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매니지먼트 ⑤ 롯데] 제과·호텔·백화점·석유화학·건설 재계5위 도약… 신격호 꿈과 미래, 신동빈 디지털 혁신 경영 비즈니스 모델 ‘리셋’, 성장 모멘텀 회복 관건

    2021년 08월 제 131호

  • ▶강력한 브랜드 스토리

    큰 꿈을 꾸는 사람(Big Dreamer)이 초강력 브랜드를 만든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1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1942년 작가가 되겠다는 뜻만 품은 채 일본으로 건너갔다. 와세다 고등공학교 응용과학과를 어렵사리 다닌 그는 해방 후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1948년 직원 10명으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종합제과기업 ‘롯데제과’를 창립하여 한·일 수교 후 한국 사업 확대에 나섰다. 이후 경제개발계획에 부응하며 제과·호텔·백화점 등 굴지의 유통 전문 기업그룹을 일궈냈으며, 건설·석유화학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롯데는 2000년 이후 마침내 한국 재계 5위 기업에 올랐다.

    2017년 4월 신격호 명예회장은 자신이 1980년대 초반부터 구상했던 123층 짜리 롯데월드타워(국내 최고층, 세계 5위) 준공식을 지켜봤다.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것처럼 “세계 최고 빌딩을 지어서 한국을 인정하게 만들겠다”는 거대한 꿈을 이룬 셈이다.1)

    모든 시작은 기업 브랜드명에서 비롯된다. 롯데라는 초강력 브랜드는 신회장의 괴테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첫 사업인 ‘히카리(光)특수화학연구소’의 화장품 제조를 중지하고, 껌 사업에 본격적으로 전념하면서 식품에 걸맞은 사명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나의 애독서의 주인공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영원한 여성에 감명 받아 회사 이름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기업 브랜드 롯데를 탄생시킨 것이다. 기업 브랜드에서 ‘히카리(光: 신격호 회장의 일본 이름 ‘重光(시게미쓰)’)’는 사라졌지만, 일본 롯데OB 모임은 ‘롯데히카리회’ ‘광윤사(光潤社)’ 등 지금도 ‘히카리(光)’는 남아있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롯데월드타워
    ▶이루지 못한 제철소의 꿈

    포항제철소 건설에 협력했던 일본인 기술자의 회고록에 따르면 신 회장은 1968년 당시 후지제철(현 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永野重雄) 사장을 찾아가 기술협력을 요청했다. 나가노 사장은 “(나는) 엉뚱한 사람의 별난 생각을 각별히 사랑한다”고 하면서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에 진출한 지 이듬해의 일이었다. 이후 롯데는 후지제철의 지원으로 사업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당초 신 회장에게 제철소 건설을 권했던 박정희 정부가 국영기업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현은 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제철소를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중 원래 농수산업 지원 자금으로 책정됐던 자금을 전용해 1973년 포항제철소를 완공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신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 두 번째 기회를 노렸다. 신 회장의 지인인 일본 경제인은 닛케이에 “(한보그룹 부도사태로 시장에 나온) 한보철강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꿈으로 그쳤다. 한보철강은 우여곡절 끝에 2004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됐다.2)

    한·일 경계인으로 양국에서 많은 오해와 차별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루지 못한 제철소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반도호텔을 인수하여 롯데호텔로 문을 열었다. 그 계기로 백화점 등의 복합쇼핑 사업을 통해 롯데를 관광유통 제국으로 만드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공간 크리에이터로서 잠실 롯데월드와 한국 초고층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를 탄생시키면서 이루어졌다.

    ‘거화취실(去華就實)’.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3)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했다.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봐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해볼 것을 제의하며 당시 돈 5만엔을 선뜻 내주었다. 이 돈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하고 전소되고 만다.

    어렵게 재기를 했으나 다시 폭격을 당해 전소되어 버렸다. 그래도 하나미쓰의 신 회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일 년 반 만에 이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 주었다고 한다.4)

    전쟁과 이국에서의 사업이라는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철학이 ‘거화취실’이다. 창업주 신 회장의 집무실에는 ‘거화취실’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도 혼자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 달리 사무실이 아주 소박했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타임머신 경영

    신 회장은 1년의 절반은 한국, 나머지 절반은 일본에서 지내는 ‘셔틀 경영’으로 유명했다.

    신격호 자신은 “한국에 있을 때는 일본의 장단점이, 일본에 있을 때는 한국의 장단점이 명확하게 보여 제3자적 관점으로 미래적 경영이 가능하다”고 타임머신 경영을 설명한 바 있다.

    타임머신 경영은 해외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나 서비스를 발 빠르게 일본에서 전개하여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이익을 얻는 경영기법으로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가 타임머신 경영이라 이름 지은 것에서 유래한다.

    이 같은 면에서 일본의 성공 사례를 한국 경제에 이전시킨 한국 롯데가 원조 타임머신 경영이라 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의 20~30년 시차를 활용한 타임머신 경영으로, 5성급 호텔, 테마파크, 백화점, 편의점 등 일본에서 먼저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 빠르게 거금을 투자하여 한국 사업에 도입 성공시키는 경영 방식면에서 롯데는 타임머신 경영의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왼쪽 둘째)이 롯데백화점 본점 신관 오픈 기념식에서 테이프커팅 준비를 하고 있다.
    ▶공간 혁명

    롯데그룹은 제과사업에 이어서 투자한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 롯데면세점의 대성공으로 한국의 ‘관광’과 ‘유통’ 자원을 보유한 리딩 그룹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 관광과 유통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롯데월드’이며, 서울올림픽 개최 결정에 따른 개발 붐과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 성장과 맞물려 롯데그룹은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게 되었다.

    서울 잠실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려 한 것도 단순히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부지 매입부터 2017년 최종 완공까지 약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특혜 의혹에 시달렸다. 경제적인 면만 추구했다면 차라리 ‘아파트를 짓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신 회장은 줄곧 한국에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대규모 쇼핑몰인 롯데쇼핑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예를 들어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가 들어서기 전에는 올림픽 경기장과 서민아파트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러나 롯데월드가 들어서자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 쇼핑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아울러 서울시민들도 롯데월드를 찾는 수가 증가하였다. 사람들이 유입되어 대형상권이 형성되고 뒤이어 고층 아파트와 업무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잠실은 서울 동부의 부심으로 성장했다. 롯데월드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잠실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5)

    동일한 건축 바닥면적이라면 100층 이상의 슈퍼타워보다 40~50층의 타워를 두 개 짓는 트윈타워가 여러 면에서 효율이 더 뛰어나고 경제적이라고 평가된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뉴롯데 램프 전등식. 2017년 4월 3일 롯데호텔월드에서 진행된 롯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동빈 회장이 새로운 50년을 향한 희망의 불빛을 상징하는 '뉴롯데 램프'를 점등하고 있다.


    슈퍼타워의 경우 엘리베이터 수나 설비를 위한 공간이 늘어나 바닥면적의 효율이 떨어진다. 또 공사비가 비싸다. 100층 이상의 건물은 기초부터 기둥, 보의 프레임까지 상당한 강도가 필요해서 특수 시공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때문에 시공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공사비가 올라간다. 뿐만 아니라 플랜과 디자인에 따라서는 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이 훨씬 더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왜 슈퍼타워(Super Tower) 건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슈퍼(Super)’라고 부르기에 걸맞은 위용과 그 도시에서 최고라는 긍지가 숫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낳는다고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6)

     기사의 6번째 이미지

    롯데알미늄 공장 방문. 2021년 5월, 신동빈 롯데 회장은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 공장을 연이어 방문해 그룹의 미래먹거리가 될 그린소재 및 배터리소재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사진은 롯데알미늄 안산1공장에서 신동빈 회장이 2차전지 소재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조현철 롯데알미늄 대표이사, 한충희 롯데알미늄 소재사업본부장, 신동빈 롯데 회장, 손병삼 롯데알미늄 연구부문장.
    ▶롯데는 일본 회사?

    사업가의 국경은 없어도 기업가의 조국은 있다. 한국인이 일본에 건너가서 시작한 기업으로 이제는 일본 롯데보다 한국 롯데의 비중이 20배 이상 커졌다. 일본 언론들이 평가하는 롯데의 정체성도 재일한국인 교포가 세운 한국 회사에 가깝다.

    교도통신은 1940년대 초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신 명예회장이 롯데를 설립하기까지 과정을 전하면서 “10대에 혼자 (일본으로) 출국해 일본과 한국에서 거대 그룹을 구축한, 재일 한국인 중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전쟁에 짓밟힌 한국을 재건하기 위해 정부와 한 팀이 돼 일한 마지막 사업가 세대 가운데 한 명이었다”며 “이들 세대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별칭의 급속한 산업화를 이끌었다”고 신 회장을 평가했다. 롯데가 201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던 호텔롯데도 한국으로 돈이 들어오는 입구였지 빠져나가는 출구는 아니었다. 호텔롯데는 1973년부터 수십 번의 유상증자를 통해 한국에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일본 주주에게 배당을 시작한 건 2005년부터이다. 일본 롯데 직원들도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의 장남 신동주는 2017년 8월 <나의 아버지 신격호>라는 책을 내려고 했다. 돌연 출판이 중단됐지만 책에는 일본 롯데의 이익을 한국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출판사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담겨있는 내용이다. 신격호는 직원들의 항의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롯데의 모체는 일본에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가의 의무다. 안과 밖을 구별하여 회수를 서두르는 것은, 섬나라 근성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인스러운 발상 아닌가. 지금의 일본의 상태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리도 없고, 장래에는 일본 롯데가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다.” 7)

    일본 롯데는 1988년에 2500억엔가량의 매출 성적을 거두며 업계 톱이 되었다. 한국 롯데그룹은 같은 시기에 2조3억원(당시 환율 기준으로 3700억엔)가량의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2015년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일본 롯데의 매출은 3145억엔가량이고, 한국 롯데 매출은 엔화로 환산하면 6조4798억엔가량이다.8)

    매출로 보면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24배 크고, 고용인원도 26배 많다. 결론적으로 현재 롯데는 일본 회사이면서 한국에서 더 성공적인 한국 회사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롯데면세점 잠실월드타워점
    ▶해외 사업과 디지털 전환

    롯데는 궁극적으로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여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2011년 신동빈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매출의 30%를 해외에서 올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중국,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롯데쇼핑의 해외 사업은 부진하였고 사드 사태를 맞으며 중국에서 철수하는 등 그 성과는 미약했다.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하여 주축사업인 유통과 호텔이 부진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롯데의 전통적인 장점인 대면 서비스가 발휘되기 힘든 환경으로 세상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코로나 환경에서 이루어진 이베이 인수전에서도 네이버·이마트와 연합세력에게 완패했다. 결국 향후 기존 아날로그 사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해야 하고 동시에 고도성장중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장 모멘텀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계속 가지게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통 명가 롯데그룹의 성장 비결은, 1대 회장의 큰 꿈과 미래를 그리는 기획력, 그리고 거화취실을 모토로 삼아, 소리 없이 그러나 멈추지 않고 70여 년을 한결같이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1대부터 2대까지 이어지는 형제들 간의 지속적인 불화와 갈등, 그리고 경직화된 조직문화는 롯데의 향후 성장 잠재력을 제어하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소매업 종말의 시대를 맞이하여 롯데의 리셋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1) <나의 아버지 신격호>(비출판) 출판사 서평 중

    2) “신격호의 이루지 못한 꿈은 일관제철소 건설이었다.”(중앙일보, 2020.01.19)

    3) 롯데면세점 A임원 인터뷰

    4) 롯데면세점 A임원 인터뷰(자료)

    5)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임종원, 청림출판, 2010.07.15) 본문 중

    6) <신격호의 도전과 꿈> (오쿠노 쇼 저, 오현정 번역, 나남출판사, 2020.06.15)

    7) ‘경계인(境界人) 신격호’ (비즈니스워치, 2019.12.24)

    8) [롯데를 만든 남자] ‘신격호 상점’을 유통제국으로 만든 조력자들(시사저널, 2021.2.9)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