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日과 함께, 中에 맞서라’ 美 압박 받는 韓… 韓·美 정상회담 남은 과제 풀 묘수는

    2021년 06월 제 129호

  • 한국과 미국의 조야에서 영원히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은 굳건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1980년대 반미주의 이념 세례를 받은 좌파 진영은 본능적으로 미국에 대해 원심력을 갖는다. 미국으로부터의 정책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미중 사이의 균형을 중시한다. 반면 우파 진영은 한미동맹의 가치와 전략적 중요성을 신뢰하지만 다소 맹목적인 충성심을 지니는 측면이 있다. 동맹이란 역사적으로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목적에서 탄생했다. 자국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동맹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동맹 사이에 국력의 차이가 클 때는 이익의 편차가 발생하게 된다. 때로는 국력이 약한 나라가 더 큰 이익을 보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역사는 물론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이 미국에게 국가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바가지’를 씌운다는 천박한 인식에 머물렀다. 실제로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올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임기 중 협상 타결에 실패했다. 참모들에게 주한미군 철수 검토를 주문하고 사드(THAAD) 배치의 대가로 100억달러를 요구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트럼프의 힘이 필요했던 문재인 정부는 몸을 낮추고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4년의 한미관계는 비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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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만났다.


    미국이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것은 한미동맹의 재건이라는 측면에서 기대 밖의 호재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 최우선 과제가 전통적 동맹의 재건이었기 때문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 등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라인도 한미동맹의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들이다. 이 같은 우호적 여건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만났다. 문 대통령의 네 번째 방미이자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외국 정상과 가진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이었다. 문 대통령은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9번 만났지만 끝내 신뢰 관계를 형성하진 못한 듯하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과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담이 진행됐다.

    동시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큰 숙제를 남겼다. 바이든 행정부가 원하는 한미동맹의 방향이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먼저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3각 협력을 동북아시아 안보 레짐(Regime)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사실상 한미동맹의 핵심 문제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정권 때의 기조와 사실상 동일하다. 오바마 전 행정부는 한일관계 악화를 매우 민감한 문제로 인식했다. 졸속으로 비판받은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막후에서 종용한 것도 오바마 행정부였다. 반면 트럼프 전 행정부는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에도 적극적 중재자 역할에는 선을 그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을 제외하곤 사실상 한일관계를 방치했다.

    문제는 레임덕 시기로 접어드는 문재인 정권이 한일관계의 실타래를 풀 의지도 능력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차기 한국 정권의 숙제로 넘겨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 큰 숙제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21세기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과 견제에 동맹국들이 동참하기를 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정상회담 상대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다음으로 문 대통령을 선택했다. 한일 라이벌 의식을 감안하기도 했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쿼드(Quad)’ 4개국 화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전선을 구축했다. 물론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선임국장은 최근 쿼드에 대해 “안보 동맹이 아니고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아니다”라며 “공동 대응이 필요한 현안이 있을 때 유연하게 협력하는 비공식적 기구”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는 수준까지 낮아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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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또 다른 핵심 의제는 북한에 대한 공동전선의 구축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 검토를 마치고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을 표방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표현을 사용했으나 사실상 단계적 협상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에 서서히 다가가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차이가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하겠다는 점이지만 결국은 북한의 호응이 성공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판을 주도하는 것은 다시 북한이 될 것이며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끌려 다닐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다시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할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문 대통령 어깨에 놓인 시대적 과제는 비핵화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려 다음 정권으로 넘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한미관계가 정권 교체와 무관히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되며 한국 국가이익에도 더 부합하는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 내에도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한국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도 꽤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이 그렇다.

    햄리 소장은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강하고, 번영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한 동북아시아에서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며 “한국은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며 미국은 한국과 함께 할 때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함축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햄리 소장은 또 미국이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춰져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두 나라는 모두 중국의 위협적 행동에 저항하길 원하지만 동시에 협력하길 바라고 있다”며 “어떤 나라도 아시아에서 객관적으로 반중(反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말 햄리 소장 등 초당파적 전문가로 구성된 ‘한반도위원회’가 작성한 한미동맹 보고서의 내용도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이들은 한미 양국이 ‘반중동맹’이라는 문법에서 벗어나 아시아 발전의 틀을 만드는 미래지향적 동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공급망 구축, 클린 네트워크, 민주주의, 항행의 자유, 개발 원조, 인권 등의 분야에서 양국이 역내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우주, 사이버, 공중보건, 에너지, 환경, 4차 산업혁명 등 ‘뉴 프런티어’ 영역으로 한미동맹의 시야를 넓히라고 호소했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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