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시대의 결정체, 미술관·박물관

    2021년 08월 제 131호

  • 박물관과 미술관은 인간의 새로움과 귀함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해석하려는 욕망 때문에 존재한다. 전리품으로 얻은 귀물을 모아놓은 ‘뮤제이온’은 학문의 전당이자 요즘 말로 플렉스하는 공간이었다. 로마와 중세 때는 전리품과 성물이 있는 교회와 자신의 보물을 보관하고 보며 세계의 부를 해석하고 과시했던 ‘경이의 방’이 박물관이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에는 이국적 풍물로 ‘경이의 방’을 꽉 채워 이탈리아에 250개 이상의 사적인 자연사 컬렉션이 있었다고 한다. 르네상스미술품을 모은 메디치가 컬렉션은 우피치미술관(1581)이 되어, 1765년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는 유물과 미술품은 모두 시민의 것이란 방증이다. 요즘 같은 근대적 박물관은 옥스퍼드 대학이 기증받아 개관한 ‘애슈몰린미술관 및 고고학박물관(1683)’이 처음이다.

    18세기는 계몽과 과학, 혁명의 시기, 발굴과 발견의 시대였다. 제국주의는 식민지 발굴과 약탈을 의미한다. 영국박물관(1753)은 한스 슬론이 이집트 유물 160점을 기증해 비약적 발전을 한다. 루브르도 나폴레옹의 약탈로 더욱 풍성해졌다. 폼페이 유적 발견과 빙켈만의 발굴은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1777)이, 그리스의 발굴은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1829)과 이라클리오 고고학박물관(1883)이 되었다. 페르가몬 유적발굴은 독일의 국책사업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강대국임을 과시할 웅장한 문화시설이 필요한 나머지 페르가몬박물관(1930)을 열었다. 스페인은 1867년 식민지의 민속·고고학 자료보존을 위해 국립고고학박물관을 세웠다. 영국은 영국박물관이 팽창하자 자연사박물관(1881)으로 독립시켰다. 자연사박물관 붐은 식민지인 인도네시아(1778), 인도(1814), 아르헨티나(1823), 콜롬비아(1824), 칠레(1830), 우루과이(1837)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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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장식미술관 정문
    ▶18세기 박물관·미술관 시대

    박물관과 미술관의 구분은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 미술관은 계속 개관했다. 루브르는 고고학에서 출발했지만, 전시장 비율로는 미술관이다. 계속 자연, 고고, 인류학과 근대미술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루브르, 에르미타주(1764), 네덜란드 국립미술관(1798)은 국력과 왕권 과시용이었다. 19세기 프라도(1819)에 이어 10년 공사 끝에 개관한 뮌헨의 구회화관(1836)의 계획된 채광과 보존·관리시스템은 후일 에르미타주와 로마, 브뤼셀미술관 건축에 표본이 되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1831), 영국 국립미술관(1838)이 개관했지만 몸집이 늘자 1897년 영국 미술만 떼내 ‘테이트 브리튼’을 만들고, 다시 ‘테이트 모던’이 독립(1994)했다. 당시 미술관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 근대기, 독일은 각각의 박물관을 한곳에 모아 단지화했다. 이는 후일 박물관 연합체인 미국 스미스소니언과 뉴욕, 프랑크푸르트 등의 박물관 거리로 이어졌다.

    과학과 도시가 발달하자 박물관은 지식과 오락을 제공하도록 변했고, 과학과 산업박물관도 나타난다.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미술박물관(1852)과 산업기술제품박물관인 파리 기술 재료박물관(1794)이 그것이다. 취리히 디자인박물관(1875), 프랑크푸르트 수공예미술관(1877), 덴마크 디자인미술관(1894), 겐트의 디자인미술관(1903), 핀란드 공예박물관(1908)은 산업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였다. 1905년 파리 장식미술관도 루브르에서 독립했다. 산업의 발달은 과학과 기술의 성과였다. 따라서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은 과학 분야를 떼어내 과학박물관(1857)을, 뮌헨의 독일과학기술박물관(1903)을 열었다. 5년마다 열리는 만국박람회는 비엔나의 산업통상기술박물관, 파리 디스커버리 궁전(1937) 등의 많은 과학문화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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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장식미술관 전시 장면
    ▶신대륙의 박물관과 미술관

    국력의 상징이자 국격의 척도인 박물관·미술관 건립에 미국도 빠질 수 없었다. 19세기 미국에는 순수미술(Fine Art) 또는 미술(Art)이 붙은 종합미술관이 등장한다. 메트로폴리탄(1870)은 지역적으로 고대 근동,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미를, 장르로는 아시아, 이집트 미술, 유럽 회화, 조각과 장식미술, 미국과 그리스·로마 미술, 이슬람 미술 또 무기와 갑옷, 드로잉과 판화, 중세, 현대미술과 악기, 사진, 영화를 포함하는 ‘종합선물세트’처럼 출범했다. 보스턴(1876), 필라델피아(1876), 시카고 미술관(1879)도 메트로폴리탄과 다를 바 없지만, 명칭에 ‘ART’를 넣어 미술관과 박물관의 구분을 어렵게 했다.

    미국은 공공이 부지와 건물을 제공하고, 민간이 작품수집과 운영을 맡는 전통에 따라 지역부호들은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기부금을 내 운영한다. 이때 기부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 ‘잡동사니’가 모인 종합미술관의 원인이다. 당시 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고대 그리스 사원같이 언덕 위에 신전처럼 지어졌고, 대형 대리석 파사드와 중앙 원형 홀이 공통적이다. 개인이 자신의 집을 미술관으로 개방한 가드너 미술관(1903), 반즈컬렉션(1922), 프릭컬렉션(1935) 같은 ‘하우스뮤지엄’도 나왔다. 이들은 회화와 18세기 프랑스풍 가구, 리모주 도자기, 동양 융단을 함께 전시하는 작은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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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팔레 드 도쿄 전시실 내부
    ▶20세기의 박물관과 미술관

    20세기 들어 응용, 장식미술이 분리되고, 특정 시대와 장르에 집중하는 전문박물관이 등장해 미술관은 지역과 시대로 세분화한다. 20세기의 미술관은 주로 ‘세기적 전환기’인 19세기의 미술을 다루는 공간으로 ‘미술품의 무덤’이 아닌 교양과 사교를 위한 개방된 교육공간이었다. 각각의 미술관은 ‘근대기’가 나라마다 달라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자국의 입장에 따라 ‘근대미술관’을 세워 세계적으로 70여 개에 이른다. 네덜란드 크롤러 뮐러미술관(1938), 프랑스 최초의 사립미술관 매그 파운데이션(1964),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1976),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1992) 등도 근대란 말은 없지만 근대미술관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들도 근대사를 중성적인 문화적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근대미술관 설립을 서둘렀다. 20세기 미술에 활력소가 된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는 1946년 런던에 문을 열었다. 작가와 미술사, 비평가들과 현대미술의 담론생산을 전담했던 이 기관은 미국에서는 1936년 보스턴 현대미술관 부설로 세워졌다. 샌디에이고 아트 인스티튜드(1941) 등 여전히 새로운 기관이 개관하고 있다.

    ‘근대’의 범위를 넓게 해석한 뉴욕근대미술관(MoMA, 1929)은 과감하게 20세기 미술, 건축, 디자인, 영화를 포함한 동시대 미술에 집중해 90여 년이 지난 지금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신진작가들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해 MoMA가 대표적인 20세기 미술을 수장했기 때문이다. 후일 퐁피두에 입주하는 파리 국립근대미술관(1947)과 스톡홀름 근대미술관(1958)도 이런 역할을 했다.

    물질보다 시대를 택한 미술관이 성공하자 프랑스는 1848~1914년의 회화를 다루는 오르세미술관(1986)을 중심으로 그 이전은 루브르가, 그 이후인 1905~1960년 미술은 현대미술관이 관장하도록 했다. 통일이 늦었던 이탈리아나 근대(Modern)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안 끝난 독일은 20세기, 21세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참고로 독일의 K20은 19세기 후반~1970년대, K21은 1980년대 이후의 미술을, 미국은 현대미술을 1945년 이후, 동시대 미술은 1970년 이후로 다룬다.

    동시대를 다루는 미술관은 샌디에이고(1941), 몬트리올(1964), 시카고(1967), LA 동시대미술관(1979)이 있다. 명칭에 ‘동시대’를 사용한 미술관도 약 80여 곳에 이른다. 뉴욕의 신미술관(1977)은 제도로서 미술관 시스템을 실험한다. MoMA도 동시대 미술과 소통을 위해 PS1 MoMA(1999)를 운용하며, 파리 팔레 드 도쿄(2002)는 ‘동시대 살아있는 창조적 공간’이다. 미국과 유럽이 동시대에 집중하는 것은 이미 역사, 고고학박물관과 각각의 시대를 다루는 미술관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독립한 신생국가나 제3세계 국가들은 현대미술을 근대미술관이 함께 다루고 있다. 이런 미술관은 지구상에 15개 정도 되는데, 한국도 여기에 속한다. ‘지금’을 부정하고 그 ‘부정’이 ‘새로움’을 낳는 동시대 미술처럼 미술관의 역사도 자기부정의 역사이다. 만약 부정할(?) 근대가 없다면 현대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정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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