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와인 안젤로 가야 바르바레스코

    2020년 04월 제 115호

  • 세계 최고의 와인이 태어나는 과정은 축구나 야구와 같은 스포츠 분야의 스타가 태어나는 과정과 비슷한 점이 많다. 스포츠 분야와 마찬가지로 좋은 와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성장을 도와줄 인프라스트럭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예를 들면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연구는 스포츠의 과학적인 트레이닝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즈나 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이 팬이 많은 클럽에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는 것처럼, 좋은 고객들을 갖춘 배후 시장을 두고 있다면 역시 좋은 와인이 나오기 쉽다. 프랑스의 보르도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모두 좋은 와인을 소비해줄 자국 시장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스포츠 스타와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공통점이다. 스포츠 스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헌신이 필요한 것처럼, 몇 세대를 걸쳐서 쌓아 올린 노력은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 큰 자양분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갖추지 않은 곳에서도 가끔 뛰어난 와인이 나온다. 불모지에서 나온 한 명의 스포츠 스타가 그 지역 전체의 평균을 올리는 것처럼 훌륭한 와인 하나가 자신의 고향을 하루아침에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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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Gaja)는 프랑스 국경에 인접한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역의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마을에 위치한 양조장이다. 피에몬테는 네비올로(Nebbiolo)라는 포도로 만드는 바롤로(Barolo)와 바르바레스코로 유명하다. 이 두 와인은 오늘날 토스카나 지역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함께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지역이 오래전부터 최고의 와인을 생산했던 것은 아니다. 바롤로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지난해 9월호에 소개했던 ‘비온디 산티(Biondi Santi)’가 토스카나 와인에 기여했던 것처럼, 오늘날 피에몬테 와인이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배경에는 현재 가야를 이끌고 있는 ‘안젤로 가야(Angelo Gaja)’의 역할이 컸다.

    와인 애호가들은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과 비교하기 좋아한다. 피노누아 단 하나의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부르고뉴 지역과 같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네비올로 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자영농들에 의해 와인이 생산된다는 점도 바롤로와 부르고뉴 와인의 공통점이다. 기업화된 보르도 메독 지역이나 캘리포니아와 쉽게 비교가 된다. 경험 있는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면, 섬세한 바롤로, 바르바레스코와 부르고뉴 와인 맛의 차이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오늘날 피에몬테 와인의 성공을 이룬 양조가들은 보르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소한 예로 피에몬테의 양조학교도 보르도 생테밀리옹의 국립 양조학교(Lycee Viticole Saint Emil ion)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바롤로 생산자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225ℓ의 프랑스 오크통 역시 보르도 양조 기술의 흔적이다. 부르고뉴에서는 228ℓ의 오크통을 사용한다.

    안젤로 가야는 일찌감치 프랑스의 선진 기술을 피에몬테에 들여온 장본인이다. 안젤로는 1859년 포도원을 설립한 지오반니 가야(Giovanni Gaja)의 증손자로, 남프랑스의 몽펠리에 대학(Montpellier)에서 양조를 공부하였다. 몽펠리에 대학은 세계 최고의 양조학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에 작고한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의 책임자 폴 퐁탈리에(Paul Pontallier)가 몽펠리에 대학의 졸업생이다.

    안젤로 가야는 1961년 21살의 젊은 나이로 가족 회사에 뛰어들었다. 마치 아시아의 국가들이 잘 짜인 경제계획을 통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처럼, 그는 와인의 혁신적인 기술들을 차례차례 도입하였다. 처음에는 송이당 포도의 수를 조절하는 그린 하베스트(Gr een Harvest)를 도입하였으며, 오늘날 최고급 와인에서 볼 수 있는 단일 포도밭 와인(Single Vineyard), 보르도 에밀 페이노(Emile Peynaud) 교수에 의해 전파된 젖산 발효, 1980년대에 혁신적으로 도입된 온도조절 탱크, 숙성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프랑스산 소형 오크통 등의 신기술들을 피에몬테 지역에 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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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안젤로 가야가 슈퍼 투스칸의 와인 메이커들과 달랐던 점은,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할 때 피에몬테의 전통적인 방식과 혼용하여 사용했다는 점이다. 가령 오크통에 와인을 숙성할 때에도 225ℓ의 보르도 오크통과 지역의 전통적인 오크통인 3000ℓ 보테(Botte)에 번갈아가면서 숙성한다. 1978년부터 시작한 이 방법은 최근에는 거꾸로 프랑스 양조장에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이미 1970년대에 현재 슈퍼 투스칸 와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프랑스 포도품종들을 실험하였는데, 그 이유는 피에몬테에도 세계적인 와인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안젤로 가야는 밝힌 적이 있다.

    보르도 포도품종을 블렌딩하여 만드는 와인은 다르마기 (Darmagi)와 시토 모레스코(Sito Moresco)라는 와인으로 모두 1970년대에 식재하여 1980년대 초에 시판하였다. 다르마기는 보르도 포도품종만으로 만든 반면, 시토 모레스코는 보르도 포도품종과 네비올로를 같이 블렌딩해 만든 와인이다. 하지만 가야를 대표하는 와인은 1859년 와이너리 설립부터 같이 한 바르바레스코와 3개의 단일 포도밭 와인들이다. 가야 바르바레스코 1985년산은 미국의 와인잡지 와인스펙테이터에 의해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안젤로 가야가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아버지 지오반니가 쌓은 토대도 중요하였다. 오늘날 가야에서 만드는 와인들은 레이블에 크게 쓰여 있는 ‘GAJA’라는 표시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지오반니 가야가 1937년에 처음 시도한 것으로, 당시 바르바레스코 지역 대부분의 포도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을 만들기보다는 원액 상태로 바롤로의 생산자들에게 판매하였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1961년 안젤로 가야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였을 때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에는 모두 128개 양조장이 있었으나, 그중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을 만들던 곳은 5곳에 불과하였다. 지금은 약 500개의 와인 생산자가 있으며 그 중에 70% 정도가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을 만든다.

    내가 만난 세계적으로 성공한 와인 메이커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본인들 스스로가 와인 애호가로서 전 세계의 다양한 와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시음하고 즐긴다는 점에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안젤로 가야만큼 완벽한 와인메이커는 없을 것이다. 그는 1978년 와인수입사인 가야 디스트리부지오네(Gaja Distribuzione)를 만들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을 이탈리아에 소개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안젤로 가야는 와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이룬 엄친아 같은 존재지만 그는 단 한 번 자존심을 굽힌 일이 있었다. 1989년 미국의 와인 회사인 로버트 몬다비가 조인트 벤처를 제안하였을 때, 이는 “모기가 코끼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남기고 거절한 것은 애호가들 사이의 유명한 일화이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5호 (2020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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