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결정장애자 햄릿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2021년 07월 제 130호

  • 햄릿은 무척 괴롭다. 할 일을 모르진 않는다. 어젯밤 부왕의 유령을 본 후, 진실을 알았고, 할 일도 분명해졌다. “들어다오, 들어다오, 오, 들어다오. 네가 진실로 네 아버지를 사랑한 적이 있다면 아버지가 당한 더럽고 무도한 살인을 복수해 다오.”

    덴마크의 정치적, 윤리적 타락은 확연하다.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숙부 클로디어스는 어머니 거트루드와 결혼해 신방을 꾸렸다. “장례식에서 축송을 하고 결혼식에서 만가를 부르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셈이다. 게다가 한밤중 햄릿이 만난 유령의 전언에 따르면,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한 게 틀림없다. 어긋난 질서를 바로잡아 아버지의 혼을 위로하고, 무너진 윤리를 회복해 덴마크에 정의를 돌려주면 된다. 그렇다면 햄릿의 고뇌는 알아도 해낼 수 없는 능력 문제일까?

    햄릿은 능력이 부족한 지질이가 아니다. 강인한 육체적 힘과 탁월한 이성, 거룩한 정신을 함께 갖춘 만능인이다.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는 햄릿이 “나라의 희망이고 꽃이며, 풍속의 거울이고 예절의 표본”이라고 말한다. 행동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어머니 침실에서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앞뒤 가리지 않고 곧바로 살해할 정도였다. 실력도 있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당대의 검객 레어티스와 자웅을 겨룰 만큼 뛰어났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 유명한 질문이 알려주듯, 햄릿의 행동을 가로막은 것은 결정 장애였다. 햄릿은 모든 역량을 갖추었으나, 선택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결정을 잘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위대함이란 리더의 결단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실패 역시 마찬가지다. <선택 설계자들>에서 올리비에 시보니가 말하듯, 리더가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은 무능하거나 미쳐서가 아니다. 나쁜 예측을 좋은 전망으로 착각하게 하는 수많은 심리적 편향이 있다. 이름도 다양하다. 대다수 사람이 옳다고 믿는 걸 추종하는 집단사고, 남들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과정의 숱한 시도와 실패는 무시하는 생존자 편향, 내 의견과 부합하는 사실에만 주목하는 확증 편향, 아무리 봐도 무리인데 왠지 나만은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 직감 편향 등 목록은 한이 없다. 모든 걸 피하려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선택에는 시기가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시기를 놓치면, 좋은 결정도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햄릿 자신을 포함해 주요 등장인물 대다수가 죽어버리는, <햄릿>의 결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햄릿이 우울과 망상에 사로잡혀 미친 짓을 거듭하는 동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마침내 질서를 회복하고 정의를 되돌리려면 모두 파멸할 수밖에 없어진다. 리더의 결정 장애는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지기 쉽고, 결과는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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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이 결정 장애에서 벗어나 좋은 길을 찾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 사실, 햄릿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의 원형 같은 존재이다.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미루고 갈등하는 이들은 햄릿의 모습에서 자신의 얼굴을 떠올린다. 우울한 햄릿을 명랑한 햄릿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 우리 자신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햄릿의 선택은 여러모로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숙부와 어머니의 결혼은 국가적 정당성이 있었다. 외국의 침략 위협이 임박해 있었기에 국정을 안정시켜야 했고, 국왕 선출 투표권을 가진 귀족 세력은 둘의 결혼으로 이를 달성했다. 도덕적 타락과 국가 안보의 충돌 사이의 가치를 무게 달 수 있어야 정당한 복수가 가능했다.

    둘째, 햄릿은 클로디어스의 감시에 둘러싸여 있다. 클로디어스 집권 이후, 왕국은 감옥으로 변해 있다. 아우가 형을 살해하고 아내가 남편을 배신한 왕가의 타락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아버지가 자식을 의심해 심부름꾼을 보내서 감시하며, 연인이 연인을 시험하고 고자질하며, 친구가 우정을 빌미로 찾아와 친구를 감시하는 지옥으로 변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계에서 홀로 정의를 외치고 실현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셋째, 부왕의 복수 명령도 문제다. “네게 천륜이 있다면 참지 마라. 그러나 어떤 식으로 이 일을 수행하든, 네 마음을 더럽히지 말고, 네 어머니를 해칠 계책을 네 영혼이 꾸미지 않도록 해라.” 패륜을 저지른 숙부를 처단하되 어머니를 해칠 마음조차 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 복수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 행복을 또다시 해치지 않을까, 햄릿은 두렵다. 그는 여러 차례 이를 확인하려 하나, 거트루드의 태도는 모호하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압축이다. 가치가 서로 충돌하고, 모두가 타락해 있으며, 결행이 정말로 행복을 가져올 것인지 불확실하다. 신의 뜻과 인간의 뜻이, 하늘의 별과 마음속의 별이 일치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신 없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인간은 모두 햄릿이 된다. 이 삶이 아닌데, 하고 의문을 품으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인간은 다 햄릿이 된다. 인간의 고뇌는 더 좋은 삶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이 좋은 삶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거기에 다다를지 모를 때 생겨나는 건강함의 증거다. 타락한 이 세계에서 인간은 건강하기에 오히려 병드는 것이다.

    햄릿의 결정 장애에는 근본 원인이 있다. 고귀함에 대한 추구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질문에 덧붙여 햄릿은 묻는다. “어느 것이 더 고귀한 일인가?” 차라리 ‘무엇이 이득인가?’를 물었다면, 답은 쉬웠을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삶의 중심에 두면, 결정은 간단해진다. 문제는 좋은 결정이 단지 경제적 이익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돈에는 아무런 고귀함도 없기에 한 줄 행복도 보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을 바란다면, 돈만 따져서는 안 된다. <돈>에서 에밀 졸라는 돈이 얼마나 인간을 타락시키는지를 고발한다. “투기의 광증 속에는 파괴적 효모, 모든 것을 썩히고 갉아먹으며, 더없이 고귀하고 오만한 족속의 여자조차 인간 넝마, 시궁창의 쓰레기로 만드는 파괴적 효모가 들어 있어요.” 돈은 천박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다. 사랑, 우정, 자비, 목숨 등 인생에서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돈은 다소 부족해도, 때로 없어도 살 수 있으나, 사랑이나 우정이 모자라면 불행하고, 목숨이 모자라면 병들며, 고갈되면 모든 게 끝장난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고귀함이 필요하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에 따르면 우리 뇌는 의사결정을 할 때 돈만이 아니라 사회적 이익, 과거 경험, 도덕적 판단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한다. 뇌의 전전두엽은 선택 결과를 (경제적으로) 계산하고 예측하지만, 선택에 대한 감정 평가는 편도체에서, 문화적·윤리적 판단은 시상하부에서 이루어진다.

    여러 판단이 동시에 다른 경로에서 이루어지므로, 경제적 이득이 항상 상쾌한 즐거움이나, 도덕적 죄책을 면제시켜 주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협력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 괜찮으나, 서로 어긋나 충돌하면 햄릿처럼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귀함과 권력(돈)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길은 극히 드물어졌다. 이것이 우리를 혼란과 불행에 빠뜨리는 근본 원인일지 모른다. <햄릿>에서 셰익스피어는 인간 전체가 결정 장애에 빠지는 사태를 미리 통찰했고, 그러기에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결정 장애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셰익스피어는 우정에 주목한다. 햄릿에게는 친구가 하나 있다. 오필리아마저 아버지 뜻을 못 어기고 햄릿의 언행을 일러바칠 때, 친구이자 신하인 호레이쇼가 햄릿의 영혼을 광기에서 구해 낸다. 그는 햄릿을 끝까지 믿어주고 따랐으며, 해적 손에 붙잡힌 햄릿을 구하기 위해 돈을 내주었다.

    또한 햄릿이 요릭의 해골(죽음)을 손에 들고 인생의 진실을 직시할 때도, 방황을 끝내고 결단을 내릴 때도 늘 햄릿 곁에 있었다. 햄릿의 정의를 세상에 알리고 유언을 전한 사람도 호레이쇼였다. 어떤 사람도 친구 없이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우정이야말로 결정 장애의 치료제다.

    정재승은 결정 장애를 벗어나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올리비에 사보니는 좋은 결정을 하려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조언자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친구가 있으면, 둘 모두 해결된다. 자신을 잘 알면서, 자신을 신뢰하고, 언제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으며, 때맞춰 적절한 위로와 가혹한 비판을 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어떤 결정도 잘할 수 있다. 의심에 빠진 햄릿은 너무 늦게 호레이쇼를 찾았기에, 문제 해결의 길이 비극밖에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면, 친구 얼굴을 바라보고 우정에 호소하라. 우리 햄릿들에게 주는 셰익스피어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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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 등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 <같이 읽고 함께 살다> 등이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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