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美 증시 좌우할 2대변수는 인플레이션과 고용

    2021년 06월 제 129호

  • “개장하자마자 폭락하는 것을 보고 시황을 쳐다보기조차 싫어 다른 밀린 일을 했네요.”

    13년 만에 최고 수준(4.2%)인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되며 폭락장이 펼쳐졌던 지난 12일. 월가에서 활동 중인 펀드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보인 반응이다.

    올해 들어서도 비교적 순항하던 뉴욕 증시가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향후 뉴욕 증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인플레이션 수준과 고용 시장 변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 이상 인플레이션이 상당기간 지속되고, 최대 고용 상태로 돌아갈 때 통화정책을 단계적으로 정상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뉴욕 증시 태풍의 눈’ 인플레이션

    파월 의장은 경기 회복이 멀었다며 최근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누누이 밝혀왔다. 다른 연준 핵심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발언을 시장은 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연준의 이 같은 경기 판단 때문에 앞으로 급격한 방향 전환(테이퍼링: 유동성 공급 축소)이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시장이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시장 전망치(3.6%)보다 높은 4.2%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패닉 셀링’ 현상이 나타나는 등 시장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소비자물가와 함께 생산자물가도 오르고 있어 시장의 우려가 증폭됐다.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6.2% 상승,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로는 전문가 예상치의 2배인 0.6% 올랐다.

    생산자물가가 오른 것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식품 가격이 오른 데 영향을 크게 받았다. 변동성이 큰 식품, 에너지, 무역서비스를 제외한 근원(core) PPI는 전년 동월 대비 4.6% 올랐다. 이 역시 관련 2014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치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우려가 있는지는 조금 더 냉정하게 뜯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4월 물가를 끌어올린 주요 요인은 ▲중고차(전월 대비 10.0%) ▲교통요금(2.9%) ▲가스 서비스(2.4%) ▲음식·에너지 제외한 원자재(2.0%) 등이다. 특히 중고차 가격은 4월 물가 상승에 3분의 1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 미국 중고차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 무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신차 공급이 어려워지고 중고차 공급이 부족해지자 나타난 현상이었다.

    지난해 여름은 마침 주재원 교체가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새로 부임한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집 구하는 것만큼 차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기자의 한 지인은 원하는 차를 구하지 못해 두 달을 기다리다가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차를 마지못해 구매한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소비자물가지수 발표가 있었던 날 뉴저지에 있는 자동차 딜러숍 2곳을 찾아가봤다.

    첫 번째로 간 곳은 혼다 테너플라이 매장. 평소 수백 대 재고를 갖고 있는 이 딜러숍에 혼다의 대표 미니밴인 ‘오딧세이’는 3대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중고차 가격 조회 시 가장 많이 참고하는 KBB(Kelley Blue Book)에 연식, 모델 번호, 마일리지 등을 입력해서 추정가를 산출해봤다. 이 딜러숍에서 내건 가격은 KBB 시세보다 10% 이상 높은 가격표가 붙어있는 차도 있었다.

    이 딜러숍은 지난해부터 신용카드 구매자에게 2.35% 수수료를 추가로 부과하고 있다. 미국에서 카드·현금 가격을 차별화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중고차 시장이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해준 단면이다. 혼다 딜러숍 관계자는 “뉴저지 일대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맨해튼으로 출근하던 사람들이 모두 차를 타고 다니려 한다”며 “사려는 사람이 많아서 할인은 전혀 안 된다”고 말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인근 BMW 매장을 가보니 평소 중고차로 가득 찼던 주차장에 빈 공간이 많아보였다. 재고가 평소보다 확실히 적어보였다.

    뉴저지 지역의 한 중고차 매매상은 “경매 시장에 중고차를 넘길 때 2만5000달러만 받으면 잘 받는다고 생각한 중고차가 1000 ~2000달러씩 더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5~6월에는 연말정산으로 세금환급을 받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 수요가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니 중고차 시세가 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은 지속되기 힘든 요소라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가수요가 시세를 끌어올린 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시장이 인플레이션 우려에 과도하게 반응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로부터 이런 시각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펀드매니저는 “4월 CPI가 높게 나올 것은 시장이 예상했던 것인데, 하반기 상승 폭에 대한 우려가 생기면서 하락 폭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더 구조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부분이 심각해지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수요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에서 ‘비용상승(Cost-push)’ 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의 질적 변화에 시장이 더 우려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수요견인형 인플레이션은 정부와 연준이 소비와 투자수요를 조절해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 하지만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은 한 번 발생하면 후진이 불가능한 특징이 있다. 최근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후자를 우려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또 다른 뇌관, 고용 시장 회복속도

    파월 연준 의장은 최대 고용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통화정책 정상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20년 초 미국의 고용 시장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였다. 2020년 2월 실업률은 3.5%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팬데믹이 선언된 이후 3월 4.4%를 기록한 뒤 4월 14.8%까지 치솟았다.

    이후 차츰 안정을 찾아가며 2021년 4월에 6.1%까지 하락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앞으로 한 달에 거의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연말) 실업률도 현재 6%에서 상당히 줄어 4~5%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달에 한 번 발표되는 인플레이션 지표와 달리 고용 시장 통계는 매주 발표되는 지표가 있어 추세를 비교적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발표되는 주간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경기지표다. 5월 들어 이 지표는 매주 팬데믹 이후 최저치 기록을 갱신하며 50만 건을 밑돌고 있다. 실업자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13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월 2~8일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47만3000건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보다 2만7000건이 적은 규모다. 직전 주보다는 3만4000건이 감소했다.

    백신 보급이 확대되고 각종 경제봉쇄 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미국의 고용 시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사실 고용지표는 연방정부의 지원금 등이 축소되면 더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연방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주당 600~700달러 규모 실업수당을 받으면, 시간당 15달러 이상 임금을 받는 셈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근로자는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미 노동부에 따르면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은 매주 주정부로부터 평균 318달러, 연방정부로부터 최대 300달러(주별로 다소 차이가 있음)를 추가로 받고 있다. 연방정부 실업수당은 근로자가 아닌 영세 자영업자에게까지 조건이 맞으면 지급되고 있다. 이런 두둑한 실업수당 때문에 현장에서는 이제 구직난이 아니라 구인난이 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A 씨는 “일이 몰릴 때는 시급 15달러 근로자를 임시로 쓰는데, 요즘은 도대체 이런 인력을 구할 수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는 9월까지로 예정된 연방정부 지원금이 연장되지 않거나 조기 중단 또는 금액이 축소되면 고용시장에는 한 차례 변화가 올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용 시장 회복세에 더 속도가 붙으면 연준이 경기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사우스캐놀라이나주, 미주리주, 미시시피주, 아이오와주, 테네시주 등 10개 이상의 주가 근로자를 일자리로 복귀시키기 위해 연방정부의 실업수당 혜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전면 중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부담이 큰 결정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히스패닉, 흑인 등 팬데믹 발생 이후 더 타격을 받은 계층이 이런 수당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향후 미국 고용 시장을 바라볼 때 유의해 봐야 할 포인트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시장 상황에서도 주목을 받는 섹터는 있다. 특히 에너지 섹터를 주목하는 투자자가 많다.

    월가의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그린 뉴딜 정책을 급격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액션만 앞당기면 경기 회복 단계에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에너지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송유관을 운영하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해킹 공격으로 운영을 중단하자 에너지 가격이 단기에 급등한 것을 보면 이런 에너지 공급 인프라가 예상보다 취약함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5월 말 메모리얼데이(현충일) 연휴부터 본격적인 자동차 휴가를 떠난다. 이 시기부터 에너지 시장은 성수기에 돌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 여름 시즌은 코로나19 사태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가 더 크게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확대되며 선진국의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3월 세계 원유 재고량은 2016~2020년 평균 재고량보다 170만 배럴을 초과하는 데 그쳤다. 이는 초대형 유조선 한 대 수송량이다. 2021년 세계 원유 수요는 하루 540만 배럴이 증가할 것으로 IEA는 전망했다. 특히 4분기 원유 하루 수요를 9960만 배럴로 전망했다. 항공 운항이 늘어나고 이동이 늘어나며 연말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인도와 같이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창궐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2분기 원유 수요가 13%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야후 파이낸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인 셰브론, 엑슨모빌, 코노코필립스 등에 대한 애널리스트 목표주가는 현재 주가보다 높은 편이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