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작가는 세상에 없는데 작품은 계속 만들어진다?

    2021년 02월 제 125호

  • 지난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도널드 저드(1928~1994)의 전시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을 모았다. 아마 여행이 가능했다면 필자도 달려갔을 터이다. 저드는 자신의 작품을 기존의 규범과 범주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조각이 아닌 ‘특정한 오브제(Specific Object)’라 불렀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리 ‘특정하다’지만 새로운 작품이 제작되고 있다. 특히 그의 퍼니처 시리즈는 주문하면 언제나 제작해 보내온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 댄 플래빈(1933~1996), 사진가 메이플소프(1946~1989)는 물론,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넘은 로댕(1840 ~1917)의 작품도 나와 팔려나간다. 작가 사후에 작품이 제작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없진 않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작가의 저작권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은 대부분 저작권자나 미술시장의 수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생전에 작가가 어떤 자세와 개념으로 작품을 했느냐에 달려있다. 앞서 말한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손을 쓰지 않고, 일반적인 사물이나 대상을 선택하는 개념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따라서 누가 제작한 것이냐보다 누구의 아이디어냐가 중요해 사후에 제작되었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원래 그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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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 플래빈 <모뉴먼트 V 타틀린> 시리즈 (1966~1969) 형광등 램프와 철제 305×58.4×8.9㎝ TATE 소장


    로댕은 직접 조각하고 있는 것처럼 정과 망치를 들고 대리석 앞에 서 있는 사진이 있지만 실은 돌을 쪼는 일은 석수장이들의 몫이었다. 그는 많은 석고 원형과 청동작품을 위한 거푸집(Mould)을 남겨 사후에도 작품 제작이 가능하도록 해 두었다. 그리고 유언하기를 공공장소나 미술관 그리고 자신의 로댕미술관 운영을 위해서라면 추가로 작품을 주조해도 좋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조각은 지금도 주조되는데 예를 들면 1999년 리움이 소장한 로댕의 ‘지옥문(The Gates of Hell)’은 마지막인 에디션인 13번째 작품이다.

    브랑쿠시의 사후 조각도 인기가 높다. 그는 자신의 조각을 청동으로 주조하기 위한 석고 금형을 남겼다. 그리고 생전 자기 작품을 주조하던 파리의 한 주조 공장을 지정해 사후작품도 이곳에서 주조해 질을 보장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다고 에디션이 원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전 제작한 작품과 비교하면 사후 작품가격은 좀 낮다. 특히 그의 생전 작품은 이미 개인 또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2017년 브랑쿠시의 ‘잠이 든 여신(La muse endormie)’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626억원에, ‘낸시 쿠나드의 초상(La jeune fille sophistiquee)’이 780억원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사후 총 8점이 주조된 ‘남성 토르소(Torse de jeune homme)’는 처음 11억원에 판매되었지만 2017년 약 5배가 오른 49억원에 거래되었다. 많은 후발 미술관들이 소장한 브랑쿠시 작품은 대부분 값이 싼 사후 에디션이다. 이렇게 에디션이 가능한 것은 법률상 조각의 경우 총 에디션을 미국은 11점, 프랑스의 경우 13점까지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한도를 넘는 경우 모든 에디션을 공예품으로 본다. 즉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진도 사후 에디션은 가격이 낮다. 디안 알버스(1823~1871)의 오리지널 프린트는 2800만원에서 10억원에 거래되는데, 사후 조수인 닐(1947~ )이 인화한 사진은 550만원에서 1억1000만원 정도다. 메이플소프도 마찬가지다. 주의할 것은 사진이나 판화의 경우 판본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피카소(1881~1973), 샤갈(1887~1985), 달리(1904~1989), 로트렉(1864~1901), 드가(1834~1917), 사진가 브레송(1908~2004), 앤설 애덤스(1902~1984) 등의 경우 생전 에디션과 사후 에디션의 차이가 크다. 처음 판화를 찍은 다음, 그 판권을 양도해 2쇄, 3쇄를 할 때마다 가격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피카소 판화도 약 3500만원에서 25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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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랑쿠시 <잠이 든 여신> (1913)


    작가가 생전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후 제작되는 작품도 있다. 기성형광등을 소재이자 주제로 작품을 한 댄 플래빈은 1000여 점이 넘는 스케치와 미완성작에 대해 유언이나 지침 없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도 제작되어 보증서와 함께 판매된다. 댄의 아들 스티븐은 약 1000~1700여 점의 미완성작을 무시했다. 그러나 2008년 경기침체로 댄의 미술관 운영이 어려워지며 생각을 바꿨다. 그는 사후 작품 제작하는 것을 출판처럼 1쇄, 2쇄를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사후 작품에 대해 저작권자로서 ‘증명서’를 발급하기로 하고, 뉴욕의 매우 중요한 화랑인 데이비드 즈위너 화랑에서 아버지의 전시를 열었다. 물론 1964년 댄이 작가로 인정받은 그린 갤러리의 개인전을 재현하는 것이었지만, 이를 위해 사라진 작품은 다시 제작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계속 사후 작품을 제작하기로 화랑과 계약했다.

    댄의 작품이 다시 미술시장에 나오면서 댄과 평생 전속화랑으로 함께 일했던 폴라 쿠퍼와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는 깜짝 놀랐다. 두 화랑은 댄의 전속화랑인 동시에 미 국세청의 미술품 기증, 상속 시 가격을 산정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감면해주는 가격심의위원이었기 때문이다. 국세청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사후 댄의 작품이 제작 판매될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들이 사후 제작한 작품 판매 소득은 상속세 부과 대상이 아니었다. 이렇게 사후에 미완성 작품을 완성해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댄의 작품이 보통 조명가게에서 판매하는 규격화된 형광램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형광등의 수명이 다하면 교체하면 된다. 교체용 램프는 즈위너 화랑 웹사이트에서 개당 11~70달러에 판다. 이를 구입해 댄의 작품과 같이 구성하고 전원을 켜면 댄의 작품과 다를 바 없다. 단 보증서가 없는 것이 문제다. 보증서가 작품보다 더 중요한 셈이 된 것이다. 사실 작가 생전에 어떤 지침도 없었으나 미완성작을 사후 완성하게 된 것은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밀라노 남쪽 키에사 로사에는 산타마리아 성당이 있다. 1996년 이 성당을 보수하면서 주임신부는 빛으로 성당의 숭고함을 더하고자 댄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가난한 교회를 위해 프라다와 디아 재단이 제작비를 지원했다. 댄은 일생일대의 작품을 위해 공을 들인 끝에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야 구상을 마쳤다. 그리고 그의 구상에 따라 1년여 작업 끝에 완성되어 최후의 유작이 되었다. 이렇게 그가 없이도 작품은 완성되었고 성당에 들어서면 붉고 푸른빛이 마치 성령의 은총처럼 방문객을 감싸 안는다. 이 일은 사후 작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저드나 댄의 사후 작업이 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니멀리스트로서 작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최소한’의 형태를 추구하는 ‘개념’ 때문이다. 이들은 장식적인 기교나 각색을 배제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가장 사실적이라 믿었다. 작가의 개입을 절제하고자 기성품을 사용하고 단순히 그것을 반복해 공간으로 확장해 나갔다. 6·25 전쟁 당시 공군 사병으로 대구에서 복무했던 두 사람은 단아하고 소박하며 간결하고 검소한 영남지방의 선비정신과 한국의 목가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부분 사후 작은 생전 작보다 30% 정도 싼 것이 보통이지만, 사후 작품을 수집할 경우 보증서와 원작의 제작연도와 사후제작 연도, 제작처 등을 확실히 챙겨야 한다. 컬렉터에게는 작품도 중요하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보증서와 프로비넌스(Provenance), 즉 서류다.

    [정준모]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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