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퍼스트 클래스 와인, 하셀그로브 콜 크로스

    2021년 07월 제 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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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로 유명하지만, 기내에 서비스되는 와인의 품질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그룹을 창업한 고(故) 조중훈 회장은 프랑스에서도 미식가로 꽤 알려졌던 모양이다. 현지의 와인 도매업자에 따르면, 고 조 회장은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생산지인 마고 마을의 샤토 프리외레 리친(Chateau Prieure Lichine)의 전 소유주인 고 알렉시스 리친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알렉시스 리친은 뛰어난 와인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보르도 와인업계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그가 1962년에 만든 보르도 와인 등급은 메독 지역뿐만 아니라, 1855년 등급에 포함되지 않았던 포므롤, 생테밀리옹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품질을 나누고 있어서 지금도 자주 참고하고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대한항공의 와인 책임자를 지낸 방진식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박사로 와인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와인전문가와 경영진들이 기내 와인을 심사하는 과정은, 수확을 마친 포도원의 가족들이 양조에 사용할 포도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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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난 2014년 처음 들어보는 ‘콜 크로스(Col Cross)’라는 호주 와인이 대한항공 1등석 와인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콜 크로스 와인은 ‘하셀그로브(Haselgrove)’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하셀그로브는 1981년에 설립되어 2008년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인 돈 토티노(Don Totino)와 그의 친구들에 의해 인수된 이후에 시장에 알려진, 한마디로 와인업계에서는 햇병아리 같은 와이너리이다. 2017년 알렉스 셰라(Alex Sherrah)가 양조에 참여하면서 품질이 더욱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셀그로브가 위치한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은 호주에서도 매우 유서 깊은 와인 생산지로,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 브랜드 중 하나인 하디스(Hardys)의 설립자 토마스 하디가 1830년대에 처음 포도를 심은 곳이다. 하디스에서 1876년부터 소유하고 잇는 ‘틴타라’뿐만 아니라 ‘클라렌던 힐스’ ‘몰리 두커’ ‘양가라’ ‘다렌버그’와 같은 좋은 양조장들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로사 밸리에는 고급 호주 와인의 교과서와 같은 ‘펜폴즈’ ‘헨쉬키’ 와이너리들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하셀그로브에서 생산한 와인의 품질이 특별하지 않았다면 기내용 와인으로 선정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주의 최고급 와인들은 보통 시라즈라는 포도로 만든다. 시라즈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포도 품종으로, 매우 진하고 오래 보관하는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호주에서 만든 시라즈 와인은 오래 묵히면 매우 깊이가 있고 균형감이 뛰어나 종종 유럽의 고급 와인과도 헷갈릴 정도이다.

    하지만 시라즈로 만든 어린 와인들은 유럽산 와인보다 달고 유칼립투스 향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향이 나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하셀 그로브의 콜 크로스는 그런 선입견을 단호하게 부정하는 와인이다. 과하지 않고 부족함도 없이 균형 잡힌 와인으로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콜 크로스뿐 아니라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호주산 와인들은 수출 시장을 겨냥하면서 전통적인 호주 와인들보다 세련된 풍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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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셀그로브의 알렉스 셰라에 의하면, 와인 품질 향상의 비결은 포도나무 재배와 양조의 미니멀리즘에 있다. 분자요리에 익숙한 미식가들은 이미 미니멀리즘에 익숙한 편이다. 재료 자체에 충실하기 위해 재료를 미세한 단위로 다루는 분자요리처럼, 와인의 미니멀리즘은 포도밭의 위치에 따라 제각각 다른 테루아에 충실하기 위한 작업이다. 분자요리처럼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은 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포도 품질을 포도밭, 그보다도 작은 파셀이나 이랑 단위로 관리하고 그 작은 단위에서 재배된 포도로 따로따로 와인을 만든 다음 블렌딩하는 데에 그 비법이 있다. 이러한 양조 기술은 호주뿐만 아니라 유럽의 유명한 포도원에서도 등장한 비교적 현대적인 유행이다. 전에는 하나였던 작업을 세분화해 진행해야 하는 만큼 노력과 비용이 추가된다.

    미니멀리즘의 기본은 싱글 빈야드에 있다. 싱글 빈야드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유래한 방식으로, 하나의 포도밭에서 나오는 하나의 와인을 뜻한다. 콜 크로스는 하셀그로브 와이너리의 싱글 빈야드 와인으로, 60년 이상 오래된 시라즈 나무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다. 10년 이상 보관하면 좋은 맛을 낼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마셔도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와인이다.

    [이민우]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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