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4) 근대 산업혁명 |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와 산업혁명의 그늘

    2021년 02월 제 125호

  • 18세기 산업혁명은 폭발적인 생산력 증가와 함께 인류를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빈부격차, 노동착취나 실업과 같은 노동문제 등 근본적이면서도 고착화된 사회적 문제를 잉태했다. 노동자들은 간신히 생계를 이어갈 정도의 저임금 속에 하루 12~14시간 이상 고된 일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값이 싸다는 이유로 고용된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노동착취는 더욱 가혹했다. 자본가들은 호화 주택을 짓고 편안한 생활을 누렸지만, 넘쳐나는 노동자들은 가난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빈익빈 부익부는 갈수록 심해졌다.

    찰스 디킨스는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영국 산업혁명 시대 도시 하층계급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은 권선징악의 대중소설이지만 영국 사회의 불평등한 계급구조와 산업화 폐해를 생생하게 반영한 시대비판 정신이 담긴 명작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데이비드 린이나 캐럴 리드 등 여러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고, 여기서 다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올리버 트위스트>(2005)도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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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 소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여정을 담은 <올리버 트위스트>

    영화는 9살 올리버가 감독관과 함께 빈민구제소인 ‘구빈원’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구빈원’에서 태어난 올리버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올리버는 수감복을 입고 많은 또래 아이들과 낡은 밧줄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뱃밥 작업을 하며 지낸다. 어느 날 올리버는 배가 고픈 아이들 사이에서 제비뽑기로 뽑혀 급식 배급인에게 죽을 더 달라는 얘기를 했다가 두들겨 맞고, ‘이 아이를 데려가는 사람에게 5파운드를 지급하겠음’이라는 광고의 주인공이 된다. 험상궂은 인상의 굴뚝 청소부 감필드가 올리버를 데려가려 했지만, 올리버가 눈물로 호소하며 그를 거부하면서 무산된다.

    그리고 장의사 보조로 팔려간다. 올리버는 그곳에서 착실하게 일하지만 먼저 살고 있던 노아가 올리버를 시기하여 그의 어머니를 욕하자 싸움이 벌어진다. 주인이 올리버를 말썽쟁이로 보고 매를 때리자 런던으로 도망친다.

    수십㎞ 떨어진 런던에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으나 올리버는 도저라는 소매치기를 만나고, 장물아비 페이긴의 허름한 소매치기 소굴로 들어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버는 도저와 찰리의 소매치기로 인해 누명을 쓰고 잡히지만 이를 목격한 서점 주인의 증언으로 풀려나고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노신사 브라운로우 집에서 극진한 간호와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올리버는 브라운로우의 심부름으로 밖에 나갔다가 페이긴과 한패인 강도 빌 사이크스와 창녀 낸시에게 잡혀 페이긴의 소매치기 소굴로 다시 끌려간다. 올리버에게 동정을 느낀 낸시는 그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브라운로우에게 알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빌 사이크스는 분개하며 낸시를 때려죽인다. 이후 경찰과 군중들, 브라운로우의 수색으로 발견된 빌 사이크스는 지붕 위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해 죽고 올리버는 무사히 구출된다. 브라운로우의 저택으로 돌아가 다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 올리버는 교수형 집행을 앞둔 페이긴을 찾아가 애석의 눈물을 흘리고 페이긴은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준 올리버에게 자기 사유재산을 모두 유산으로 넘겨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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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생아 올리버를 있는 그대로 선량하게 표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는 원작소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각색이 이루어졌다. 원작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중요한 스토리 축으로 작용하며, 올리버가 브라운로우의 절친인 자신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만, 영화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사라지고 올리버가 선한 마음으로 대해준 장물아비 페이긴으로부터 유산을 넘겨받는 것으로 구성된다.

    소설은 출간 당시 출생의 비밀과 같은 흥미적 요소로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고, 구빈원 출신인 올리버가 소매치기 집단 속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선한 품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모습이 영국인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올리버 캐릭터는 젠틀한 모습을 이상형으로 삼는 부르주아 영국인을 표현한 것으로도 이해된다. 반면 영화에서는 구빈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아, 그 자체로 선량한 올리버를 표현한다. 이러한 각색은 소설보다 개연성을 더욱 높일 뿐 아니라 선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 디킨스의 감성적 휴머니즘에도 잘 부합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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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과 산업화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 <올리버 트위스트>는 흥미 가득한 대중소설일 뿐 아니라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아동 노동력의 착취 문제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사회 비평적인 작품이다.

    영화에서 5파운드를 주고 올리버를 데려가려 했던 굴뚝 청소부는 판사에게 최근 견습 굴뚝 청소부 소년이 질식해 죽은 사건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듯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건의 진상은 소년이 일하다 말고 굴뚝 안에서 조는 걸 깨우려고 매캐한 연기를 내는 짚불을 피웠는데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게으른 아이를 깨우는 방법으로 연기가 최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동 노동 착취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구빈원에 있는 아이들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굶주림을 겪는 모습이 나온다. 올리버는 “Please Sir. I want some more.(죽 좀 더 주세요.)”라고 요구했다가 구빈원 원장한테 얻어맞는 등 수감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이후 도제가 되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해야 했고, 갈 곳 없는 상황에서 페이긴의 소굴로 들어가 소매치기를 배워야만 했다. 범죄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들과 이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값진 물건을 챙기는 장물아비를 통해 빈민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834년 기존의 구빈법을 더 혹독하게 개정한 신구빈법이 제정된 뒤 디킨스는 1838년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내놓았다. 디킨스는 올리버가 구빈원 출신이면서도 선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난과 타락을 동일시했던 구빈원의 공식을 비난했다. 또한 논란의 핵심이던 신구빈법 문제를 과감히 건드려 비판의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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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킨즈가 비판한 신구빈법이 담고 있는 내용

    영국에서 구빈제도는 자립생활이 어려운 곤궁한 사람을 대상으로 교회나 자선단체, 지방교구나 국가가 조직적으로 행했던 구제 사업이다. 그 근간을 이룬 것이 일련의 빈민구제 입법인데, 그중 1601년의 엘리자베스 구빈법(Poor Law)과 <올리버 트위스트>의 배경이 되는 1834년에 개정된 신구빈법이 가장 전형적이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토지를 빼앗긴 빈민, 특히 인클로저 운동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구제하려고 만들어졌다. 이 법은 구빈의 책임을 교회가 아닌 정부(지방교구)가 최초로 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부랑 빈민을 강제로 일하게 하고 저항하면 투옥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조차 길드의 도제생활을 강요당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은 구빈법을 보완한 신구빈법을 제정하는데, 그 취지는 구제를 받은 빈민들이 최하층 수준의 독립노동자보다 낮은 대우를 받게 해 스스로 구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구제 빈민에 대해 ‘노역장’으로의 수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열등처우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자 했다. 또한 공공 구제를 받는 사람은 본래 근면과 절약의 자질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낙인찍었으며 이주의 자유와 선거권마저 박탈했다. 이러한 (신)구빈법은 19세기 말 대중적 빈곤 속에서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에 따라 20세기 들어 공적 부조정책으로 전환된다. 이 법은 1948년 ‘국민부조법’에서 최종적으로 폐지되고 전후 영국 사회보장체계의 일환을 이루는 국민부조로 재편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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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시스템 설계 필요

    오늘날 빈곤은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에 다수가 공감하지만, 해결책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범세계적 차원의 대재앙이 찾아오면서 기존 사회보장제도는 더욱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경제 침체의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 최저한의 생존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시급한 상황이다. 더욱이 한국은 사회안전망의 역사가 짧은 편이다. 취약계층이 최소한의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이를 뒷받침할 사회보장세 등 여러 가지 정책을 고민하고 사회적 총의를 모으는 여론 수렴을 거쳐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새로운 시스템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영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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