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요리하는 인간 행복과 탐욕 사이

    2021년 08월 제 131호

  • ‘먹방’과 ‘쿡방’의 시대다. 텔레비전마다 요리를 겨루고, 맛집을 소개하며, 먹는 장면을 찍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유튜브마다 요리 콘텐츠가 범람하고, 맛집 순례도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쩍 심해졌다. ‘물리적 거리두기’ 탓에 재택근무가 흔해지고 대면 모임이 줄면서, 방송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오래전 <르몽드>는 먹방을 즐기는 한국인의 마음을 ‘외로움과 결핍의 표출’이라고 하면서 “타인의 식탐을 들여다보는 일이 인간의 진정한 기쁨을 채울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인간의 밑바닥 욕구는 ‘먹다, 자다, 섹스하다’라는 세 가지 동사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음식, 충분한 잠, 다정한 연인은 행복의 기틀이다. 셋 중 하나만 없어도 인간은 구멍 뚫린 기분을 채울 수 없다. 불행한 마음을 자세히 살피면, 결국 여기로 귀착된다. 음식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처소 없이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며, 연인 없이는 유전자 전달이라는 생명의 기본 명령을 처리하지 못한다. 이로부터 생겨나는 원초적 불만을 이길 만큼, 대단한 사람은 많지 않다.

    비혼을 선언한 청년이 늘면서 행복한 사람도 있다. 본인이 우선이고, 다음은 청년들 조카다. 출판계에서는 팝업북, 토이북 등 유아용 고가 서적이 어느 순간 잘 팔리기 시작했다. 부모가 사주는 경우도 많지만, 삼촌과 이모도 적지 않다. ‘유전자 공유체’인 조카를 위해서 이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이들의 조카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행복을 누리려면 ‘독립과 자유’만 필요한 건 아니다. ‘유전적 욕구’도 충족돼야 한다. 먹는 일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는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심 요소 중 하나다. 문학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탐구해 왔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식당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레스토랑(Restaurant)은 이를 잘 드러낸다. 레스토랑은 레스토레(Restaurer)에서 나온 말인데, 레스토레는 ‘되돌리다’라는 의미다. 레스토랑은 지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진한 고깃국물을 뜻했다.

    1765년경 파리에서 불랑제라는 요리사가 식당 간판에 레스토랑이란 이름을 처음 써 붙였다. ‘불랑제가 맛있는 레스토랑을 파는 곳.’ 이때의 레스토랑은 잘 우린 고깃국물, 즉 부용(Bouillon)을 말했다. 식당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 일은 원기를 회복하고 생명을 돌려받는 일이었다.

    음식만 파는 식당이 넘치는 거리는 근대의 산물이다. <돈키호테>를 보면 알듯이, 중세 때만 해도 숙박하는 곳에서 주로 음식을 제공했다. 서양에서 식당이 번성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다. 귀족의 몰락에 따라 직장을 잃은 요리사들이 생계를 위해 식당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혁명 몇 해 전인 1782년, 프로방스 백작의 전속 요리사였던 보빌리에가 현대적인 의미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다양한 요리를 묶어서 차례로 서비스하는 최상급 궁정 요리 전문점은 처음이었다. “우아한 실내, 단정한 종업원들, 관리가 잘된 포도주 저장고, 수준 높은 요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주로 귀족층이 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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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이후, 해고된 귀족 요리사들이 근처에 우후죽순 레스토랑을 열면서 ‘맛집 거리’가 조성되고, ‘미식의 시대’가 열렸다. 무엇을 먹어도 한 끼이나, 아무것이나 먹지 않는 문화가 왕실과 귀족을 넘어 부르주아 계층으로, 시민 전체로 퍼지는 순간이었다. 요리사마다 독특한 요리를 선보였고, 이를 모두 맛보려면 ‘기둥뿌리’가 필요했다. 역사학자 벤 윌슨은 말했다. “도시의 심장부에 닿으려면 도시의 위장을 지나가야 한다.” 도시 문화의 정수는 ‘맛집 순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문화유산이나 미술관이 아니라 식당이다. 아무리 훌륭한 것을 보았다 해도, 굶거나 음식이 형편없으면 다 소용없다. 반대로, 맛있는 음식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낯선 여행자에게 파리는 최고의 도시였다.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 혁명을 유럽에 수출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치러야 했다. 돈을 내준 것은 복고 왕정이지만, 영국, 독일, 튀르크, 러시아 등에서 몰려든 야만인들을 매혹해 돈을 돌려받은 것은 ‘레스토랑들’이었다. 천상의 음식과 우아한 분위기에 빠져든 이 엄청난 대식가들은 미식을 즐기려고 받은 돈을 모두 토해냈을 뿐 아니라 보태기도 했다. 브리야사바랭은 비꼬았다. “전쟁 중 맛 들인 달콤한 습관 덕분에 외국인이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다. 그들은 파리에 와야 하고, 파리에 있을 때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미식을 잊지 못해서 자기 집 ‘기둥뿌리’까지 뽑아 들고 온 셈이다.

    그러나 미식 문화가 모두에게 번지자 허영이 일어섰다. 주지육림은 언제나 개인을 파산시키고 문명을 파멸로 이끈다. 무엇을 먹느냐가 행복을 나타내는 표지가 되자, 정성 깃든 맛있는 음식보다 ‘근사한 식사’라는 분위기를 소비하는 속물이 출현했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에마가 갈망하는 결혼식 잔칫상이 이를 보여 준다. “채끝 네 덩어리, 닭고기 프리카세 여섯 개, 송아지 고기 스튜, 양의 넓적다리 고기 세 덩어리, 한가운데에는 참소리쟁이를 넣은 순대 네 개를 곁들인 예쁜 새끼돼지 통구이가 놓였다. (중략) 노란 크림을 담은 큰 접시들은 탁자가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출렁거렸는데, 고른 표면에는 작은 사탕과자로 된 아라베스크 필체로 신랑 신부 이름의 머리글자가 씌어 있었다. 과일 파이와 누가는 이브토에 있는 과자 기술자를 불러와서 만들었다.”

    파리에서 온 셰프와 파티시에가 만든 음식이 헛간을 가득 메웠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허세를 연출하려고 기둥 하나를 뽑아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음식을 마련했다. 허세로 시작한 에마는 결혼 생활 내내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가까이가 아니라 먼 곳의 행복만 좇았고, 허영에 몸부림치다가 정신 차릴 무렵에는 모든 게 끝이었다. <목로주점>의 제르비즈 역시 식탐으로 파멸을 맞이했다. 빈민의 딸인 그녀는 무일푼으로 파리로 이주해 고된 노력 끝에 파리 변두리의 세탁소 주인이 된다. 그러나 방심한 그녀는 자수성가를 기념해서 ‘살 오른 거위’를 맛본다. “금빛으로 노릇하게 익어 육즙이 줄줄 흐르는 거대한 거위가 식탁에 자리 잡자 아무도 손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마다 눈을 깜박거리거나 턱을 앞으로 내밀면서 거위를 가리켰다. 굉장하군! 탄탄한 허벅지며 통통하게 살찐 배 좀 보라고!”

    비극의 시작이었다.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기만 바랐던 소박한 그녀는 거위를 맛본 후 다시는 허리끈을 동여매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바람둥이 애인과 함께 나날의 쾌락을 즐기다 재산을 모두 잃고 잔혹한 파멸을 맞는다.

    최고의 요리를 행복의 지표로 삼는 순간, 음식은 물신이 된다. 이름난 음식을 찾아서 맛집을 순례하는 마음은 사람을 충족 없는 탐욕의 노예로 만든다. 맛있는 음식은 ‘맛집 음식’과 상관없다. 바르베리의 장편소설 <맛>은 이를 일깨워 준다. 주인공 ‘나’는 세계적인 요리 평론가로, 신의 혀로 수많은 음식점을 흥망에 빠뜨렸다. 시한부 인생이 된 ‘나’는 “죽기 전에 마음에 떠도는 하나의 맛”을 찾아 달라면서 아들에게 부탁한다. 아들은 아버지 일생을 따라 맛을 찾아 나서지만, “삶의 궁극적 진리”를 보여 주는 그 음식은 결국 “슈퍼마켓에서 파는 평범한 슈케트”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진정한 맛은 이름난 요리와 아무 관련도 없다. 가족·연인·친구·동료와 함께 먹는 나날의 집밥에 궁극의 맛이 있다. 슈퍼마켓 슈케트라 할지라도, 정과 추억이 담긴 맛은 최고의 맛집 요리를 능가한다. 조악한 걸 먹을 이유는 없지만, 특별한 것을 먹으려고 헤맬 까닭도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음식은 더 건강하고 더 맛있게 요리한 집밥과, 일터 주변의 흔한 밥집에서 먹는 괜찮고 푸짐한 식사다. 우리 불행은 나날의 음식과 함께 훈훈한 정을 쌓지 못해서이지, 별점 다섯 개짜리 음식을 못 먹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맛을 찾는 이는 자신의 불행을 드러낼 뿐이다.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가 말했듯, “인간은 평소 자신이 마시고 먹는 것에 따라 꿈꾸고 행동하는 법”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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