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싸구려 콩물 부자들의 여름 별미 깻국을 제치다

    2021년 08월 제 131호

  • 여름 별미 콩국수는 장점이 한둘이 아니다. 일단 땀을 식히는 데 콩국수만한 음식도 드물다. 여느 보양식 못지않게 영양은 만점인데 가격도 비싸지 않다. 밤잠 설친 탓에 거울만 보면 짜증이 날 때도 콩국수가 제격이다. 옛날부터 콩이 피부미용에 좋다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냉면과 쌍벽을 이루는 여름 전통 별식인 만큼 습기 가득 찬 불가마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한국의 찜통더위를 달래는 데 이만한 음식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 조상님들은 먼 옛날부터 냉면이나 콩국수 한 그릇으로 찌는 여름을 이겨냈을 것 같지만 꼭 그랬던 것만도 아니다.

    냉면은 17세기 초부터 보이니까 먹은 역사가 최소 400년이 넘지만 콩국수는 또 다르다. 흔하디흔한 콩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콩국수가 문헌에 보이는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다. <시의전서>라는 요리책에 처음 나오니 기껏해야 역사가 120년 남짓이다. 문헌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 특별한 재료가 필요 없는 콩국수이니 옛날부터 얼마든지 먹었을 것 같지만 생각과는 달리 조상님이 콩국수를 먹기 시작한 역사는 실제로도 그렇게 짧았을 수 있다.

    콩국수가 사실은 잘 사는 집의 여름 별식과 가난한 집의 여름 음식이 조화를 이루면서 생겨난 음식이기 때문이다. 콩국수를 극과 극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묘한 음식으로 보는 근거는 <시의전서>에서 찾을 수 있다. 적혀 있는 레시피에 콩국수는 불린 콩을 살짝 데치고 갈아 소금 간을 한 후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고 나온다.

    지금의 콩국수와 다를 바가 없지만 주목할 부분은 깻국처럼 고명을 얹는다는 부분이다. 국수를 마는 국물로 깻국 대신에 콩국을 사용한 음식임을 시사한다. 들깨나 참깨를 갈아 만드는 깻국물이 너무 비쌌기에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콩국물로 대신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옛날 기준으로 보면 밀국수는 콩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재료다.

    조선 말기만 해도 밀을 많이 심지 않았기에 밀가루 음식은 여름철 양반집에서나 주로 먹는 별식이었다. 반면 콩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양식이 떨어졌을 때 밥 대신 허기를 메우려고 마셨던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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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국수는 이런 부조화의 조화로 생겨난 음식이었는데, 그 발달과정을 <세시풍속사전>에서 엿볼 수 있다. 조선 말, 삼각산의 진관사 스님들도 여름이면 계곡에서 콩과 들깨를 갈아 만든 국수를 별식으로 먹었다는데 바로 깻국, 한자로 임자수탕이다. 콩과 들깨로 국물을 만드는 임자수탕은 콩이 많아 콩국물이 중심이면 콩국수가 되고 들깨를 많이 넣고 끓여 식히면 깻국인 임자수탕이 되니 콩국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화됐다. 원래 조선 양반의 여름 별미는 콩국수가 아닌 임자수탕이었다. 19세기 중반 <동국세시기>에도 여름 계절음식으로 밀국수에 오이와 닭고기를 넣어 백마자탕(白麻子湯)에 말아 먹는다고 했다. 백마자탕은 참깨를 갈아 만든 깻국, 들깨를 갈아 만든 깻국은 임자수탕(荏子水湯)이다.

    참깨가 됐건 들깨가 됐건 깻국은 보통 음식이 아니다. 지금은 중국산 깨로 인해 참기름 들기름이 흔해졌지만 옛날 할머니들은 병에 흐르는 한 방울의 참기름조차 아까워 손가락으로 닦아 핥아먹었을 정도로 참깨가 귀했다. 들깨로 짜는 들기름 역시 참깨만큼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아꼈던 기름이었다. 밀국수 역시 조선시대에는 밀가루를 진짜 가루라는 뜻에서 진가루라고 불렀을 정도다. 그러니 밀국수는 양반들도 잔칫날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었기에 잔치국수라는 말이 생겼다. 들깨 혹은 참깨를 갈아 만든 국물에 밀국수를 말아 먹는 깻국이 양반의 호사스런 여름 별미였던 이유다. 반면 콩국은 철저한 서민음식이다. 콩국물은 먼 옛날부터 조상들이 자주 마시던 음료였지만 지금 두유처럼 건강 음료로 마셨던 것이 아니다. 콩을 갈아 국물을 만들어 놓고 배고플 때 부족한 양식 대신 수시로 콩국을 마시며 끼니를 대신했다.

    18세기 초,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모두 귀한 사람들에게나 돌아가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먹고 목숨을 잇는 것은 오직 콩뿐이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춘궁기에 곡식이 떨어져 대신 콩국을 마시며 지낸다는 기록을 남겼고 한말 의병장 최익현 역시 햇곡식이 나오려면 까마득하게 남았는데 부엌의 콩국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걱정 된다며 고향집 살림을 걱정하는 편지를 썼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콩국물을 먹었을까? 지금은 콩값이 쌀값의 약 2배 정도로 비싸지만 예전에는 콩이 정말 흔했기에 감옥에서도 콩밥을 제공했다. 이런 콩을 갈아서 만든 콩국이었던 만큼 콩국수는 소수 상류층의 사치스런 여름 별미 임자수탕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원가절감을 통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콩국수가 문헌에 뒤늦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콩국수가 됐건 깻국이 됐건 조상님들은 왜 여름 별미로 특별히 콩국수, 임자수탕을 드셨을까? 단순히 시원하기 때문에 혹은 맛있고 영양이 넘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 전통 시절음식이 그렇듯 깻국과 콩국수가 여름 별미 음식이 된 데에도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이유가 있다.

    먼저 콩국수의 원조 모델인 깻국의 주재료가 되는 들깨는 <본초강목>에 몸의 열을 내려주고 냉기를 치유하며 소화를 돕는다고 나온다. 입맛 떨어지고 더위에 지쳐 탈이 나기 쉬운 여름에 안성맞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들깨탕은 옛날부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여름철 별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11세기 송나라 인종 때 궁중 어의들을 모아 여름 음료 개발 경연대회를 열었다. 이때 일등을 차지한 것이 들깨죽으로 이후 송나라에서는 여름철이면 신하들에게 들깨죽을 하사했다고 한다.

    들깨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옛날 사람들은 일종의 환상마저 품었으니 6세기 중국 양나라 때 도학자이며 의사였던 도홍경이 정리했다는 <신농본초경>에는 들깨를 장기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늙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피부가 아기처럼 고와진다고 나온다. 쉽게 말해 들깨를 장복하면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맑아진다는 말에 착안해서인지 옛날 어머니들은 딸이 시집 갈 때가 되면 들깨죽을 먹였다. 들깨가 피부를 윤택하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지금으로 치면 시집가기 전 신부화장을 위해 집중적으로 피부 관리에 들어갔던 셈이다. 실제로 들깨에는 리놀린산과 비타민 E와 F가 많아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한다.

    콩국물이 깻국을 대신하게 된 것 역시 단순히 콩국이 값이 싸고 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콩을 갈아 국물을 냈을 때 맛이나 색깔이 비슷했을 뿐만 아니라 들깨 못지않게 콩 역시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헛되게 들리지 않을 만큼 좋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했을 만큼 영양이 풍부한 식품이다. <신농본초경>에서는 들깨를 장기간 먹으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했지만 콩은 반대로 사람의 몸을 무겁게 만든다고 했다. 중국 삼국시대의 죽림칠현 중 한 명인 혜강이 <양생론>에서 한 말이다. 콩을 늘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이니 그만큼 영양가가 높다는 말이고 들깨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은 조금만 먹어도 충분한 영양섭취가 된다는 의미다.

    사실 옛날 동양 의학서를 보면 하나 같이 콩의 특별한 효능을 강조해 놓았는데 <본초강목>도 그중 하나다. 콩을 먹으면 얼굴에 혈색이 돌고 장기간 복용하면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고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예전 할머니들도 검정콩을 장기간 먹으면 하얗게 센 머리가 다시 까매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콩 먹으면 피부가 고와지고 머리가 까매져 청춘을 되찾는 것 같다는 말이 지금은 흰소리처럼 들리지만 옛날에는 틀린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옛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고려했을 때 콩과 같은 고단백 식품을 꾸준히 먹으면 피부가 윤택해질 정도로 영양가가 높았기 때문에 나온 처방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듯 값비싼 들깨만큼은 아니어도 가성비로 따지면 효과는 훨씬 높은 콩국물이었기에 근대 들어 부자들의 여름 별미 깻국을 대체해 콩국수가 발달했을 것이다. 여름이면 더위를 식힌다며 타성에 젖어 먹던 콩국수인데 역사를 알았으니 올여름에는 피부미용에 기력회복의 효과까지 기대해 보는 것도 좋겠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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