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기록적 성장세 美 증시 올해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화두 기술주 주춤, 경기민감주 부상할 듯

    2021년 02월 제 125호

  • 촉망받던 마라톤 선수. 지난해 1월 심각한 부상으로 활동을 사실상 접었다. 3월에는 이 부상이 불치병으로 판정받았다. 이 순간 모든 스폰서들이 다 떨어져나가며 날개 없이 추락했다. 하지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다시 뛴 덕택에 부상 전 페이스를 회복했다. 뿐만 아니다. 연말로 갈수록 계속 신기록을 갱신했다.

    해가 바뀌며 다시 이 선수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증시 상황을 마라톤 선수에 비유해봤다. 이 선수가 지난해처럼 계속 꾸준한 실적을 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늘 그랬듯이 여러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팬데믹 선언 이후 찾아온 공포의 폭락장. 하지만 직후 미국 증시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하반기에는 ‘사상 최초,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난무했다.

    새해 들어서 미국 증시는 전반적으로는 큰 폭의 상승이나 하락 없이 횡보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올해 미국 증시는 폭은 크지 않지만 꾸준히 상승 계단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지난 14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에도 증시 랠리가 있겠지만 지난해 3분기, 4분기에 봤던 수준의 강력한 상승장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19 백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며 경제활동이 재개될 것이기 때문에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더 강세장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올해 미국 증시에 영향을 줄 큰 변수는 ▲백신 보급과 경기회복 속도 ▲바이든 정부의 정책, 규제 ▲양적완화 정책 지속 여부 ▲금리 상승 가능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경기 회복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당분간 최대 화두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Reflation Trade)’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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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을 상징하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새해 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뉴욕 맨해튼 실물 경기는 아직 차가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란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기대하고 기술주, 성장주 비중을 줄이고 경기민감주 비중을 늘리는 투자 전략을 뜻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4일 글로벌 기관투자자 1000곳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리플레이션 트레이드’에 대한 공감대가 강력하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이 재정부양책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백신 보급은 접종이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지만 시간과의 싸움이 됐다. 늦어도 3분기까지는 집단 면역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접종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다만 얼마나 효율적으로 백신이 보급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밀그럼 스탠퍼드대 교수는 매일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백신 접종에서 ‘공정성’에 집착할 때는 ‘효율성’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밀그럼 교수는 “수요가 급증할 때는 우선순위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며 “적합한 종류의 백신을 적합한 시기에 적합한 장소로 분배하는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회복 속도에 대해서는 연초부터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상적인 예측이 힘든 지난해와 같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GDP 성장률 전망을 수정하며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해온 골드만삭스의 전망이 눈에 띈다. 골드만삭스는 연초 조지아주 상원 선거 결과 ‘블루 웨이브(백악관, 상원, 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장악)’ 구도가 확정되자 올해 미국 성장률을 5.9%에서 6.4%로 상향 조정했다. 시장 컨센서스는 3.9%에 불과한데, 선제적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블루 웨이브’가 경기 회복에 긍정적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이 같이 전망했다. 대규모 부양책이 2~3월 중에 통과되면 2분기, 3분기에 소비 진작을 기대할 수 있고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9월 미국 경제가 3분기에 전 분기 대비 35%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시장 컨센서스는 21%였는데 이런 전망을 내놓아 시장이 주목했었다. 실제 성장률은 33.4%(전기 대비 연율 환산치)였다. 그러나 아직 장밋빛 전망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초 전미경제학회 행사에서 “일시적 반등과 경기 회복을 혼동해선 안 된다”며 “1인당 소득이 코로나19 위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회복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서비스업 회복은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목표 시점까지 제시했다. 취임 100일까지 1억 회분의 백신 접종을 마치고, 봄까지 대부분 학교 수업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이 부양책의 의회 통과 시점과 시행 시기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다 장악했지만 복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양책이 상원까지 통과되기 위해서는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상원을 이끌게 될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의 경기부양책을 환영했다.

    하지만 조 맨친(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은 민주당이지만 1인당 2000달러 현금 지급안이 예산을 과다하게 지출하게 만든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화당에서도 찬성하는 의원이 소수 있어 도움을 받겠지만 이번 부양책의 상원 통과 여부는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경기 부양책 내용에는 최저 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정하는 안이 포함돼 있다. 이 또한 상원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은 의제가 될 수 있다. 1분기에 뉴욕증시가 상승 곡선을 그릴지는 부양책 조기 통과 여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회복은 증시에 단기적으로는 호재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 있다.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들어설 경우 풀린 돈을 회수하는 움직임에 들어가게 되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상승장을 달려온 증시에는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것으로 전망한 데 이어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라파엘 보스틱 총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경기 회복에 대해 이례적 전망을 한 것이 논란을 야기했다.

    보스틱 총재는 지난 11일 “경제가 예상보다 좀 더 강하게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르면 내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쳤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완화(정책)로부터의 후퇴와 재조정, 정책금리 변경 고려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파월 의장은 지난 14일 프린스턴대 콘퍼런스에서 금리 인상은 물론 자산매입 축소조차 임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민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3년의 ‘버냉키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느닷없이 양적완화 축소 방침을 시사하며 금융시장, 주식시장에 꽤 오랜 기간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은 불가피했지만, 시장과의 긴밀한 소통이나 가이던스 제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과거 사례를 잘 알고 있는 파월 의장은 “(완화적 정책을 축소할 때가 되면) 온 세상이 알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이렇게 시장을 안심시키려 애를 쓰고 있지만 여전히 증시에서는 ‘긴축발작’을 경계하고 있다. ‘테이퍼링(경기 회복 국면에서 자산매입 축소)’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이런 ‘리플레이션 트레이드’ 현상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가치주는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기술주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이런 현상과 관련이 깊다. 금융, 에너지 등 경기회복에 민감한 주식들이 강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기술주는 바이든 정부가 반독점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주식시장은 미래를 앞서나가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치열한 경쟁터다. 늘 주식시장은 실물경제보다 수개월 이상 앞서서 미래를 보여주곤 했다. 팬데믹 선언 이후 10개월 가까이 달려온 이 시장이 어떤 궤적을 그려갈지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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