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월가 “물가상승 지속” vs FRB “일시적 현상”

    2021년 08월 제 131호

  • 뉴욕에서 경제 활동 중인 인사들을 최근 만날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꺼내는 대화의 소재가 있다. 식재료부터 자동차, 집까지 물가가 안 오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집을 팔기 전에 매수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시간을 정해 집을 공개하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부동산 시장 열기를 알 수 있다. ‘오픈 하우스’는 집을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매물로 보이도록 해 매도 가격을 높여보려는 성격의 행사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오픈 하우스’를 하면 수백 미터 줄을 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광경을 보기 쉽지 않다. 굳이 이런 행사를 하지 않아도 집을 보지도 않고 매도 희망가보다 10~20% 이상 높은 가격에 사겠다는 오퍼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집을 파는 사람은 ‘갑 중의 갑’이 됐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매도인을 대리하는 ‘리스팅 에이전시(Listing Agency)’가 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일단 리스팅 에이전시가 되는 순간, 매수 희망자들에게 갑이 된다. 요즘과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매각이 안 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수료 수입이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일부 중개인은 매도인에게 받을 수수료의 일부를 매도인에게 다시 리베이트로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주택가격은 평균 약 15%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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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해튼에 있는 음식점인 팬더익스프레스가 내건 구인광고


    1988년 지수 산출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매매 시장 못지않게 렌트 시장도 심각한 공급난에 직면했다. 매매가격이 오르자 이를 임차인에게 전가한 영향이 적지 않다. 또 코로나19 사태로 렌트비가 체납되어도 강제 퇴거를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공급 부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택과 함께 가장 큰 목돈이 들어가는 자동차 시장은 믿기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판매 시 한국처럼 가격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기 않기 때문에 할인 등에 있어서 딜러의 재량이 크다. 이 때문에 차를 사는 과정에서 여러 곳을 비교한 뒤 딜러와 ‘밀당’을 잘해야 한다.

    흥정이 잘 되면 MSRP(권장소비자가격) 대비 수천달러씩 리베이트(할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딜러가 ‘갑’이고 손님이 ‘을’이 됐다.

    뉴저지주 일대 현대차 딜러숍에서 인기 SUV인 팰리세이드, 기아차 딜러숍에는 텔룰라이드를 사려면 각각 5000달러 안팎의 웃돈을 줘야 한다. 중고차에 이어 신차 가격이 급등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산 차질, 해상 물류 적체, 반도체 공급난 등이 겹친 탓이다. 이런 가운데 소비 수요가 다시 살아나며 심각한 수급 불균형이 빚어지고 있다. 집, 차뿐만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경제 정상화 속도에 제동이 걸릴 정도다.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다보면 구인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은 시간당 15달러에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자 1000~ 1500달러의 ‘사이닝 보너스’까지 지급하며 사람을 구하고 있다. 저임금 근로자뿐 아니라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의 임금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맨해튼 소재 대형 로펌들은 최근 초임 변호사 연봉을 지난해보다 1만달러 안팎 높인 20만달러로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신입 직원의 임금을 인상하면 그 여파가 기존 임직원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점이다. 기존 임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비슷한 수준의 임금 인상을 해줘야 한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 역시 무서울 정도다. 휘발유 가격은 이미 위기 전 수준을 추월했다. AAA에 따르면 7월 중순 미국의 휘발유 가격 평균은 갤런당 3.155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3.5% 올랐다. 이렇게 미국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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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해튼에 있는 할인매장인 TJ맥스에서 내건 구인광고


    인플레이션은 증시에도 민감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속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가 거물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현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7월 14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핑크 CEO는 “미국 내 일자리와 공급망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이 물가 상승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5년 이상 물가 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 핑크 회장은 “코로나19 델타 변이로 인해 아시아 일부 지역들이 둔화하고, 이는 공급망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을 악화시킬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 만큼,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황이 시작했다고 본 셈이다.

    ‘신(新) 채권왕’이라고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탈 CEO 역시 인플레이션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을 낮게 봤다. 더블라인캐피탈은 지난 3월 말 기준 1350억달러를 굴리는 큰 손이다.

    그는 15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1970년대 물가 대폭등 시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1%부터 치솟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은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시 급격하게 나빠졌고 1980년 3월 15%까지 치솟았다.

    건들락 CEO는 “많은 상황이 1970년대를 상기시킨다”며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착상태에 빠진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했고 학생 대출 상환의무 면제, 과도한 실업수당 등 당시에 썼던 정책이 최근에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4%인데,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1.4%에도 못 미치니 실제 수익률은 –4%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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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내 중고차 가격이 급등세다. 사진은 혼다 중고차 매장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계속된 지적 때문일까.

    경제 수장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언급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5일 CNBC에 출연, “향후 몇 개월 동안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급격한 물가 상승이) 한 달 정도의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4일부터 이틀간 하원·상원 청문회에 연달아 참석, “물가 상승률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높고 약간 더 지속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여전히 우리가 이야기했던 범위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의 뼈대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옐런 장관은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꺾이며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파월 의장은 “일회성 물가 상승이라면, 나중에 사라질 가능성이 큰 만큼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이번 물가 상승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고 수개월간 지속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둔화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시적으로 보는 근거에 대해 파월 의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요와 적은 공급의 ‘퍼펙트 스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경제 재개와 직접 연관된 몇몇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전체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분의 3분의 1은 중고차 가격 급등 때문이었다. 이런 일시적 요인들이 사라지면 안정될 것이라고 파월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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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월 의장, 테이퍼링에 신중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외에 완전고용으로 회복을 내세운 바 있다. 그는 “노동 시장이 계속 개선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Still a Long Way to Go)”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유동성 공급 축소)을 위해 연준이 기준으로 내세운 ‘상당한 추가 진전’을 이루는 데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 등을 고려하면 단시일 내 테이퍼링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아졌다.

    금융, 파산·구조조정 전문가인 저스틴 류 변호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류 변호사는 “연준은 앞으로 인플레이션을 확인한 후 대응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통제 못하는 수준으로 방치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류 변호사는 6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에 미 국채 시장에서 장기금리가 떨어지고 단기금리가 오른 것을 주목했다. 그는 “시장에서 연준이 금리를 올려도 몇 번 못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연준의 이런 소극적 대응 기조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월가일까? 연준일까? 인플레이션에 대해 누가 정확한 예측을 했는지는 곧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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