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구찌 | 무명의 디렉터가 재건한 100년 명품, 젊은 럭셔리 이끈 ‘구찌’의 혁신 인사이트

    2022년 05월 제 140호

  • 요즘 트렌드 좀 아는 이들은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를 먹고 마시고 감상하고 소비한다. 도대체 구찌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SCENE#1

    1990년대 마돈나가 입은 아디다스 드레스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이 MZ세대의 눈과 귀를 쫑긋 서게 만들었다. 구찌의 슈트와 드레스에 아디다스의 삼선 로고를 더해 완성한 이 컬렉션은 일명 ‘구찌다스’ ‘구찌디다스’라 불리며 SNS에 파고를 높였다. 구찌가 지난 2월 2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개한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화두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의 협업이었다. 아디다스 로고 아래 구찌 로고가 새겨졌고, 아디다스의 트레이닝복을 연상케 하는 슈트가 런웨이에 등장했다. 아디다스는 명품 런웨이를 처음 경험했고, MZ세대는 온라인에서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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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SCENE#2

    지난 3월, 개막과 동시에 전체 예약 일정이 마감되며 화제를 모았던 구찌의 몰입형 멀티미디어 전시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이 관람객들의 요청에 관람 기간을 2주 연장했다. 당초 3월 27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던 전시회는 4월 10일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지난 7년간의 캠페인을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재해석했다. 구찌 측에 따르면 ‘아키타이프(Archetype)’는 모든 복제품의 원형, 그 자체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본래의 형태인 ‘절대적 전형’을 뜻하며, 구찌의 모든 캠페인은 독특하고 반복될 수 없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지난 3월 7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전시 공간으로 미니어처가 전시된 ‘2017 가을·겨울 컬렉션 구찌 앤 비욘드’ 전시실과 나비, 마몽 핸드백 등 수많은 소품이 모여 있는 ‘2018 가을·겨울 컬렉션 구찌 컬렉터스’ 전시실을 꼽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며 “우리가 사용했던 의상들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것과 이를 광고 캠페인에 활용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시가 진행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전시 기간 내내 인증샷 명소가 됐다. 분홍색으로 도배한 전시장 입구와 구찌 핸드백 200개가 거울에 비친 전시공간은 MZ세대의 새로운 성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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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이태원의 구찌 가옥
    SCENE#3

    서울 이태원 구찌 가옥 6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은 4분 만에 한 달 예약이 마감됐다. 이곳은 구찌가 세계적인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 협업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선보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2018년 1월 피렌체 구찌 가든 1호점을 시작으로 2020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2호점, 2021년 10월 도쿄 긴자에 3호점을 차례로 열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에밀리아 버거를 비롯해 서울 가든, 아드리아 해의 여름 등 한국의 계절에서 영감을 얻은 신메뉴와 창의적인 이탈리아 요리가 테이블에 오른다. 약 200여 개 품종의 와인 리스트와 칵테일도 손님을 기다린다. 전체 좌석 수는 메인 다이닝룸 28석, 테라스 36석으로 구성됐다. 이곳 역시 인증샷의 명소로 우뚝 섰다. 한껏 차려입은 이들이 구찌가 선택한 인테리어와 식기, 음식을 배경으로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고 온라인에서 소비한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MZ세대다. 디자이너와 CEO가 연출한 구찌의 부활

    “명품 브랜드가 만든 제품과 상징, 세계관이 온라인상에서 더 많은 세계관을 낳는 세상이 됐어요. 레스토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고 전시회를 통해 상징성을 알리는 건 분명 새로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구찌가 그걸 모를 리가 있을까요. 구찌를 들고 다니는 MZ세대가 늘어난 것만 봐도 효과를 가늠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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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디다스와 협업한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오랫동안 해외명품을 수입해온 한 수입사 대표의 전언이다. 명품 브랜드가 본업과 상관없는 전시회나 레스토랑을 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장소를 통해 새로운 소비군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구찌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멀티미디어 전시회를 연 것도 미래의 구찌 마니아를 위한 포석이다. 전시회 전 기자간담회에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는 단순히 신발에 붙어있는 마크가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자 아름다운 장소”라고 말했다. 어쩌면 MZ세대를 향한 이 우아한 구애는 일단 성공적이다. 미국의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년이 되면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전 세계 명품 시장 고객의 45%를 차지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들의 가치 변화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이미 럭셔리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있다. 더 이상 희소한 가치나 일부 계층만의 특권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프리미엄이 새롭게 등장했다.

    대중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의 변신은 ‘구찌’의 변신이 기폭제였다. 한때 커다란 로고와 촌스럽고 고루한 이미지로 나락에 빠졌던 구찌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한 이후 무섭게 반등한다. 당시 명품 업계의 최고 이슈는 구찌의 부활이었다. 매출 감소로 위기를 겪었던 구찌는 밀레니얼세대를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2017년 루이비통에 이어 매출 기준 세계 2위의 명품 브랜드가 됐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파격적인 디자인과 바이럴 마케팅, 스트리트패션과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한물 간 브랜드를 10대가 선망하는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 혁신도 브랜드의 변신을 든든히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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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찌 러브 퍼레이드 컬렉션


    프랑스 명품 기업 ‘케어링(Kering) 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구찌는 2015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하며 새로운 CEO의 부임도 공표했다. 최근 방한한 앙리 피노 케어링 그룹 회장이 선택한 이는 ‘스텔라 매카트니’ ‘보테가 베네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마르코 비자리였다. 그는 부임 초기부터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활용했다. 쉽게 말해 후배가 선배의 멘토가 되는 역멘토링이다. 임원회의가 끝나면 30세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열어 임원회의에서 논의된 주제를 다시 토론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구찌는 더 이상 모피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여행 애플리케이션 ‘구찌플레이스’도 바로 이 위원회에서 출발했다. 결과는 실적으로 증명됐다. 지난해 구찌는 매출은 13조21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1%나 늘었다. 팬데믹 상황에 기록적인 성장세다. 구찌와 함께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의 명품 브랜드가 속한 케어링 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24조1000억원이나 됐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0%나 늘어난 6조81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반응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구찌는 꽃, 동물 등 화려한 문양과 금속, 가죽, 천 등 다양한 소재를 섞어 배치(Mix Match)한 가방, 의류가 모두 히트하며 다시금 백화점이 모셔가는 브랜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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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디오니소스, 홀스빗, 인터로킹 G 홀스빗, 뱀부
    구찌는 아직 사춘기…

    “브랜드 탄생 이후 100년이 지났지만 구찌는 아직 사춘기예요. 영원히 젊음을 간직해야 하고 그 몫이 나와 젊은 직원들에게 달려 있어요.”

    1921년 설립돼 100주년이 된 구찌에 대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소감이다. 앞서 밝혔듯 구찌의 변신에는 그의 등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1월에 부임한 그는 현재 모든 컬렉션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다. 1972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패션스쿨인 아카데미 오브 코스튬&패션을 졸업했다. 펜디의 시니어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2002년 톰 포드에게 발탁되며 런던의 구찌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구찌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12년간 재직한 그는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2006년엔 가죽 제품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됐고, 2011년 5월엔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수석 디자이너 역할을 수행했다. 2014년 9월엔 구찌가 인수한 이탈리안 도자기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성공신화는 최근 패션계에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다. 그동안 구찌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할 때마다 늘 다른 브랜드의 유명 디렉터를 모셔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자체 승진이란 타이틀을 달 만한 사건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가 임명되며 신데렐라 스토리가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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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구찌 컬렉터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 급작스런 사건 이후 첫 컬렉션부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냈다. 구찌의 기존 GG로고를 다양한 장식으로 뒤덮었고, 100만원이 넘는 시계를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도 한다. 언론과 평론가들은 우려했지만 시장은 환호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2020년 5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매년 5번씩 선보이던 패션쇼를 연 2회로 줄인다고 밝히며 컬렉션 운영의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그해 7월에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채널에서 ‘에필로그 컬렉션’을 공개하며 여전히 기존의 전통적인 패션 규칙과 시각을 뒤집는 창의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 3월에는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컬렉션을 공개하며 다양한 클래식을 재해석하고 아디다스와의 협업 제품도 선보였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의 예상을 깬 디자인과 협업을 통해 구찌를 가장 진보한 패션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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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기록적인 호황, 실적 베일에 가려진 구찌코리아


    구찌는 1990년대 초 성주 인터내셔널에 의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1998년 구찌코리아(Gucci Korea)가 설립되며 성주 인터내셔널로부터 구찌 사업부문 전체를 인수했다. 구찌코리아는 올 4월 기준 백화점 49개, 면세점 10개, 아웃렛 3개 등 총 64개의 매장과 공식 온라인 사이트(gucci.com/kr/ko)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명품 지사들은 지난해 역대최고급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루이비통이 1조4600억원, 샤넬이 1조2238억원, 크리스찬 디올이 6139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각각 1,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명 ‘에루샤’ 중 하나인 에르메스는 5275억원으로 4위에 올랐다. 명품 브랜드의 국내 실적은 그동안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 법인을 유한회사로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11월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자산과 매출이 500억원 이상이면 실적을 공시하도록 했다. 구찌코리아는 유한책임회사로 분류돼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한책임회사는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하고 출자자들이 유한책임을 지되, 이사나 감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설립·운영과 구성 등의 자율성이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생 창업회사에 적합한 기업 형태다. 개정된 외감법에서도 유한책임회사는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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