 자신의 당선으로 미국이 다섯째 변곡점을 맞았다는 의미였다.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다. 마지막 임기는 급작스런 사망으로 채우지 못했지만 무려 12년간 집권하며 미국을 20세기 최강국으로 우뚝 세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안으로는 경제 대공황을 과감한 경기부양과 사회보장 정책을 통해 조기 극복했고, 밖으로는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해 연합군 승리를 견인했다. 1941년 의회 연두교서를 통해 밝힌 ‘네 가지 자유’ 연설은 루즈벨트의 정치사상의 완결판이었다. 그는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네 가지 자유를 부르짖었다. 이 가운데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의 핵심적 가치가 됐다.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을 불법적 행위로 규정하고 세계 각국이 군축에 나서도록 이끌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6월 중순 8일간에 걸친 유럽 순방에서 보여준 행보에는 루즈벨트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이 숨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대서양헌장 개정본에 서명한 것부터가 그렇다. 1941년 루즈벨트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대서양헌장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新)대서양 헌장’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칙, 가치, 제도를 수호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코로나19 종식, 공정 무역, 기후변화 대응, 집단 안보 등에서 양국이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미국·유럽연합(EU) 등 세 번의 정상회의에 참여하며 일관된 메시지를 던졌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연대해 중국과 러시아라는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냉전의 해체 이후 서서히 고립주의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 이후 ‘세계의 경찰’을 포기한다는 공식 선언까지 나왔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선 미국이 세계에 전파해온 가치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트럼프식 노선은 동맹국들에게도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트럼프 시대를 4년 만에 끝내고 새롭게 시작된 바이든 시대에 미국은 확연히 달라졌다.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며 던진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상징적이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점을 반성하는 한편 자신이 이를 되돌려 미국이 주도하는 안정적 세계 질서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유럽 국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을 맞아 중국에 대해 이례적인 경고 메시지를 내며 적극 호응했다. 나토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이라고 규정했다. 안보 개념이 지리적 위치를 넘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서구가 중국에게 느끼는 공포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며 유럽의 선택은 분명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부흥을 이끈 환대서양 동맹의 복원이 자신들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유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재정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국가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했고 결국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가 현실이 됐다. 유럽 내에선 극우·극좌 정권이 잇따라 등장하며 정치적 불안도 커졌다.

    폭풍 같은 시절을 거친 유럽국가들은 다시 안정적 질서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동맹의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바이든 대통령의 등장은 미국과 유럽 간 신(新)허니문 시대를 여는 적절한 계기로 작용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지난 3월 미국 연방 상원이 1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 규모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경기부양안을 통과했다.
    ▶국내서도 루즈벨트식 ‘큰 정부’ 지향

    물론 환대서양 동맹의 부활이 서구의 승리를 결코 담보할 수는 없다. 냉전 시대 이념과 무력으로 미국에 맞섰던 옛 소련보다 중국은 더욱 강력하다. 중국에 대한 전 세계의 높은 무역 의존도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세운 ‘민주주의 대(對)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구조적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국내적으로도 바이든 대통령의 여러 정책은 루즈벨트를 따라하는 모양새다. 루즈벨트는 1932년 여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뉴딜(New Deal)’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때까지 이념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와 작은 정부를 추구했던 민주당의 경로가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의회는 민주당 단독으로 1조9000억달러(약 2150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백악관은 인프라스트럭처와 무상교육 등의 확대를 위해 도합 3조달러의 예산을 추가 요구했다. 그리고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부자 증세에도 시동을 걸었다.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코로나19 부양 예산 외에는 통과되지 못하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성은 분명하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그랬듯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미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좌파의 믿음이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바이든 대통령의 루즈벨트식 행보가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했다. 연방정부가 더 많은 돈을 풀기도, 세금을 올리기도 힘들게 만드는 요소다. 밖으로는 중국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중러와의 협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바이든은 경륜 있는 정치가”라며 “트럼프와는 달랐다”고 립 서비스를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손에 직접적으로 쥐어준 선물은 전무했다.

    단임 대통령에 그치며 플로리다주에 정치적 유배를 가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신만의 롤모델이 있었다. 20달러짜리 지폐에 새겨 있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다. 미국의 7대 대통령인 그는 소외당한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워싱턴의 기득권 정치를 뒤집었다. 엘리트 정치인들과 철저히 반목했던 그는 평당원이 대선 후보를 뽑는 방식을 관철시켜 스스로 대통령에 올랐던 이단아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잭슨의 초상화를 떼고 그 자리를 루즈벨트 초상화로 대체했다. 재무부는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추진했다가 포기했던 20달러 인물 교체를 다시 시도하고 있다. 잭슨의 얼굴은 바이든 정부 임기 내에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인 해리엇 터브먼으로 교체될 전망이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