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의 마음산책] 사람보다 자동차가 우선? 안전하고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는 없을까…

    2020년 12월 제 123호

  • 먼저 저의 출근길 이야기를 좀 하지요. 저는 요즘 서울에서 벗어나 고향 강원도로 와서 김유정문학촌의 운영을 책임지는 촌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출근하세요?”하고 묻습니다. 문학촌이 시내에 있는 게 아니라 시 외곽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뺀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기 자동차로 출근합니다. 저는 자동차 없이 출근합니다. 예전에는 저도 운전을 했는데, 15년쯤 운전을 하고 나이 쉰 살이 되던 해 이제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걸어 다니는 시간이 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운전할 때보다 눈에 보이는 것도 많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춘천 시내에서 김유정문학촌까지 기차를 타고 다닙니다. 숙소에서 남춘천역까지 5분쯤 걸리고, 남춘천역에서 김유정역까지 5분, 김유정역에서 김유정문학촌까지 5분 걸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따서 지은 역 이름입니다. 김유정역에서 김유정문학촌까지 가다 보면 온통 마을 전체가 김유정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걷는 길 이름은 김유정로이고, 김유정우체국이 있고, 농협 김유정지점이 있습니다. 길옆에 유정닭갈비와 유정국밥집, 또 김유정 작품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을 따 동백꽃 카페, 점순네 닭갈비, 만무방 중화요리 등 사후 80년이 지난 다음 한 작가의 작품 영향력이 실로 이렇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김유정역에서 김유정문학촌으로 가는 큰 도로를 건널 때 아침마다, 또 퇴근할 때마다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무단횡단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건널목을 건너는데도 우선 마음부터 불안해집니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온 자동차들이 아주 씽씽 달립니다. 또 외곽에서 시내 쪽으로 들어가는 자동차도 뭐가 그리 급한지 씽씽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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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어떤 경우도 자동차가 우선입니다. 아마 도로교통법 같은 데는 보행자 우선이라고 나와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법조문의 이야기이지 현실에서 사람에게 양보하는 자동차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 등굣길의 자동차들이 무서워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엄마도 자기가 운전대를 잡으면 그 길에 아이들이 지나다니든 할머니가 지나다니든 아랑곳하지 않고 쌩쌩 달립니다.

    때로는 건널목에 서 있는 사람이 차가 지나갈 때 혹시 건널목의 흰 금을 밟고 도로로 들어설까봐 저만치에서 빠앙, 하고 경적까지 울리며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내가 혹시 잘못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철렁합니다. 시내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마 어느 도시, 어느 고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할 쪽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다치면 그야말로 나만 손해니까요. 도로에서 자동차들의 횡포가 정말 이 정도인지 화가 나기도 해서 얼마 전 어느 문화행사장에서 만난 시장에게 그 얘기를 했습니다. 길은 그 도시의 핏줄이자 신경줄과도 같은데 이게 뭔가 이상하다, 낭만도시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춘천은 뭔가 좀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거리를 불안하게 돌아다녀서야 되겠느냐, 이제 길 문화를 시의 정책 차원에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푸념처럼 이야기했는데, 며칠 후 시장이 휴대폰 문자로 직접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시정에 바쁜 시장이 한 시민의 말에 장문의 답변을 보내온 것이 좀 뜻밖이기도 하고, 또 다른 도시의 시장님들도 다함께 이런 생각을 가진다면 우리나라 전체 도시의 ‘길 문화’가 바뀌지 않을까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래 따옴표 속의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이재수 춘천시장의 문자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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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길은 작게는 이웃에서 넓게는 문명권의 교류 통로가 되어 왔습니다. 길은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자연처럼 사람의 것만도 아니고 동물과 마차와 온갖 것들이 공유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점점 사람도 동물도 마차도 길에서 밀려났습니다. 오로지 자동차만을 위한 용도가 되면서 인도는 생략되거나 도로의 부속물이 되었습니다. 양적 성장을 추구했던 근대 도시 발전 과정에서 인문적, 생태적 관점을 도입한 외국 도시들은 자체적인 반성이 있었습니다. 자동차 위주의 길에 다시 사람 길을 만들고, 자전거와 숲을 위한 공간을 넓혀 왔습니다. 우리나라 도시는 어땠을까요. 새로 도로를 내고 그 길을 계속 넓혀 왔으나 이는 자동차의 편리함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자전거는 형식적인 고려 대상이었습니다. 도시와 함께 커온 가로수는 이런저런 이유로 잘려 나가고, 안전지대는 도면상에만 그려져 있습니다.

    깊은 반성을 합니다. 걷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은 반성, 자전거 이용 여건에 대한 반성,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반성입니다. 앞으로의 길은 어때야 할까요. 자동차만이 독점해온 길을 사람과 자연, 자전거와 문화가 함께하는 공유의 길로 전환해야 합니다. 길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죠. 사람과 자전거, 자동차가 서로 배려하며 오가야 합니다. 길은 숲이고 도시의 숨통이어야 합니다. 걷는 이가 행복하고 걷고 싶은 공간이어야 합니다. 아이의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시민의 인문 감성이 깃들어야 합니다. 길은 도시의 자랑이고 도시의 정체성입니다.우리 시는 이제 시민들에게 길을 되돌려 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합니다. 자동차 길을 줄이는 대신, 사람의 길, 자전거 길을 넓히는, 문화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새 길을 만들려 합니다. 길이 또 다른 쉼터가 되고 명소가 될 것입니다.우선 시범 구간을 정해 양쪽 옆의 인도까지 합쳐 광장 같은 길이 되게 할 것입니다. 좁은 인도를 15~18m로 넓히고 가로수를 더 심어 녹색 터널이 되도록 할 겁니다. 도로 한가운데는 인도를 만들어 도랑과 분수 광장을 설치하고 공예품, 먹거리를 파는 예쁜 판매대 운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개념의 멋진 길을 걸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 자동차를 반납한 사람으로 한 도시의 시장으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을 때 조금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도시에 숲을 만들고,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 저는 이것이 꼭 실천되어 우리나라 모든 도시로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걸었던 콘크리트길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도시 안에서도 안전하고 걷기 좋은 길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길 바랍니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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