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비대면이 일상인 세상, 나 홀로 걷기 ‘딱’ 좋은 전국 산책코스 7

    2021년 10월 제 133호

  •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은 억겁의 세월이 더해져 일어나는 기적이라 했던가. 하지만 그 기적, 팬데믹 이후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른바 비대면이 일상이 된 세상은 삭막하지만 자유롭고 외롭지만 이채롭다. 그 새로운 일상의 작은 취미가 된 ‘나 홀로 산책’의 보물 같은 둘레길을 소개한다. 올해 ‘Dear My Walking’이 직접 걷고 뛴 흔적이자 평일엔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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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추월산 용마루길, 군산 고군산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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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 내소사, 삼척 이사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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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 청령포, 북한산 진관사, 변산반도
    Course 1.

    굽이굽이 호숫가 물길 따라 보석 같은 사색길

    전남 담양 추월산 용마루길


    전라남도 담양은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고을이다. 병풍산, 삼인산, 추월산, 금성산이 서북쪽을 에워싸고 맞은편에 버티고 선 무등산이 바로 그 수려함을 완성한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이곳만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슬로시티’를 표방한다는 것. 그러니까 거북이 같은 걸음이나 행동, 살짝 게으름을 피워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 한번쯤 그러고픈 이들에게 대놓고 그래보라고 손짓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뭐가 그리 좋은지 용마루길을 걷는 이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혼자 걷는 이들도 하나둘 눈가에 웃음이 그득하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할 수 없지, 알아보려면 직접 걸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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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호국민관광지에서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시작되는 추월산 용마루길은 길이 3.9㎞의 왕복 산책길이다. 나무 데크로 조성한 2.2㎞와 1.7㎞의 산길이 이어지는데, 굽이굽이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이 멋스럽고 아기자기하다. 목교→전망대→연리지→옛 마을 터→삼거리로 이어지는 코스는 숲과 호수가 번갈아 나타난다. 데크가 놓인 길이 암석이나 절벽 위에 조성됐다면 흙을 밟으며 걷는 산길은 호수가 얼마나 맑고 깊은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자연친화적이다. 그러니 이 길에 들어서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목교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원한 폭포수가 첫 번째 멍한 시선의 포인트다. 10m 높이의 나무다리 한가운데 마련된 쉼터에서 일명 멍 때리며 바라보는 이 폭포는 아쉽지만 인공폭포다. 그럼에도 그 모양이 희귀해 지나가는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연신 휴대폰 카메라 버튼을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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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다리는 걷는 이들의 수에 따라 내는 소리가 다르다. 여러 무리가 걸으면 ‘따각’거리는 소리를 뭉쳐내고, 홀로 걷는 이에겐 간간이 ‘텅텅’대며 존재를 알린다. 다리를 건넌 후 300여m쯤 걸어가면 탁 트인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약 4㎢의 면적을 자랑하는 담양호는 1972년 착공해 만 4년 만에 완성된 인공호수다. 용마루길 왕복이 성에 차지 않았다면 돌아오는 길에 3.48㎞로 조성된 등산로 ‘수행자의 길’이 기다린다. 13개의 봉우리가 등산로의 능선을 채우고 있어 산 타는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담양호를 비롯해 금성산성, 가마골, 추월산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Course 2.

    잔잔한 바닷가, 바다가 열리는 장관까지…

    충남 보령 무창포 바닷길


    “무창포 해수욕장은 가족들이 많이 찾아요. 조용해서 아이들하고 놀기가 좋거든. 해변가를 걷다 갯벌체험도 할 수 있고, 수산물시장에 가서 회도 뜰 수 있으니 가족여행으로 이만한 데가 없어요. 한 10분 거리에 있는 대천해수욕장은 젊은이들이 많아요. 거긴 시끌시끌하지.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려 놀기엔 거기가 최고라니까. 머드축제 덕분에 외국인도 많이 오는 동네가 됐어요.”

    무창포해수욕장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앞 커피숍. 색색이 스카프로 단장을 마무리한 사장님이 나름의 지역분석을 더해 내준 커피가 구수하다. ‘과연 그럴까?’라며 들어선 무창포해수욕장의 풍경은, 실제로 그랬다. 해변가 산책에 나선 이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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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보령시 웅천읍(熊川邑) 관당리(冠堂里)에 자리한 무창포해수욕장은 그야말로 탁 트인 풍경이 볼거리다. 해변에 맞닿은 리조트 상층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1.5㎞에 달하는 백사장이 축구장 예닐곱 개를 연결해놓은 것처럼 넓고 가지런하다. 썰물일 땐 해변이 한없이 넓어지는데 드러난 바닥이 차져 평상화를 신고 걸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조선시대에 군수물자를 비축하는 군창지(軍倉址)였던 무창포는 1928년 서해안 최초로 해수욕장을 개장했다. 물자가 풍족하니 찾는 이들이 많았고, 여느 서해안 해수욕장과 비교해 물이 맑고 갯벌이 단단해 여흥을 즐기려는 이들도 많았다.

    이곳만의 비밀병기도 있었다. 한 달에 4~5차례씩 바다갈라짐이 일어나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그것인데, 해변의 중간지점부터 바닷가 앞 무인도인 석대도까지 약 1.5㎞가 갈라지며 길을 내준다. 그 시간을 기다렸다 길에 들어서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나 조개, 혹은 낙지까지 손쉽게 건져 올릴 수 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전언이다. 물론 이 모든 건 물때를 맞춰야 한다. 인터넷으로 무창포 홈페이지를 찾으면 확인할 수 있다. Course 3.

    Course 3. 찬란한 태양 아래 잔잔한 산하… 바다 위로 이어진 섬 산책길

    전라북도 군산 고군산군도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남짓, 바다가 지척인 항구도시 군산에 들어섰다. 금강의 왼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서해안의 중심 항구도시다. 군산을 찾은 이유는 온전히 고군산군도 때문이다.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을 걷거나 차로 이동할 수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해상관광공원이다. 고군산군도로 가려면 군산에 들어선 후 이 새만금 간척지를 지나 약 30여 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 차가 새만금 방조제로 들어서면 동남아시아의 어느 섬이라 해도 믿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진다. 방조제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짙푸른 파도 넘실대는 서해바다의 위용에 숨이 턱 막힌다. 그늘 없는 전망대로 쏟아져 내린 볕은 색이 깊고 찬란하다. 그림 같은 뭉게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은 내가 원래 이런 존재라는 듯 미친 듯이 이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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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봉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고군산군도에 들어서면 어느 곳으로 시선을 옮겨도 액자 속 그림이다. 고군산군도를 찾는 이들이 꼭 들렀다 가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선유도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방향이 정해지는데, 그냥 앞차가 가는 데로 가다보면 도착하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 덕분이다. 천연 해안사구 해수욕장으로 유리알처럼 맑고 고운 모래사장이 약 700여m나 이어져 있다. 마지막 섬 장자도의 대장봉이 이번 산책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대장봉은 해발 142.8m의 봉우리다. 도심의 뒷산쯤 되는 높이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은 전혀 다르다. 대장봉 전망대에 오르면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거쳐 온 섬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 고군산군도에도 썩 잘 어울리는 말이다. 꼭 한번 경험해보시길…. Course 4.

    산길과 바닷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소

    전북 부안 변산반도국립공원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자리한 내소사(來蘇寺)는 633년(백제 무왕 34년)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했다. 사실 내소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주차장에서 내소사까지 약 1㎞ 거리에 조성된 ‘전나무 숲길’ 때문이다. 폭이 5.5m나 되는 이 무장애 탐방로 양쪽엔 족히 30~40m는 되어 보이는 전나무가 도열해있다. 일주문에서 사천황문까지 휑했던 길 위에 150여 년 전 전나무를 심었다는데, 지금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의 풍경에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내소사를 찾는 이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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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벽강


    내소사 전나무 숲길과 경내를 두어 시간 산책한 후 차를 타고 30여 분 이동하면 변산반도의 서쪽 끝에 다다른다. 이곳은 옛 수군(水軍)의 근거지이자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채석강이라 부르는데,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퇴적암 지층이 바닷물에 침식돼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은 절벽이 됐다. 밀물과 썰물의 시간대에 따라 절벽 아래로 퇴적된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격포해수욕장, 수성당을 거쳐 적벽강까지 약 1.3㎞ 코스를 산책할 수 있다.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적벽강은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즐겨 찾았다는 지명에서 유래했다. 이 길은 바다를 끼고 걷는 해안 산책로다. 느릿하게 걸으면 1시간 반에서 두 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걸으면 훌륭한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산책로 막바지에 자리한 수성당은 서해바다를 지키는 수호신(개양할미)을 모시는 당집이다. 그 입구에 봄이면 유채꽃,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가지런히 심어져 객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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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소사
    Course 5.

    상영시간 90분, 한 편의 영화처럼 흐르는 짙푸른 동해바다

    강원도 삼척 이사부길 A코스


    삼척은 강원도 최남단에 위치한 시(市)다. 이게 뭐 그리 의미 있는 사실인가 싶은데,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어감에는 왠지 자연환경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건 고스란히 강원도가 지닌 고지대 산간지역의 이미지에 기인하는데, 태백산맥의 동쪽에 자리한 삼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주산맥의 기세는 바로 이 삼척에서 동해바다로 흘러간다. 덕분에 구불구불한 해안선 곳곳엔 멋들어진 풍경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해안선을 따라 차가 드나드는 도로가 뚫리고 보행자를 위한 데크가 놓였다.

    이사부광장에서 삼척해변까지 이어지는 약 4.7㎞의 산책로는 걷는 내내 바다를 보며 전진하는 길이다.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공원, 카페 등을 놓치지 않고 걷다보면 90분 동안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동해바다의 풍광이 펼쳐진다. 코스의 출발점인 이사부광장에서 출발해도 좋고 도착점인 삼척해변에서 출발해도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차를 주차해야 한다면 삼척해변 주차장이 넓고 편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리조트가 자리한 삼척해변은 깔끔하고 아담하다. 해변 남단에 방파호 축조공사가 한창인데, 공사안내판에 나온 조감도를 보니 10월이면 먼 바다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공사구간을 통과해 돌아 나오니 푸른색 물기둥이 일렬로 일어서서 해안으로 밀려든다. 작은 자갈이 달그락대는 몽돌해변엔 기다란 낚싯대 드리운 이들 두서넛이 그림처럼 파도를 맞고 섰다. 작은 후진 해수욕장을 지나 후진항에 들어서면 곳곳에 강태공이다. 근처의 후진마을은 나루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후진(後津)’은 ‘뒷나루’다. 동헌이 있던 시내에서 볼 때 뒤쪽에 자리한 포구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뒷나루’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후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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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해변


    항구를 뒤로하고 10여 분쯤 걷다보니 오르막이 길어졌다. 그 경사의 정점을 앞둔 시점에 조각공원이 펼쳐지는데,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휴식처다. 화장실과 매점도 있어 유용하다. 무엇보다 조각공원을 등지고 오른쪽에 난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다 쪽으로 통창이 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차 한 잔하며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없던 시상(詩想)이 떠오를 만큼 운치 있고 멋스럽다. 조각공원을 뒤로하고 시선을 멀리두면 광진항 풍경이 잡힐 듯 펼쳐진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면 이정표에 ‘소망의 탑’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새천년의 소망을 담아 삼척시가 2000년에 건립한 탑으로 이곳엔 건립 후원자 3만3000명의 이름이 각인돼 있다. 3단 타원형 모양에 가운데 종이 달렸는데, 1단은 신혼부부의 소망석, 2단은 청소년, 3단은 어린이의 소망석으로 구성됐다. 탑신은 소원을 비는 양손의 형태로 표현됐고, 탑 아래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묻어뒀다. 오가는 이들이 한 번씩 종을 치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과연 2100년에 열리게 될 타임캡슐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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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se 6.

    기분 좋은 단절… 육지 속 섬에서 보낸 한나절

    강원도 영월 청령포


    강원도 영월에 자리한 청령포. 앞에는 서강이, 뒤에는 육육봉이 버티고 선 이곳에 가려면 작은 배를 타야만 한다. 그야말로 육지 속의 작은 섬이다. 작은 나룻배가 이곳에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아침에 비라도 오면 배가 멈춰 선다. 한반도를 닮은 지형에 물길이 좁아 적은 강수량에도 강물이 험악해지는 탓이다. 성인 기준으로 왕복 3000원이면 탈 수 있는 배의 경로는 약 50~60m가 전부다.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뺏긴 단종의 유배지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은 560여 년 전 궁궐을 떠나 영월까지 내려와 이곳에 유배됐다. 뒤는 험준한 산이요, 앞은 강이니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0호로 지정된 지금의 청령포는 그러니까 당시 단종이 한양을 그리며 살던 망향의 터다. 이 적막한 산하에서 단종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선착장에 내려 조금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객을 반긴다. 한눈에도 경광이 빼어난 이 숲은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숲 곳곳에 단종이 살던 흔적을 재현해놨는데, 나무 데크를 놓아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크게 5곳으로 나뉜 길은 각각 ‘단종어소’ ‘단묘재본부시유지비’ ‘금표비’ ‘노산대’ ‘망향탑’에 이른다. 우선 단종어소는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관노들이 살던 행랑채로 재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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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을 좀 더 안쪽으로 옮기면 소나무 숲 중앙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선 잠시 휴대폰을 꺼놓는 게 어떨까. 벤치에 앉아 눈을 감으면 소나무 솔 사이를 비집고 드나드는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소리가 은은하다. 나무 아래 앉아있는 것만으로 가슴 속이 푸른 무엇으로 꽉 차오른다. 눈을 떠 소나무 숲의 중심으로 시선을 옮기면 천연기념물 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 하늘로 솟았다. 높이 30m, 둘레 5m, 두 갈래로 갈라진 관음송은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곤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 청령포 안에는 매점이 없어서 간단한 음료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Course 7.

    서울 산사에서 누리는 고요한 시간

    마음의 정원, 북한산 진관사


    서울 은평구 끝자락에 자리한 진관사는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사찰로 손꼽히는 명찰(名刹)이자 명승지(名勝地)다. 최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방한 당시 찾은 인연과 재계의 거목이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49재가 치러졌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물론 이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도와 산책이다. 진관사가 ‘마음의 정원’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은 도심에서 약 1시간 정도 이동해 도착할 수 있는 호젓한 산책코스다. 대부분 산사의 둘레길이 등산코스의 곁길인 데 반해 진관사로 향하는 길은 은평구 한옥마을에서 시작된다. 한옥마을을 한 바퀴 휘휘 돌아 나와 다시 진관사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면 ‘백초월길’이란 이정표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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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사찰을 전면 보수할 당시 칠성각 내부 해체 과정에서 불단과 기둥 사이에 한지로 된 큰 봉지가 발견됐다. 그 안엔 태극기를 보자기처럼 사용해 싸여있는 독립신문 등 20여 점의 독립운동 관련 유물이 있었다. 보자기 역할을 한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그린 것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제작했고, 발견된 사료들은 당시 진관사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칠성각 벽 속에 숨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극기의 형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정한 태극기의 모양과 정확히 일치한다. 빛이 차단된 밀폐공간에서 90여 년간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백초월길은 당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백초월 스님을 기리기 위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진관사 일주문에 도착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살짝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이곳부터가 진정 진관사다.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서기 1010년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 창건했다는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명령으로 고려 왕 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봄·가을로 큰 제사인 ‘수륙대재(水陸大齋)’를 베풀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된 이곳을 다시 살린 이는 1963년 주지로 부임한 비구니 진관(眞觀) 스님이었다. 30여 년간 진행된 복원 작업으로 현재 진관사는 현재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독성각, 나가원, 홍제루, 동정각, 동별당, 요사체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진관 스님은 외형적인 복원과 함께 1977년부터 수륙대제 복원에도 나섰다. 진관사 하면 떠오르는 정갈한 사찰음식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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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교를 건너기 전 해탈문을 바라보고 서면 다리 옆에 나무 데크로 만든 길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데크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꼭 들러야 할 산책코스다. 길 끝에 세심교를 건너 홍제루에 들어서면 나가원과 대웅전, 명부전이 가지런하게 자리했다. 진관사 산책코스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사찰 뒤편으로 향로봉에 오르는 코스가 이어진다. 해발 535m로 쉽게 보다가 큰코다칠 수 있는 봉우리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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