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패권전쟁 한국은 ‘넛크래커’ 신세] 시진핑 중국의 반도체 특명… 2025년까지 170조 투입해 칩 자급률 70% 목표 SMIC 선봉, 연구비 대폭 늘리고 파격적 세제혜택

    2021년 05월 제 128호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글로벌 반도체·IT 기업 경영진이 참석하는 ‘글로벌 화상 반도체 대책회의’에 깜짝 등장,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까지 직접 움직이게 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중국은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산업 육성이 향후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특히 공산당 체제의 특성을 활용해 노골적으로 정부의 지원책을 총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우선 2019년 기준 15.7%에 불과했던 반도체 자급률을 오는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아래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평소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며 반도체 산업 육성을 주문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이 가시화된 것은 지난 2014년이다. 중국은 당시 ‘국가집적회로산업 발전촉진강요’를 통해 반도체 관련 설비 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후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산업을 중점 육성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반도체 굴기가 본격화된다.

    이후에도 중국 정부는 수차례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내놨다. 상당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반도체 산업의 기술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차원이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대책들도 발표됐다. 2018년 발표된 ‘집적회로 생산기업 기업소득세 통지’에 따르면 경영기간 10년 이상의 집적회로 생산기업에게 2년간 기업소득세 면제 혜택과 3~5년간 법정세율 50% 인하 등의 혜택이 제공됐다.

    중국 정부는 2019년 ‘중앙 국가기관 IT 제품 구매계획 공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공고에 따르면 중국 부처와 공공기관, 반도체 부품 조달 기업들은 중국산 반도체 제품 및 부품을 일정 비율 구매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조달 계획에 자국산 반도체 제품 구매를 사실상 강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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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 본사
    ▶인재 유치에도 발 벗고 나서

    핵심 기술 인재 연봉 5배 올려줘


    반도체 산업은 올해 3월 중국 양회(兩會)에서 확정된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중국 정부는 ‘14차 5개년 계획’에서 반도체 산업을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적 지원산업으로 정의하고 기술 자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각 정부 부처가 반도체 업계의 제안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 확대 방안을 앞다퉈 발표했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 광둥성 등 13개 지방정부는 향후 5년간 집적회로 산업에 초점을 맞춘 결의안을 내놓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4년 ‘대기금(Big Fund)’으로 불리는 ‘중국 집적회로(IC) 산업투자 펀드’를 조성해 1387억위안(약 24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반도체 기술자립 속도가 나지 않자 2019년 2기 펀드를 조성했다. 2기 펀드 규모는 2000억위안(약 34조원)을 넘어섰다.

    중국 반도체 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대기금’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중국의 패키징·테스트업체인 JCET그룹이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을 인수할 때 대기금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포함해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총 1조위안(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핵심 기술 인력만이 반도체 산업 육성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중국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 학위원회는 지난 3월 직접회로학과를 기존의 전자과학기술학과에서 독립해 별도의 과로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다. 반도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과를 신설해 반도체 인재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외부 인재 유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업체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가 대만 출신 CEO를 붙잡기 위해 연봉을 450% 올리는 등 파격적인 특전을 제공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SMIC가 지난 4월 공개한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SMIC는 지난해 량멍쑹(梁孟松) CEO에게 연봉 153만달러(약 17억원)를 지급했다. 이는 2019년 연봉(34만1000달러)보다 450% 증가한 수치다. SMIC는 또한 량 CEO에게 회사 주식 25만9800주와 2250만위안(약 38억원) 상당의 아파트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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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SMIC가 량 CEO의 연봉을 왜 큰 폭으로 인상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중국이 미국의 제재로 위협받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인재 영입에 집중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량 CEO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에서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일했으며, 2011년 삼성전자로 옮겼다가 2017년 SMIC로 이직했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인력 빼가기가 기업 간 갈등요인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한국을 비롯한 반도체 선진국의 인력들을 빼가면서 기술유출 우려도 제기되는 형국이다.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 보면 중국 반도체 산업 육성의 첨병에 서있는 기업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가 반도체 생산을 맡겨왔던 대만의 TSMC와의 거래가 끊긴 이후 그 대안으로 SMIC에 집중 투자를 해왔다. 이 회사는 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팹리스)로부터 주문을 받아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5G 통신용 칩 같은 다양한 비메모리반도체를 만든다. SMIC는 사실상 중국에서 상품성 있는 비메모리반도체 제품을 양산하는 유일한 업체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미국의 기술 압박에 곤란함을 겪는 중국은 대규모 공적 자금을 직접 투자하고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는 등 전폭적으로 이 회사를 밀어주고 있다.

    이 회사는 아직 글로벌 업계 4위 수준으로 세계 1·2위 파운드리업체인 TSMC나 삼성전자와의 기술력 격차는 크다. 삼성전자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가 이미 7㎚ 제품을 이미 양산 중이지만 SMIC는 첨단 미세 공정으로 구분되는 14㎚ 제품을 겨우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일방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 드라이브 과정에서 악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우한훙신반도체(HSMC)가 대표적인 예다. HSMC는 지난 3월 임직원에게 회사의 재가동 계획이 없다며 회사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17년 시스템반도체 제작을 위해 설립됐다. 총 투자액 목표로 1280억위안(약 22조원)을 제시했고, 중앙정부와 우한시 등으로부터 153억위안을 받아냈다. 대만 TSMC 출신 인사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면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금난에 봉착했다. 채권자들이 토지를 압류하면서 회생하기 어려운 길에 들어섰다. HSMC가 네덜란드 ASML로부터 도입했다고 자랑한 장비도 채권단이 압류했는데 나중에 파악하고 보니 이미 노후화된 기계였다. 이처럼 중국 각지에서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자금을 노린 유령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손일선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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