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폭동과 탄핵… 산통 끝 바이든 정권 출범, 바이든 최대 과제는 상처 치유와 ‘민주주의 재건’

    2021년 02월 제 125호

  • 극심한 진통 끝에 조 바이든이 미국의 4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두 달 넘게 온몸으로 승복을 거부했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일으킨 연방의사당 폭동 사건으로 미국 전체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814년 영국군이 의사당을 점령해 불태운 이후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1861년 발발해 50개월간 미국인 6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북전쟁 때도 연방의사당이 공격을 당하진 않았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깃발을 흔들며 의사당에 난입하는 시위대를 지켜보자니 시계를 150년 전으로 돌린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의사당 폭동은 극단적 분열정치로 점철됐던 트럼프 시대의 끔찍한 산물이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 역사에서 가장 이단적인 인물이었다. 정부 운영에 대한 무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바닥을 드러냈고,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는 선거 불복을 낳고 말았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공직을 수행한 경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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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온갖 성추문에다 세금 탈루 의혹에 휘말렸던 인물이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대통령에 올랐다. 고졸 학력 이하의 백인들이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제조업 쇠락과 이민자 증가 등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가난의 늪에 빠진 백인 저소득층들은 트럼프가 분노를 해소해줄 인물이 될 것으로 신봉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들만의 온라인 공간에서 조직화됐다. ‘프라우드 보이즈’가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대선 TV토론에서 프라우드 보이즈 등이 무력시위를 벌일 우려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물러나서 대기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선에서 패배한 뒤엔 “1월 6일 워싱턴DC에서 만나자”고 트윗을 수차례 올렸다. 의사당 폭동이 있던 날엔 직접 시위대 앞에 나서 “의사당으로 행진하자”고 연설했다.

    프라우드 보이즈는 백인들이 조직적으로 존재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른바 ‘화이트 제노사이드(White Genocide)’ 음모론을 신봉한다. 이들은 극우 음모론 신봉자 집단인 ‘큐어논(QAnon)’으로 확대 증폭됐다. 1920년대 한때 회원 수가 600만 명에 이르렀던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의 현대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의사당 폭동 때도 여러 명의 프라우드 보이즈 회원들이 체포됐다. 이들이 폭동을 주도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브 그룹들이 연계됐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결국 자신이 뿌린 씨를 거두게 됐다. 그는 1월 13일(현지시간) 하원에서 내란선동죄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2019년 12월 18일에 이어 두 번째 탄핵소추였다. 1차 탄핵 때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시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였던 바이든 일가에 대한 수사 외압을 행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직권남용과 의회에 대한 업무방해가 탄핵 사유가 됐지만 당시엔 야당인 민주당이 ‘무리수’를 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외압에 대한 정황 증거만 있을 뿐 ‘결정적 한방’이 없었고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가결 정족수인 3분의 2 확보는 애초부터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2차 탄핵은 상황이 좀 다르다. 대중연설을 통해 의사당 시위를 선동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탄핵 사유에 해당하느냐의 판단만 남아 있다. 또 공화당 일각에는 트럼프의 정치적 재기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일주일 남은 가운데 하원이 탄핵소추를 한 것을 두고는 실효성 논란이 뒤따랐다. 케빈 맥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당 폭동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것이 먼저”라며 청문회 한번 열지 않고 탄핵 표결을 하는 것에 대해 절차적 하자도 지적했다. 또 임기 내 상원 표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퇴임한 대통령을 굳이 탄핵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그러나 스테니 호이어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옳은 일을 하는 데 너무 늦었다는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에 대한 ‘단죄’가 있어야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단호한 입장이다. 미국 역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돼 상원 표결까지 간 것은 모두 세 차례였고 실제 물러난 사례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중에 한 번을 이미 차지했고 재임 중 두 번이나 탄핵을 당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또 퇴임 후 상원에서 탄핵심판이 계속된다면 이 역시 역사상 최초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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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월 13일 하원에서 가결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서명을 한 후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아닌 장관 중에는 퇴임 후 탄핵절차가 진행된 사례가 한 번 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 장군이었던 윌리엄 벨크냅은 미국의 30대 전쟁장관에 올랐다. 그는 1876년 뇌물 혐의로 탄핵 표결이 이뤄지던 당일 아침에 스스로 사퇴했다. 의회는 그래도 탄핵 청문회를 열었으나 결국 상원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시점에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탄핵 표결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낮다. 상원은 하원과 달리 탄핵절차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사후 탄핵이 완성되려면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17명이 찬성으로 돌아서야 한다. 하원에서는 공화당 의원 211명 가운데 1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역시 1차 탄핵 때 공화당 찬성표가 전무했던 것에 비하면 변화된 흐름이긴 하지만 공화당의 다수는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을 스스로 탄핵하는 행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원 공화당 의원 50명 가운데 물론 반(反)트럼프 성향의 의원들도 있다. 상원 원내대표인 1인자 미치 매코널 의원도 “탄핵 여부는 심판 과정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며 유보 의사를 밝혔다. 무엇보다 지난 6일 선거인단 투표결과를 인증하던 상하원 회의에서 상원은 하원과 달리 압도적 비율로 대선 결과를 인정했다.

    하원에선 무려 140명이 일부 주의 선거결과에 대해 불복을 지지한 반면 상원에선 불과 7명이 트럼프 편에 섰다. 이처럼 기류는 달라졌지만 공화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는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극렬 지지자들과 선을 긋고 나섰다. 일단 몸을 낮추며 탄핵을 회피하는 전략에 착수한 것이다. 탄핵안이 상원에서도 통과되면 별도의 결의안을 통해 미래의 공무담임권도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대선 재출마를 꿈꾸는 트럼프로선 손발이 잘리는 결과가 된다. 게다가 탄핵되면 다른 혐의로도 형사처벌을 받고 감옥에 갈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는 퇴임 후 자신의 사업체를 둘러싼 사기와 탈세 수사는 물론 성추문 사건에서 비롯된 재무기록 위조, 명예훼손 등 줄잡아 10여 건의 민형사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재임 중 사업체를 통해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와 조카딸 메리 트럼프에게 상속될 유산을 가로챘다는 혐의도 제기된 상태다.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형사처벌된 전례는 아직 없다. 역사상 가장 힘겨웠던 정권 이양기를 거쳐 취임하게 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어깨도 무겁기 그지없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는 1월 14일 현재 38만6000명에 달했다. 누적 감염자는 23만 명을 넘었다. 1100만 명이 백신 1차 접종을 마쳤지만 사망자 증가세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대응에도 힘이 부칠 지경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남긴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막중하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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