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2020년 01월 제 112호

  • 도쿄에서 북쪽으로 3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니가타현. 니가타란 지역명은 생소할 수 있지만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니가타현은 일본에서도 쌀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쌀을 주원료로 하는 술 ‘사케’의 유명 브랜드인 고시노간빠이(越乃寒梅), 핫카이산(八海山)의 주조장이 니가타현에 위치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된 에치고유자와도 니가타현에 위치해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처럼 눈이 많아 이곳을 찾아 스키를 즐기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의 굴곡에서도 니가타현이 등장한다. 1950년대부터 약 9만 명의 재일동포를 북한으로 보낸 재일동포 북송사업에서 북송선이 출발한 곳이 니가타항이다. 납북 피해 일본인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 씨가 13살 나이에 납치된 곳도 니가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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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타현은 최근 전혀 다른 이유로 일본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니가타현에서 지난 27년간 추진해왔던 육아 관련 사업 폐지 여부 때문이다.

    사업의 핵심은 보육시설의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지방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일본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만 1세 유아 보육시설의 경우 아동 6명당 1명의 보육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니가타현에서는 이 기준을 유아 3명당 보육교사 1명으로 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규정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인건비 부담을 니가타현에서 지원해왔다.

    일본 내에서도 우수한 보육제도로 언급되던 사례였지만 니가타현에서 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

    니가타현에서 해당 제도를 시작한 것은 인구 감소를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인구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으니 질 좋은 보육을 보장해 출산을 늘리고 인구 감소에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한국에서도 많은 지자체들이 인구감소에 대응하자며 출산·보육 관련 지원을 늘리는 것과 동일하다. 니가타현의 인구는 지난 1995년 248만 명까지 증가했으나 이후 속절없이 감소해 2019년 222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10년 전엔 연간 1만 명 수준이던 인구감소폭도 최근에는 매년 2만 명에 근접하는 등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보육에 대한 지원에서는 일본의 다른 지자체에 비해 좋지만 결과적으로 인구 증가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셈이다.

    지방 재정이라도 풍부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니가타현의 재정 역시 날로 악화되고 있다.

    2018년까지 5년간 니가타현의 수입과 지출만 보더라도 세출은 6300억엔(약 6조9200억원)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지만 세수가 줄고 있다. 지난 2015년 6400억엔 수준이던 세수는 2018년 6100억엔 수준까지 줄었다. 결국 지난 2016년부터는 적자가 시작됐다. 규모도 매년 늘어 2018년 연간 적자만 100억엔을 넘어섰다. 당장은 과거 지방재정이 흑자이던 시절에 쌓아놓은 유보금을 헐어서 적자를 메우고 있다. 2018년에만 유보금 중 36억엔이 줄어들었다. 니가타현에서는 2019년 유보금 감소폭이 더 커져 134억엔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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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회계연도(3월) 결산 후 기금은 317억엔이 남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 추세라면 2021 회계연도엔 바닥날 것이란 게 니가타현의 예상이다.

    지방채 발행도 녹록지 않다. 니가타현에서는 지난 2000년대 초반 대규모 재해 복구 등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했다. 당시 20년 만기로 발행했으나 상환 역시 녹록지 않아지면서 수년 전엔 만기를 10년 늘리기도 했다. 니가타현은 지자체의 채무 부담 중 지자체가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 비율에서도 일본 47개 광역지자체 중 2위(2018년 말 기준)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방채 발행 규모도 날로 줄고 있다.

    다급해진 니가타현에선 2019년 들어 전문가 회의체 등을 꾸려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6월 취임한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가 ‘성역 없는 개혁’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니가타현의 세수가 줄고 있는 이유의 근저엔 인구감소가 깔려있다. 농업 등을 기반으로 하다보니 대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인구가 줄면서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지자 지역 내 공장들이 하나둘 줄었다. 이는 법인세 감소를 불러왔다. 기업이 떠나면서 소득 역시 감소했고 이는 소득세 감소라는 이중고로 돌아왔다.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 역시 인구가 줄면서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 2015~2017년 기간만 보더라도 니가타현 인구감소폭은 일본 광역지자체 중에서도 3위에 올랐다.

    현 상황에서야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느냐’며 모두가 개탄하고 있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들 위기에 눈을 감았다. 재정을 전망하면서 현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연 3%로 상정해왔다. 일본 경제가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성장률이 2%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니가타현의 재정 전망이 얼마나 느슨하게 이뤄진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니가타현에서 찾고 있는 해결책이란 것이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니가타현의 사례가 일본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이를 특정 지자체의 문제로만 보기 힘들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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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으로 니가타현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로도 인구가 줄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로 각종 사회보장 비용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지만 언제든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잠재해있다는 것을 일본 사회 전체가 니가타현을 보면서 염려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일본보다 더 빠른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방 재정 위기란 단어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지만 구체적인 해법을 찾았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2020년엔 우리 앞에 이미 다가온 미래에 대한 고민을 사회 전체가 함께 시작할 때다.

    [정욱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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