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총장 | 대학 수장에 오른 아세안 지역전문가 “부산외대를 신남방 거점 대학으로 키워낼 것”

    2020년 09월 제 120호

  • 지난 7월 부산외대는 10대 총장에 김홍구 태국어과 교수를 선출했다. 신임 총장은 기존대로 학교 재단에 의해 결정됐지만, 과거와 다른 것은 학교 구성원 대표들이 먼저 모여 여러 후보들 중 적합한 인물을 직접 뽑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간선제 방식으로 총장 선출이 진행된 셈인데, 사립대학에서 이처럼 총장을 선출하는 경우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홍구 교수의 부산외대 총장 선임과 관련해 주목해야 될 부분은 정작 따로 있다. 종합대학에서 소수어과 출신이 학교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것은 한국 대학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이 대학에서 태국어과 교수로 37년을 재직해 왔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아세안 전문가로도 손꼽힌다.

    보통 학교의 권력구조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주류의 흐름과 유사하다. 법, 사회과학, 미·중 등 강대국 언어 등 우리 사회에서 선호되는 학문을 전공하는 이들이 대학에서 수장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부산외대의 이번 신임 총장 선출은 일종의 ‘이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세계 역학구도를 빗대어 본다면 약소국 대표가 강대국들과 경쟁에서 이겨낸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현 정부 들어서 중점을 둔 신남방정책이 한몫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대아세안 중시 외교 노선인 신남방정책으로 우리 사회에서 아세안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인식 자체가 많이 변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여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부산외대에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부산외대는 부산이 아세안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숨은 공로자였다. 부산은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2번이나 열렸고, 아세안 문화원도 있다. 정상회의 후속사업으로 아세안 ICT 빌리지 건설 등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외대는 정책 지원을 위한 학술논의 및 인재양성도 다른 여느 대학보다 열심히 해왔다. 학교에서 이런 흐름을 주도한 이가 김 총장이었다.

    이에 김 총장은 당선 일성으로 “거창한 의미보다는 학교 발전을 위한 적임자로 저를 선택한 것에 고마울 뿐”이라면서 “재임 기간 동안 학교를 신남방 거점 대학으로 키워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신남방 외 다른 과가 소외될 수 있단 지적에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면서 “신남방 거점 대학으로 방향성을 설정하더라도 학내 다른 과들의 역량강화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김 총장 스스로의 경쟁력도 있다. 2017년부터 학내 교수협의회 의장을 맡으며 쌓은 학내 신망이 대표적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장소를 옮기는 도중 만난 학내 교수, 학생들은 격의 없이 신임 총장에게 다가올 정도였다.

    이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김 총장은 예의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파란색 점퍼를 입은 김 총장은 옆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을 풍겼다. 이날 진행된 학교 공식 행사 ‘특수외국어 캠프’ 개회식에도 총장은 파란색 점퍼를 입고 축사를 했다.

    김 총장은 “선거 공약 중의 하나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이 옷차림으로 학교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김 총장은 이날 사진 촬영을 위해 재킷을 잠시 입었을 뿐 파란 점퍼 차림으로 동분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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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선제이긴 하지만 구성원들에 의해 당선된 첫 번째 총장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산외대에서 민주적 방식의 총장 선출이 이뤄져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동안 저는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민주적 총장 선출 특별위원회 부산·경남 지역대표를 맡아 왔는데 그 결실이 우리 대학에서 먼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학의 모든 정책을 구성원들과의 논의를 거쳐 수립하고 집행하는 민주적 대학구조를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또한 재단과도 새롭고 건전한 협업적 파트너십을 만들어 공고한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겠습니다.

    ▶아세안 언어 전공자로 총장이 되셨는데 이 또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 대학 아세안 관련 학과의 입시 경쟁률이 현저하게 높아졌습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수한 자원이 입학하고 있습니다.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부산외대는 그동안 아세안 인재 양성에 특히 더 중점을 둬 온 것 같습니다.

    ▷꼭 아세안뿐만 아니라 특수외국어 교육에 특화돼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학교는 지중해지역원·중남미지역원의 활동이 꽤 활발합니다. 근래에 아세안이 더 부각된 것은 맞고요. 부산에서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2번이나 열리면서 학교의 숨은 역할도 꽤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학교도 이 같은 분위기를 살려 나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신남방 연구 특화를 위해 지난해 동남아지역원을 아세안연구원으로 확대 발족시켰습니다. 이 연구원은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다루기보다는 메콩강 유역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아세안을 매크로(거시)와 마이크로(미시)의 중간 지점인 메조(mezzo) 수준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정부의 신남방정책 추진에 있어 새로운 전략적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내에서 학교가 너무 아세안에 치중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올 법한데요.

    ▷총장의 역할 중 학교의 고른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는 점에서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인 것은 맞습니다. 다행인 것은 학생들 스스로가 현재 사회 분위기를 잘 알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학생들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양질의 일자리일 텐데,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 각국에 많은 기회들이 있습니다. 이에 아세안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상경계나 IT 계열이 부·복수전공으로 아세안 언어를 추가로 배워서 현지 취업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틈새를 학생들 스스로가 뚫어낸 것이죠. 학교도 학생들의 이 같은 수요에 맞춘 교육과정과 비교과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외 취업자 수·해외 취업률 6년 연속 전국 1위 대학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대학 각 외국어학과의 목표가 실무형 지역전문가 양성입니다. 현지 밀착형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인데, 이런 전략이 잘 들어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현지에 진출해 실무형 전문가로 좋은 평가를 받고 이것이 선순환적 구조를 이뤄내는 것이죠. 앞서 언급한 비언어전공학과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해외 일자리 수요를 파악해 현지 언어를 추가로 배워 취업을 하는 것들은 시너지 효과인 셈입니다. 한국에서 회계를 배웠다고 하면 아세안 현지에서는 고급 인력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런 것들이 통계로 증명된다고 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좀 어려운 상태이긴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회복 탄력성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남방정책 이후 부산이 아세안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부산은 항구도시로서 오랫동안 외부문물의 통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남쪽에 위치하며, 해양교역의 중심이라는 측면에서 신남방을 향한 창구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부산에서 개최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부산시 차원에서도 신남방위원회를 만들어 적극적인 지방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부산에 소재한 많은 기업들이 아세안 지역에 진출하고 있다는 점도 부산의 신남방 거점도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밑바탕이라고 봅니다. 양측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아세안 인구는 2만여 명 가까이 됩니다. 부산 경제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양측 교역은 수출이 24억3000만달러, 수입이 15억2000만달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산에는 어떤 다른 지역보다 많은 다수의 동남아국가들의 명예총영사관도 설치돼 있습니다.

    ▶부산의 이 같은 위상과 관련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신남방정책의 흐름이 끊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 정책 지원을 위한 다양한 지역 연구 및 인재양성에 더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최근 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역사회 아세안 네트워크 강화입니다. 팀 아세안(TEAM ASEAN)이라는 개념을 마련했는데, 학교와 시·기업·지역 사회 등이 모두 참여해 아세안 관련 기반을 공고히 하려 합니다. 지난해 한·아세안특별정상회담 때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부인 등이 저희 학교를 방문했는데, 우리 대학의 인적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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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정권이 끝나면 신남방정책이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노력들은 애쓴 보람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아세안에 대한 관심은 영속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권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면 덩달아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그렇지 못하면 반대의 양상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세안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지역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가 계속 분절적으로 아세안을 대한다면 그나마 가졌던 위상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신남방정책의 핵심 개념인 3P (people, peace, prosperity) 중에서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 사람(people)입니다. 하지만 신남방정책 추진에 있어서 과연 그런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세안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 온통 경제적 이익에만 매몰돼 있는 느낌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지속되는 대아세안 무역불균형 현상이나, 이윤을 많이 내는 베트남 한 국가에만 지나치게 집중되는 현상 등이 그 예입니다. 일본이 초기에 딱 이랬습니다. 경제적 이익에만 급급하다가 결국 호되게 당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먼저 아세안 각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관점에서 미래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무시를 하게 되고 이는 결국 파열음만 낼 뿐입니다. 우리 국민이 아세안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육 환경에 있다고 봅니다. 일례로 우리나라 대학에 개설된 중국이나 일본 학과와 비교하여 아세안 관련 학과의 수는 20분의 1 정도로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아세안의 중요성을 주변 4강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신남방정책의 목표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육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아세안서 불고 있는 한류는 그들의 우리에 대한 문화적 관심입니다. 문화적 교류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이런 노력들도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아세안 푸드 마켓을 학내에 열어볼 생각입니다. 음식은 한 국가의 문화가 집약된 산물입니다. 국내에서 아세안 관련 푸드마켓이 여럿 열리고 있지만 부산외대는 이와 차별화시켜볼 생각입니다. 지역 전문가들이 제대로 준비한 푸드마켓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장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대학축제와의 결합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대학원에 아세안학과를 만들고, 아세안 최고경영자 과정도 열 생각입니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시스템으로 지역 사회의 아세안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코로나19 국면으로 사립대학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대학을 어떤 철학으로 운영하실 생각이신가요?

    ▷코로나19는 비단 우리 사립대학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고등교육계에 진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교육계의 접목은 이미 에듀테크 사업화돼 확장되어 왔습니다만 유독 고등교육계내의 에듀테크화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그동안 더디게 진행되어 왔던 교육과 기술의 접목에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 대학의 실질적 교육행정은 학문적 이론과 기술의 접목, 교육 콘텐츠 간의 융합을 더욱 강화하는 실용주의적 하이브리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다른 대학에 비해 리버럴한 학내 분위기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37년간 재직하면서 느낀 가장 큰 소회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융합적 사고, 창의적 사고라고 하는데 학풍이 현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과 딱 맞다고 봅니다.

    ▶부산외대를 어떻게 키워나가고 싶으신가요?

    ▷선거 과정에서 저는 ▲살아있는 대학, 깨어있는 대학 ▲글로벌 시민성을 선도하는 대학 ▲하이브리드형 지역강소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구성원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드문 동남아시아 언어문화에 대한 교육 강점을 살려 신남방정책의 거점 대학으로서 성장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향후 동남아시아 언어뿐만 아니라 아세안 지역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춰 아세안 교육과 연구의 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나의 성장, 대학의 발전, 지역사회 기여를 위해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대학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대학, 깨어있는 대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론과 기술, 다양한 지역콘텐츠가 융합되는 하이브리드형 교육을 강화하고 정착해 나가고 싶습니다.

    ▶점퍼 차림이 이채롭습니다.

    ▷선거 공약 중 하나가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거 운동 때의 이 모습 그대로 총장 임기 내내 활동하겠다고 했습니다. 활동하기도 편해 점점 애착이 갑니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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