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카라바조와 사도 바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중해의 한 점 섬, 몰타 발레타

    2021년 07월 제 130호

  • 넓고 푸른 지중해에서 유난히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한 점 섬, 몰타공화국. 이곳은 제주도 6분의 1 크기의 작은 섬나라이지만, 찬란한 선사시대의 문화유적을 가진 인류 역사의 현장이다. 성경에는 ‘멜리데’라고 표기됐고, 사도 바울이 시리아에서 로마군에 붙잡혀 압송될 때 배가 난파하여 잠시 머물며 그리스도교를 전한 곳이다. 또한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Beheading of St. John the Baptist)>라는 명작이 그려진 예술의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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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가 숨겨 놓은 진주’라고 불린 몰타는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 열강들에 의해 자주 침략을 받았다. 과거에 로마제국은 북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몰타를 선택했고,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세력을 아프리카로 확장하려고 이곳을 지배하였다. 그 후에도 나폴레옹의 침략과 영국의 160여 년간의 지배 등 슬픈 역사로 점철된 섬나라가 되었다. 낯선 문화의 이방인들이 머물다 간 수도 발레타에는 기원전 3600년경에 세워진 신전 건물, 360여 개의 가톨릭 성당, 16세기 오스만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쌓은 성, 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의 십자군 성채 등 몰타의 역사와 함께한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한 발레타의 중심지는 고색창연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구시가지 엠디나이다. 굽이치는 언덕 위에 자리한 엠디나는 중세시대 때 건축된 성채로 둘러싸여 있고, 3000여 년 전 몰타의 옛 수도였다. 오래전부터 ‘노타빌레’ ‘시타 메키아’ ‘시타 노타빌레’ 등으로 불린 엠디나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문헌에 기록돼 있다. 초기 토착민이었던 페니키아인들은 이곳을 ‘말레트’라 불렀고, ‘엠디나’라는 명칭은 ‘아랍어의 도시’를 뜻하는 ‘메디나’에서 유래된 것이다.

    구시가지의 건축물은 대부분 16세기 때 지어진 것이고, 이때부터 많은 귀족이 엠디나에 거주하면서 이곳을 ‘귀족의 도시(Noble City)’라고도 불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 건축물 중에서 성 요한 대성당과 성 바울 성당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몰타의 국민과 삶의 궤적을 함께하고 있다. 두 개의 역사적인 장소는 몰타 여행의 핵심이고 이곳을 보지 않고서는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선 몰타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인 성 요한 대성당은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와 <성 히에로니무스>라는 명작을 소장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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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
    대성당은 1573~1578년 성 요한 기사단이 주축이 된 수도원 교회에서 건축가 제롤라모 카사에게 의뢰해 건축되었다. 이곳은 십자군의 기사들이 다함께 기도 드리기 위해 모이던 장소로 외관은 간소하지만, 그 내부의 기둥과 바닥, 천장의 세밀한 조각과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성당 바닥 아래에는 400기가 넘는 역대 요한 기사단의 유해가 묻혀 있다. 무덤 위에는 기사들의 업적과 일생을 재현한 모자이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장식돼 있다. 특히 대성당 내부 장식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610년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카라바조가 그린 <세례자 요한의 참수>이다. 가로 5m가 넘는 이 작품은 대성당 제단화 중에서 가장 크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성경에 기록된 살로메와 관련된 세례자 요한의 참수를 주제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 속에서 세례자 요한이 피를 흘리며 죽는 장면에서 카라바조는 요한의 피로 자신의 이름을 캔버스 위에 썼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에 얼마나 열정을 쏟았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세례자 요한의 참수 그림 맞은편에는 카라바조의 또 다른 작품 <성 히에로니무스>가 걸려 있다. 이 작품은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이 소장한 <글을 쓰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같은 주제로 카라바조가 2년 후에 몰타에서 다시 그린 것이다.

    그럼, 카라바조와 몰타는 어떤 인연이 있으며, 왜 발레타 대성당 제단화에 그의 그림이 걸린 것일까? 르네상스 화가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은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다. 그의 고향이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카라바조’라는 작은 마을이라, 그를 흔히 ‘카라바조’라고 부른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이후 생겨난 매너리즘과 바로크 화풍을 통해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20대에 정교한 정물화와 인물화 등을 주로 그리다가 29세 때 <성 마테오> 연작을 그린 후 종교화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살랐다. 그 결과 그는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새로운 종교적 이미지를 구현했고, 이런 화풍은 바로크 화가인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물론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와 강한 빛과 어둠의 대비는 기성 화가들과 소비자였던 귀족들에게 비난받았고, 외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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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자 요한의 참수>
    이처럼 카라바조는 화가로서 성공했지만, 폭력성, 조울증, 음주와 도박, 살인 등으로 여러 번 감옥을 드나들며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한마디로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앓았던 카라바조는 1606년 살인을 저지른 후 로마를 탈출해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배회하다가 1608년 발레타로 몰래 숨어들었다. 이때 몰타는 십자군 원정의 전진기지이자 요한 기사단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고 기사단의 요청에 따라 발레타 대성당 제단화를 멋지게 그렸다. 이 일로 인해 카라바조는 기사단으로부터 작위도 받았고 섬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범죄 사실이 밝혀지면서 작위는 박탈되고, 남몰래 몰타를 빠져나와 다시 이탈리아로 가던 중에 39세로 요절하였다.

    다음은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이 스며 있는 ‘성 바울 성당’이다. 성당 지하에는 사도 바울이 동굴 감옥에서 3개월간 머물렀던 성스러운 장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칠흑 같은 어둠밖에 없는 동굴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굳은 의지를 보였던 바울의 모습을 상상하면 이곳은 감옥이 아니라 성스러운 성지로 다가선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섬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는 죄인이 아니라 몰타의 성자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래서 해마다 2월 10일 몰타에서는 ‘성 바울 난파 축제’가 개최될 만큼 이곳 사람들은 성 바울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작은 섬나라, 몰타. 하지만 이곳이 가진 문화유산과 황홀한 지중해 풍경은 여행자들의 마음과 눈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오늘도 어제처럼 수많은 사람이 몰타를 찾고, 그 중심에 있는 발레타에서 이민족들의 흔적과 사도 바울의 성스러운 신앙심, 그리고 카라바조의 열정 등을 느끼고 간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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